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War Z

| 2013. 7. 7. 14:35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훗날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의 한 줄 감상평을 소개한다.

영화가 얼마나 남았나 시계를 봤는데 그 때 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더라.. - 이한결(26세, 무직)

http://movies.about.com/od/worldwarz/ig/Photos/Daniella-Kertesz.htm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아주 잘 만들어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아주 잘 만들어진 게임이 사용자에게 주는 몰입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저 위에 있는 평이 시사하는 바를 이와 연관지어 설명하자면, 나는 원래 영화를 보면서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라 종종 영화가 얼마쯤 남았는가를 영화를 보는 도중에 확인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내가 일말의 지루함을 느끼기 전에 이미 엔딩까지의 흐름이 끝나 있었다는 말이다.  즉 그만큼 영화를 보는 행위 그 외의 부담감이 극도로 배제된 영화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다르게 말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 정보들 ㅡ 영화 《베를린》에서 수차례 지적된 바 있었던 바로 그 부분이다 ㅡ 또는 영화의 흐름 속에서 관객이 자의적으로 추론해야 하는 부분들, 그 외에 감독이나 배우의 특성 등 아예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자잘한 사실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것.

아래 비디오 클립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영화의 몰입도를 한껏 높이는 데엔 뛰어난 촬영과 편집도 한 몫 거든다. 평범한 상황에선 한없이 가라앉는 분위기는 한 번 위기가 시작되었다하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 정작 관객들은 감염된 사람(?)들의 정확한 모습이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오히려 잔뜩 흔들리는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1차적으로 내 자신이 스크린 자체를 보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2차적으로는 묘한 긴장감과 박진감을 더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요새 영화는 이렇게나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구나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어쩌면 몇 인치 되지도 않는 랩탑 화면으로 너무 오래동안 영화를 봐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파블로프적 조건반사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무엇이든 한쪽으로 극단에 치우친 상태가 모든 면에서 만족감을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월드워 Z》의 가장 특징적인 단점은 이야기의 진행이 굉장히 우발적이라는 점, 그리고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뻔히 예상되는 엔딩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다는 점, 그 외에 이야기의 일관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 정도가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마냥 단점으로서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만약 《월드워 Z》가 이러한 단점들까지 모두 극복하려고 노력했다가는 자칫 앞서 나열했던 장점들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그저 한철 흘러가는 ㅡ 투자자들에게는 대규모 손실의 기억으로서 기억되는 ㅡ 평범한 좀비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점들을 단점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장점을 장점으로서 더욱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선택과 집중을 했으며 그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이 전반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깜짝깜짝 놀라는 장면 전환이나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영화는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아, 물론 괜히 비딱한 시선에서 마냥 진지한 태도로 영화를 바라보는 무의미한 회의주의자 또한 이 영화에 알맞는 관객은 아니다. 위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찌뿌둥한 여름 날씨를 이겨낼 기분 전환 차원으로 한 번 극장을 찾아 《월드워 Z》를 감상해보자. 100% 만족할 만한 선택은 되지 못할지라도 흥분되는 가슴을 안고 엔딩 크레딧을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사족으로, 브래드 피트는 대체 언제 늙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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