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gne' 가사 속에 숨은 이야기

| 2012. 2. 11. 02:42

요새 벤 폴즈의 이름이 유난히 블로그에서 많이 보이는 것은 사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긴 개뿔, 별 이유 없고 그냥 내가 그라는 사람과 그가 만드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트랙 소개인지 아닌지 애매한 방식으로 벤 폴즈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음악이 지금의 완성형에 이르게 되는 시초석 역할의 앨범' Way To Normal'에 수록된 6번 트랙 'Cologne'이 그 대상.
아래의 유튜브 클립은 인트로격인 'Before Cologne'을 포함하고 있다.


 내가 이 트랙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은 지난 2010년 동유럽 여행 때였다.
'Before Cologne'이라는 인트로부터 본 트랙까지 이어지는 서정적인 흐름이 맘에 들기도 했지만 'Cologne'이 내 심금을 울린 이유는 그 가사에 있었다.
비록 내가 이 가사의 주제를 이루는 가슴 시린 이별을 겪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대한민국이 아닌 타지에 와 있다는 사실, 지구라는 구체의 행성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차라는 왜곡 아닌 왜곡을 처음으로 겪으면서 정신 상태가 한창 말랑말랑해져 있을 무렵 벤 폴즈가 읊조리는 가사가 내 마음에 푹푹 와서 꽂힌 것이다.
핵심은 후반부 브릿지의 구절들로, 그대로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Such a painful trip
To find out this is it.
And when I go to sleep,
You'll be waking up. 


서머 타임 여부와 내 이동 경로에 따라 내가 머물던 곳과 한국의 시차는 대략 7시간에서 8시간의 차이가 났다.
내가 보통 잠을 자러 갈 시각인 그 곳의 자정부터 새벽 1시쯤은 한국의 오전 8시~9시쯤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각이다.
당시 내 마음이 그렇게 페인풀하진 않았지만 내가 잠을 자러 갈 때 당신은 잠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구절은 내 상황과 기가 막히게 잘 맞아들어가는 것이었다.
같은 지구에 있지만 현저하게 느껴지는 거리감, 같은 하늘을 보고 있지만 밤과 낮의 뒤틀린 간극이라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감성을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Brick'에서 보여준 신기(神技)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

그 외에 그녀를 기차역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쓸쓸하게 돌아오는 모습, 숫자를 거꾸로 세며 이제 당신을 내려놓겠다고 나지막히 체념하는 모습들이 한 편의 짧은 로맨스 드라마를 보듯 내 머리를 스쳤다.
쾰른[각주:1]은 가보지 못했지만 도이치란트로 향하는 여정 길에 들은 'Cologne'은 내게 정말 형용할 수 없는 벅참을 선사했다.
늦은 밤 혼자 맥주에 취해 침대에 누워 이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었던 그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이런 아이디어가 상용화되지 않는 걸까?


본론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이렇게 이야기를 질질 끌면 너무 가분수 모양의 글이 될 것 같으니 내 신변잡기는 이쯤 끝내고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해야겠다.
'Cologne'을 여러 번, 수십 번 반복하여 들은 끝에 나는 이 영어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받아 적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뜻을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예상이라도 할 수 있겠나?

Says here an astronaut
Put on a pair of diapers,
Drove 18 hours
To kill her boyfriend. 


성인 동화의 느낌마저 나는 몽환적인 살인.
우주 비행사가 기저귀를 차고 18시간의 운전 끝에 남자친구를 죽이러 갔다?
비유라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사실이라기엔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ㅡ 아마 1년이 채 안 되었을 것이다 ㅡ 나는 이 가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같은 가사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http://themellowjihadi.com/2011/10/13/dear-astronauts-space-station

 
1963년 워싱턴에서 태어난 리사 노왁(Lisa Nowak, 사진 왼쪽)은 해군 파일럿을 거쳐 1996년에 나사 입성에 성공한다.
그녀는 나사에서 10년간 열심히 내공을 쌓은 뒤[각주:2] 2006년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 총 12일 18시간 36분동안 우주에서 임무를 완수[각주:3]하고 성공적으로 지구에 내려온다.
별 사고 없이 무난하게 탄탄대로는 달려온 그녀의 인생이 한 순간에 곤두박질치는 사건은 2007년 2월 6일에 발발한다.

리사 노왁은, 확인된 바에 따르면, 2007년 2월 4일 차를 몰고 휴스턴을 출발해 동년 2월 5일 플로리다의 올랜도에 도착한다.
정확한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두 도시 사이의 거리가 900마일(1,400km)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벤 폴즈가 "에이틴 아워즈"라고 했던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평균 시속 50마일(90km) 가량인데 비록 엄청난 감정에 휩싸였다 하더라도 고속도로 규정 속도는 군인 본능으로 잘 준수했다거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미리 계산한 것이라거나,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러 감정을 추스렸다거나, 너무 피곤해서 한숨 잤다거나 하는 부대 사항을 고려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수치다.
차에는 여러 물건이 있었다.
라텍스 장갑, 검은 가발, 공기 권총과 탄알, 호신용 스프레이, 트렌치 코트, 드릴 해머, 검은 장갑, 고무 배관, 비닐 봉지, 현금 585$, 랩탑, 8인치(20cm) 접이식 칼까지.
누가 봐도 한 눈에 의심할 그런 채비다.

올랜도에 도착한 리사 노왁은 올랜도 국제 공항으로 향한다.
1시간 정도 공항에서 대기를 타던 그녀는, 아마도 비행기의 도착을 확인하고 기타 부대 시간을 고려한 뒤, 주차장으로 나간다.
바로 거기서, 방금 막 휴스턴에서 비행기편으로 도착한 공군 장교 콜린 쉽먼(Colleen Shipman, 사진 아래)을 포착한다.
여기서 잠깐.
콜린 쉽먼?
뭔가 이름이 이상하다.
창공을 나는 공군 장교 주제에 성이 선박 남자(shipman)라는 사실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 콜린(Colleen)이라는 이름이 ㅡ 콜린(Colin)도 아니고 ㅡ 이상하다는 것이다.
벤 폴즈는 "남자" 친구를 죽이러 갔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콜린은 여자 이름인 걸?

콜린 쉽먼은 리사 노왁의 전 남자친구인 윌리엄 오펠라인(William Oefelein, 사진 오른쪽)의 당시 애인이자 현재 부인인 여자다.
핀트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는 생각이 드나?
여기서 빗나간 핀트란, 리사 노왁의 타겟에 관해서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벤 폴즈의 가사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왜 이런 착오가 생겼는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그가 언론에서 초반에 공개한 불확실한 보도를 참조했든지, 가사로 옮기기 위해 '전 남자친구의 현 여자친구를 죽이기 위해' 대신 '전 남자친구를 죽이기 위해'라고 줄였든지, 또는 진부한 진행을 피하고 더 극적인 전개를 위해 사실을 조금 각색했든지 ㅡ 아주 비슷한 예는 아니지만 '감각의 제국' 같은 실화도 있지 않나 ㅡ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그녀가 기저귀를 차고 차를 몰았다는 사실 또한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초기의 경찰 보고에서는 그녀가 당시에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다고 했으나 그녀는 나중에 그 사실을 거부했다.
당연히 뻥을 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녀의 진술을 믿고 넘어가기로 하자.[각주:4]
두 번째, 세 번째 설명에 대한 이유는, 논지 없다.

하지만 네티즌을 이길 수는 없지. http://blog.pennlive.com/bizarrebazaar/2007/11/astronaut_autograph_anyone_tha.html


콜린 쉽먼은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것을 눈치챘고 서둘러 자신의 차로 향했다.
차에 막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잽싸게 차에 탑승해 문을 잠근다.
한 발 늦은 리사 노왁은 창문을 두드리고 차에 태워달라고 하며 울기 시작한다.
쉽먼은, 뭔가에 마음이 동했는지, 또는 그녀의 얼굴을 알아봤든지[각주:5] 창문을 조금 내렸는데, 노왁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호신용 스프레이를 공격용으로 뿌린다.
쉽먼은 차를 몰고 주차장 부스까지 갔고 거기서 경찰을 부른다.
몇 분 뒤, 경찰은 셔틀 버스 정거장 근처에서 무언가를 버리는 리사 노왁을 발견하고 현장에서 그녀를 체포한다.
당시의 죄목은 납치 시도, 폭행, 차량 강도 시도, 증거 인멸이었다.
일단 사건은 이 정도에서 일단락되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이 주는 흥미 덕분에 이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단숨에 받는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

여러 번의 법정 공판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리사 노왁은 나사에서 제명을 당함과 동시에 해군에서도 일계급 강등 및 그 외 제대(other than honorable discharge)[각주:6] 조치가 취해짐.
결국 실형을 선고 받진 않았고 1년 간의 보호 감찰을 명 받음.
2. 윌리엄 오펠라인 역시 나사에서 제명을 당했고,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뒤 해군에서 전역.
3. 두 사람은 현재까지 나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구 제명된 대원이 되었고, 나사는 이 사건 뒤로 행동 강령(code of conduct)을 만듦.
4. 위에서도 밝혔지만 윌리엄 오펠라인과 콜린 쉽먼은 2010년 결혼에 골인.


결론이 주는 교훈은 이상한 여자 만나지 말고 비상 사태에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라는 것이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성 관계에 주의하자는 것이겠다.

글을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벤 폴즈는 이 기이한 사건을 왜 가사에 넣었나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근데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알리가 있겠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자세한 사건의 전말을 아는 것과 무관하게 이 가사와 'Cologne'의 궁합이 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1. 'Cologne'은 쾰른의 영어식 표현이다. 그러니까 뮌헨과 Munich 같은 관계다. [본문으로]
  2. 솔직히 말하면 이 때 정확히 뭘 했는지 모른다. 그 동안 뭘 했는지 내가 알게 뭐람? [본문으로]
  3. 솔직히 말하면 이 때 정확히 뭘 했는지 모른다. 그 동안 뭘 했는지 내가 알게 뭐람? [본문으로]
  4. 빠지는 이야기지만 만약 이 여자가 기저귀를 차고 차를 몰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건의 양상은 많이 달라진다. 만약 그랬을 경우 두 가지 확실해지는 것은, 이 여자가 정말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것, 그녀의 모든 계획이 치밀한 계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이 아닌 치가 떨리게 끔찍한 사고로 기억될 수도 있는 일이 된다. [본문으로]
  5. 나중에 법정에서 쉽먼은 노왁을 아는 사람잉라고 밝혔다. [본문으로]
  6. 불명예 제대의 최상급 개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