책을 다 읽은 지는 한참 됐는데 이제서야 포스트를 하는 이유는 첫째가 코 앞으로 다가온 미국 여행 준비요 둘째가 그 여행 준비를 빙자한 세월 즐기기요 마지막이 책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저 징그러운 스티커들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원래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봐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저런 스티커를 붙여 두는 것을 습관으로 가지고 있는데, 저렇게 많은 스티커가 붙은 책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돌이켜 봤을 때 이 정도의 스티커가 붙었던 책은 <촘스키, 사상의 향연>이 마지막이었던 듯.
스끼다시는 이 정도로 줄이고, 간단하게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교회"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기독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0~10까지의 수직선으로 놓고 봤을 때 약 4 정도의 치우친 시선으로 잘 조명한 책.
즉,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시선의 치우침에 집중해서 보자면 약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지만 ㅡ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개인의 종교적인 방향성에 따라 다소간의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ㅡ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방법론에 입각하여 책을 읽는다면 상당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취향까지 맞았던 터라 매우 훈훈하게 읽은 편이다.
훈훈하게 읽지 않았더라면 저 주황이들이 책에 저렇게 많이 붙어 있지는 않았겠지.

비록 그 자신이 목회자이기는 하지만 책의 중반까지 글쓴이는 종교인이라기보다 종교학자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개신교를 조명한다.
위 문장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진 것이라면, 사실상 이 책은 내가 읽는 첫 종교학자의 책이 되는데 유명한 종교학자가 쓰는 책이라면 몇 권 더 읽어봐야 하겠다는 거의 의무감에 가까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종교를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게 되면 그 문화 현상으로서의 종교는 다른 사회의 분야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되며, 따라서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각종 사회 과목과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분석이 가능하게 된다.
책의 첫 두 장, 즉 어떻게 하여 대한민국 개신교가 교인들을 끌어 모았고 또 어떻게 하여 최근 들어 교세가 감소하는 추세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다루는 장에서 그는 이와 같은 사회과학적 분석의 방법론을 끌어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개신교의 기형적인 형태를 고발한다.
물론, 고발이라는 단어는 종교에 적대적인 입장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고, 저자 김진호가 의도했던 바는 그냥 단순한 분석이겠다.
이제 천천히 수많은 부적들로 봉인되어 있는 책을 열어 <시민 K, 교회를 나가다>가 가지고 있는 금단의 내용을 이야기해보자.
나도 길 글게 쓰기 참 귀찮으니 최대한 간단하게 간추리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책의 제목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는 이중성을 띠고 있는 문구다.
책의 1부는 교회를 나가는 시민 K, 즉 교회에 나가는 시민 K, 즉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 개신교가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성장 과정에서 지금의 스킬 트리를 어떻게 찍게 되었는지에 주목한다.
전체적으로 서사적인 구조를 취하되, 중요한 시기마다 적절하게 웨이포인트를 찍었다.
현재 대한민국 개신교가 가진 전반적인 풍토는, 20세기 초, 우리 나라에 전파되었던 기독교의 종파적, 지역적 양상에 큰 기원을 두고 있다.
애초에 한반도에서는 미국계 선교사들, 그 중에서도 가장 복음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보수주의 신앙을 가졌고 미 대륙에서 부흥운동을 이끌던 세력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미국주의적인 색을, 그것도 지극히도 강한 종류의 미국주의적인 색을 바닥에 깔고 시작한 존재였다.
최근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거대 교회들의 반공 드립이었다.
물론 세계사적으로 종교가 단 한 번도 진정한 정교분리를 추구한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도대체가 교회가 주장하는 사상과 공산주의 사이에 어떤 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인지 나의 짧은 머리로는 유추할 수가 없었다.
책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 역시, 순전히 미국주의에서 출발한 담론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개신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반공'이라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30년을 전후한 때부터다. 항일운동의 축이 사회주의 그룹으로 옮겨가고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장악되었던 교회는 빠르게 체제내화되었다. 이에 개신교 교회들 내부에서는 교권의 권력 독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빗발쳤고 이념적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나아가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속출했다.
이렇게 되자 교회 지도자들은 공산주의를 악마화하는 담론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중략) 공산주의자들과는 어떤 것도 함께할 수 없으며, 그들은 우리 시대에 격퇴해야 할 악마적 존재임이 천명되었다.
(중략)
한편 식민지 당국은 이 무렵 공산주의에 대한 강도 높은 이념 공세와 정치적 탄압을 본격화했다. 이것은 교회의 반공 담론이 신자 대중과 시민 사회의 생각에 침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교회는 빠르게 반공주의의 아성이 되어갔다.
정리하자면, 개신교가 "반공주의의 아성이" 된 이유는,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밥 그릇 싸움이 시대적인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자에 따르면, 강제적인 신사 참배에 대한 근본주의 신앙자들의 반발심이 공산주의의 적대화, 악마화로 이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 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한국 기독교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평안도 지방에서 이미 이와 같은 반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던 세력이 내려와 결성한 이른바 "월남자 교회" ㅡ 대표적인 예가 남산 밑자락에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영락교회라고 한다 ㅡ 가 세를 잡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한민국 주류 개신교가 취하고 있는 반공주의에 대해 뭐라고 입을 여는 것이 민망해질 정도다.
입을 여는 것이 민망.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비종교인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신앙 ㅡ 이를 교계에서는 뭐 치유, 안찰기도 따위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 같다 ㅡ 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큰 목사 조용기의 이름을 꺼내며 그가 제시한 "3박자구원", 즉 몸의 치유와 경제적 풍요와 영적 축복이 전후 대한민국 사회를 이끌던 발전동원체제와 기가 막히게 호흡을 맞추어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조용기가 끌어왔던 이런 성장주의적인 신앙이, 쉽게 예측 가능한 대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종교나 장사나 미국에서 흥하던 것을 적당하게 가져오는 것이 성공의 보증 수표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조용기 목사는 월남 기독교도가 아니었고, 순복음교회도 월남자형 교회가 아니었다. 이 교회는 '오직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하는 전형적인 군부독재 시절의 담론과 제도에 병행하는 신앙 담론과 제도를 통해 대부흥을 이룩했다. 그리고 교회로 몰려들어 온 사람도 개발독재 시대의 대중, 시대의 저주에 존재가 거덜 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교회는 축복을 선사했고, 그들은 교회에 충성을 다했다. 이렇게 반공주의의 증오를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켜 자신의 발전과 교회의 발전을 동시적으로 실현하는 '생산적 증오'의 담론을 실현시킨 교회 모델, 순복음교회를 필두로 하는 이런 교회들을 나는 '선발 대형 교회'라고 부른다.
이렇게 미국주의를 근간으로 시작한 대한민국 개신교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거쳐 반공주의와 성장주의라는 스킬을 장착했고,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가 서로를 북돋워주는 방식으로 발전했으며, 바로 그렇게 지금의 철옹성 같은 체제를 이룩하게 되었다.
2부는 교회를 나가는 시민 K, 즉 교회를 떠나는 시민 K, 즉 왜 최근의 개신교는 그 놀라웠던 성장 추세에서 정체를 겪고 심지어는 후퇴까지 하고 있는가를 다룬다.
사실 나는 2부를 1부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읽지는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종교가, 특히 기독교가 가진 문제점과 결함이 무엇인지 나름의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에서 신선하게 읽었던 부분은 서사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 개신교가 추구했던 성장주의가 우선 파이의 크기에서 한계에 부딪혔고, 무리하게 파이를 키우던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의 접근 정도였다.
종교의 세속화라고 하기엔 너무 고상하고 그냥 종교의 상업화라고 말해도 될 만한 교회 매매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인용한다.
대체 종교의 본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괴상한 형태의 상업 거래 앞에서 목사는 무엇이고 교회는 무엇이고 신은 무엇이 되는 걸까.
되긴 뭐가 돼, 그냥 다 돈이지.
이제 매매의 문제가 남는다. 누군가에게 팔아야 하고, 그리하여 그가 목회를 다시 할 수 있는 자금을 만들어내거나 혹은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비용을 건져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목사직 매매'가 이뤄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 교회를 팔면서 그간에 투여된 목회의 유형 무형의 비용을 함께 파는 것이다. 일반 상업 점포의 매매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권리금'과 유사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교인 수와 자릿값이다. 즉 강남 지역에서 교인 20명인 교회는 강북의 교인 20명 교회보다 권리금이 훨씬 비싸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결국 대한민국 개신교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요소들의 덫에 걸려 자승자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
반공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지극히도 심한 배타주의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성장주의의 폐해가 빚어낸 하모니에 손오공의 헬멧이 죄어오듯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것이다.
오공이는 저 나무 막대기를 돌려주면 매우 시원해 했더랬지. http://blog.naver.com/juju4031/50127435767
3부는 순전히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자기 팔 다리를 묶어놓고 발버둥 치고 있는 개신교의 구원 투수로, 작은 교회 뭐 비슷한 것을 등판시키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역시, 종교에 있어 대안은 없으며 존재 자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렇게 흥미롭게 읽히지는 않았다.
기성 목회인이나 뭐 어떤 방식으로든 개신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도 있을 터.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약간 좌클릭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장에 책을 내던지고 이런 빨갱이 새끼를 봤나 하겠지만 말이다.
얼핏 보면 용두사미로 끝나는 책이 아니냐는 인상을 줄 평이지만 실제로 읽고 나면 절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나름 그런 편견을 주지 않기 위해 나의 취향을 깨알 같이 밝혀두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기독교 또는 개신교인들의 필독 도서 ㅡ 특히나 진짜 꼴통 병신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길이 없는 거대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ㅡ 가 되지는 못할 망정, 왜 이런 웰-메이드 도서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