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행 중에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성수기로 접어든 펜션 값이 싸지가 않아 포기.
2차로 생각한 곳은 우이동이었는데 그 곳은 시설도 굉장히 낙후된 편이고 소규모 인원이 놀만한 방이 마땅히 없어서 포기.
그래서 세 번째로 누군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바로 한강 난지 캠핑장을 가자는 것.
이런데서 자기엔 너무 위험하다.
마침 랩탑을 가지고 있던 나는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난지 캠핑장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예약에 있었다.
바깥에서 밤을 새더라도 온도가 견딜만한 여름의 주말은 8월 말까지 예약이 가득 차있었다. 1
이리저리 서로의 일정을 잘 짜맞춘 결과 주말(금, 토)을 피해서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예약 가능한 텐트는 6인용이라 예상되는 일행이 총 4명의 인원이었음에도 6인용 텐트를 예약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나중에 가본 텐트는 실제로 6명의 사람이 자기에 꽤 비좁았다.
아마 2~3명이면 4인용 텐트를, 4~5명이면 6인용 텐트를, 그 이상의 인원이면 단체용 텐트를 예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약을 해둔 날짜가 다가오면서 매일 날씨를 확인했다.
어디의 예보를 보나 당일날 비가 오는 게 거의 확실시되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2
캠핑장에 전화를 걸어보니 정 날씨가 안 좋아서 캠핑장 측에서 숙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예약 당일에 100% 환불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날씨 덕분인지 예약을 한 날에는 안 보이던 4인용 텐트도 보이길래 혹시나 예약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지도 물어봤으나 그런 것은 불가능하고 원래 예약을 취소하고 새로 예약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했다.
예약한 날은 오전부터 비가 쏟아졌는데 그 기세가 대단했다.
만약에 비가 그치더라도 캠핑장 상황은 몹시 찝찝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나 혼자'서만 하면서 갔다.
준비하는 과정까지 일행 중 몇몇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꾸 힘 풀리는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들뜬 분위기가 전부 망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약속한 장소에 모일 무렵이 되자 비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 굳이 우산을 쓰지 않더라도 다닐만 했다.
만약 짐을 들고 캠핑장까지 가는 길에 비가 엄청나게 왔다면 이번 캠핑장 행은 굉장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을 뻔 했다.
어쨌든 준비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출발.
일행 중에 있던 요리사가 야심차게 준비했기 때문에 준비물이 다소 많았지만 이 모든 게 다 잘 먹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연신내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 월드컵경기장역으로 향했다.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바로 나가면 홈플러스가 있는데 그 곳에서 마지막으로 마실 물과 술, 모기향과 기타 필요한 것들을 샀다.
오메 하늘 성님 색깔이 지리겄소. 가운데에 찍힌 사람들은 나와 무관한 사람들.
짐 들기에 지친 우리는 카트를 끌고 택시를 잡으러 나갔다.
'카트는 여기까지'라는 팻말도 무시하고 택시 승강장까지 가서 짐을 모두 옮긴 뒤에 다시 카트를 넣어두고 왔다.
하긴 우리가 카트를 택시에 싣고 도망갈 것도 아닌데 이 정도 비행은 홈플러스도 너그러이 용서해주겠지.
축지법.
그렇게 난지 캠핑장에 도착했고, 택시비는 5천원 아래로 나왔던 것 같다.
가는 길에 꽤 진을 빼서 그랬나 별 것도 아닌데 뿌듯함이 몰려왔다.
자가용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비는 완전히 그친 듯 했다.
저녁 8시도 넘었다.
매표소에서 예약 사실을 확인하고 팔찌를 받았다.
꼭 무슨 DJ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주는 모양의 팔찌로 그것을 착용하고 있어야 입구 출입이 자유롭다고 하더라.
저 거대한 문을 지나면서부터 캠핑장이 펼쳐진다.
내부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데 짐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입구 바로 앞에 리어카를 대기시켜 놓았다.
이미 비가 많이 온 뒤라 리어카가 축축하게 젖어있었기도 했고 어차피 걸어서 얼마 안 걸릴 것 같아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짐을 들고 걸었다.
캠핑장 내부는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다고 할 수 있는 정도라 어디서 어디까지 걸어도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예약했던 텐트에 도착.
나는 도와주지도 않고 사진만 찍었다.
주변 땅 상태는 굉장히 좋았다.
전혀 질척거리는 것도 없었고 물 웅덩이가 생긴 곳도 없었다.
그 정도 비를 견디는 걸 보면 캠핑 당시에 비가 오더라도 몸이 끕끕한 것만 이겨낸다면 캠핑 환경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비가 오면 참 난감하겠지.
바로바로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먹을 것을 어느 정도 조리를 해놨기 때문에 음식이 금세 되었다.
조명이 군데군데 있어 전반적으로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텐트는 이런 식으로 길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좌측이 6인용, 우측이 4인용 텐트다.
내가 가져온 새끼만한 랜턴은 텐트 하나를 비추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매표소에서 랜턴을 빌리기로 했다.
랜턴은 보증금이 20000원이고 자체 대여비는 2000원이지만 어차피 건전지를 5000원 주고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7000원이 드는 셈이었다.
집에 꽤 밝은 랜턴이나 조명이 있다면 꼭 챙겨오는 것을 추천.
내부 매점에는 각종 캠핑 용품과 먹을 것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가격들이 괜찮았다.
몇 천원 아끼려고 짐을 드느니 차라리 여기까지 와서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겠다.
그릴이나 테이블, 의자 따위도 대여가 가능한데 그릴은 휴대용 버너로 대체가 가능하지만(우리는 버너를 들고 갔다.) 테이블과 의자는 빌릴 수 있다면 빌리는 것도 괜찮을 뻔 했다.
특히 저 날 같이 땅이 조금은 물기를 머금고 있을 때는 바닥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보다 상으로 올라가는 게 더 위생적이기 때문이리라.
처음에는 토마토 스튜와 강된장에 비빈 밥을 먹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 음식은 소고기였다.
우리의 요리사는 사온 고기를 보더니 아마 샤또브리앙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엄청난 준비성이다. 저 그릇에 포크, 나이프하며 와인잔까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굉장한 미식가(이면서 뚱뚱이)가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은 정말 맛있는 것을 표현할 때 'Sex in my mouth'라는 표현을 쓴다.
저 구절을 처음 들을 때는 요리왕 비룡식의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아 저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쎾쓰 인 마 마우쓰!
해 빨리!!!!!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는 베이컨을 구우면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잘 때가 된 것 같아 먹던 것은 대충 치워두고 잤다.
다음 날에 일어나자마자 느낀 것은 엄청난 추위.
자기 전엔 더워서 생각도 못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추웠다.
아무리 여름 날이라도 새벽이 지나면 꽤 쌀쌀해지는 게 정석인데 거기에 비까지 왔어서 더 추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챙겨간 외투를 입었다.
아침엔 해장하는 차원에서 김치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다.
국물을 후릅후릅 마시니 전날의 숙취가 가시는 듯 했다.
퇴실?은 오전 10시로 다소 이른 편이라 9시부터는 우리의 흔적을 다 치워야만 했다.
이 정도면 뭐 무난하다.
전날 음식을 만들 때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나는 열심히도 치웠다.
쓰레기 봉투는 처음에 매표소에서 들어올 때 산 건지 그냥 준 건지 어쨌든 1장이 있어서 거기에 꾸역꾸역 쓰레기를 담았다.
음식물 쓰레기의 경우 캠핑장 중앙에 있는 수돗가에 버릴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노란색 통.
관리인들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재촉을 하는 통에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뭐 그것이 그들의 일이고 그것이 이 곳의 규칙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꼭 10시까지 캠핑장을 떠날 필요는 없고 10시까지 텐트에서만 나와주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 관리인들이 한 번씩 쓸고 매트를 정리하더라.
짐을 다 챙겨들고 캠핑장을 나왔다.
거기서 마지막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산대교 북단에 위치한 난지 캠핑장에서 서울 아무 도심으로나 접근하는 것은 이동 수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택시를 타고 꽤 깊게 들어올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나가려고 하니까 택시가 없었다.
콜택시를 몇 개 불러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진짜 이 생각밖에 안 났다.
주변에 물어보니 캠핑장 입구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9707번 버스를 타면 당산역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9707번 버스는 난지 캠핑장을 지나는 유일한 버스인데 난지 캠핑장에 하차하기 위하여 노선을 2가지로 운용하고 있었다.
버스가 와서 올라탔다.
성산대교를 건너 당산역에서 내렸다.
고생한 요리사에게 그가 들고 온 각종 집기들을 넘겨주고 버스를 태워 보냈다.
나는 음료수를 하나 사 마시고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난지 캠핑장은 꽤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음식 준비를 잘 해가고(우리가 성공한 점) 자가용을 끌고 간다면(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점) 참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다.
올 여름 첫 피서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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