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ountry For Old Men

| 2011. 7. 4. 19:47

7번째로 보는 코엔 형제의 영화.
아마 이 영화로 코엔 형제는 살아있는 영화 감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조엘 코엔,에단 코엔 (2007 / 미국)
출연 토미 리 존스,하비에르 바르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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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개봉한 2007년은 내가 막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다.
여름학기에 수강했던 예술학 특강에서 영화와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부터 나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재미가 없는 영화이더라도 끝까지 보는 습관이 들고, 하루에 세 편씩 방에 틀어박혀 영화를 보던 것이 바로 2007년 여름 무렵 부터였다.
바로 그 때 나의 관심을 끄는 영화가 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안겨다 준 '밀양' 덕분에 2007년 칸 영화제는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 당시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 중에 하나였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것이다.
2007년엔 이 영화가 흥미진진한 스릴러 물이라고만 알았다.
2008년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로 코엔 형제의 존재를 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그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이후로 코엔 형제의 필모그래피를 하나 하나 접하면서 언젠가 봐야지하고 생각하던 영화였다.
그렇게 3년을 미뤄왔는데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나의 무작위적인 선택에서 일정한 확률로 뒤로 밀려난 것뿐.

아카데미 8개 부문 노미네이트 4개 부문 수상, 골든 글로브 4개 부문 노미네이트 2개 부문 수상, BAFTA 9개 부문 노미네이트 3개 부문 수상의 화려한 수상 실적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 중에 하나인 예쁜 여배우나 남심을 자극하는 장면 따위가 단 하나도 없는 영화가 이렇게 훌륭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더 로드'를 쓴 코맥 맥카시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장르는 대충 범죄 스릴러 물.
코엔 형제가 미국 북부 지방에서 범죄 스릴러를 만들면 '파고'가 되고 미국 남부 지방에서 범죄 스릴러를 만들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된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이 영화는 '파고'와 닮은 점이 꽤 있다.
지역적 특색이 묻어나는 개그나 무감정한 살인마의 등장,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 등에서 두 영화는 같은 핏줄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영화의 큰 차이는 원작의 유무 여부.[각주:1]

소설이나 기타 다른 매체를 원작으로 두는 영화의 완성도와 그 원작의 완성도 사이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대체적으로 원작이 있는 훌륭한 영화의 경우 그 원작 자체가 훌륭한 경우가 많으리라.
이 영화 역시 기본적인 플롯 자체가 탄탄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만들었더라도 재미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그 원작에 최대한의 플러스 알파를 이루어냈겠지.[각주:2]

토미 리 존스를 제외하고는 내게 낯이 익은 배우가 드문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캐스팅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처럼 현란한 액션 신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의 스릴러가 아니고 심리적인 긴장감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스릴러의 경우 배우의 내면 연기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톡톡히 한 몫 했다는 것이 나의 의견.

http://diaryofgrinder.tistory.com/167


영화 포스터 뒤에서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바로 이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정말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배역 하나로 각종 영화제의 조연상이란 조연상은 죄다 휩쓴 것 같다.[각주:3]
알고보니 2010년에 페넬로페 크루즈와 결혼해 지금은 아들이 하나 있다고.
페넬로페 크루즈 정도면 세상을 다 가진 것과 다름 없겠지.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르웰린 모스 역의 조쉬 브롤린 역시 내가 얼굴을 알고 있는 배우는 아니었다.
2010년을 강타한 코엔 형제의 영화 '더 브레이브'에서 톰 채니 역을 맡은 배우더라.
굉장한 킬러로 등장하지만 하비에르 바르뎀의 손에 너무나도 쉽게 죽고마는 칼슨 웰스 역은 우디 해럴슨이 연기했다.
'어디서 봤는데,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했는데 유명한 데미 무어 원톱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본 얼굴이었다.
18년 전 영화인 '은밀한 유혹'에서 봤던 그의 얼굴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그의 얼굴을 비교해보니 참 늙지 않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라.
에반 레이첼 우드가 나온다는 이유로 봤던 영화 '실종'에서 굉장히 아메리칸 인디언 같이 생긴 얼굴을 하고 나왔던 토미 리 존스는 말쑥한 보안관 옷을 입으니 영락없는 할아버지 보안관이 되었다.
노장의 연기에 토를 달 부분은 없었다.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들만의 해학을 삽입하는 것으로 유명한 코엔 형제는 이 영화에서도 자신들의 기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 면에서 조금 의외였던 점이 있다면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이 당연히 코엔 형제가 직접 만든 것인줄 알았는데 원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여럿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름의 팬층과 나름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유머러스함을 당근과 채찍처럼 사용해 완급 조절을 한 결과는 최강의 몰입도.

이렇게 훌륭한 영화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나.
기회가 된다면 꼭 봅시다.
  1. 코엔 형제는 '파고'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본문으로]
  2. 원작 소설을 보지 않았으니 말이 추측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3. 찾아보니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BAFTA를 포함해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13개의 조연상을 받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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