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tic Monkeys <Favourite Worst Nightmare>

| 2012. 2. 6. 09:03

1집보다 차트 순위에서 일진보한 위력적인 원숭이들의 2집 'Favourite Worst Nightmare'.
기대는 충족시켰지만 그 기대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걸 보면 높아진 차트 순위는 과거 영광의 후광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기대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순전히 이기적인 팬덤에서 우러나오는 치사하고 졸렬한 행위다.
그러나 이들의 1집 'Whatever People Say I Am, That's What I'm Not'이 워낙에 반짝이는 원석이었기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불가항적이었다.
어쩌면 고작 1년이라는 세월 동안 훨씬 대단한 앨범을 들고 나온다는 것은 원래부터가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원숭이들의 잽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투박한 악기 구성도 바뀐 바 없고, 그 투박함 속에서 꽃을 피우는 세련됨도 변함이 없다.
꼭 프란츠 퍼디난드의 2집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들 역시 1집이 나온 뒤 1년 뒤에 2집을 냈고 차트 순위도 월등히 높았지만 나는 2집의 사운드에 조금 실망했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실망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별게 없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여전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앨범이다.
오늘따라 글도 잘 안 써지는데 괜히 어줍잖은 후빨을 하느니 그냥 가볍게 트랙 디테일만 짚고 넘어가련다.

2집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변화는 드럼 비트의 속도감과 역동성이 매우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앨범의 첫 싱글이자 첫 트랙인 'Brianstorm'은 이런 변화의 정점에 있는 트랙이다.
비트의 구조주의를 타파하고 자유롭지만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패기 ㅡ 이는 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ㅡ 가 청자의 고막을 강타한다.
2번 트랙 'Teddy Picker'와 이어지는 'D is for dangerous'는 조금 더 빡세졌다는 면을 제외하면 거의 1집과 흡사한 모습이다.

생각보다 주목을 받지 못한 'Balaclava'는 앨범 최고의 트랙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트랙이다.


부분 부분 프로그레시브함이 묻어나는 게 깊이 있는 복고의 느낌을 준다.
곡의 구성은 굉장히 다양한데 각각의 부분들이 사뭇 상반되는 이미지를 형성해 일종의 꼴라쥬를 보는 기분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완성도가 매우 높은 편.
1집의 특징 중 하나였던, 댄스 유발자적인 모습도 잊지 않고 담았다.
악틱 몽키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미래 ㅡ 물론 이 때 시점의 기준은 2집 발매 시점인 2007년이다 ㅡ 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트랙이다.

복고풍의 느낌은 2집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특징인데 이 변화의 대표 주자는 'Flourescent adolescent'다.
꼭 카라스 플라워스 스타일의 얼터너티브한 팝 넘버 같다.
투박한 구성에서 이렇게 풍성한 사운드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기타의 이펙팅이 이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6번 트랙 'Only ones who know'는 맨 마지막 트랙 '505'와 더불어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트랙이다.
1집의 'Mardy Bum'조차 이렇게 서정적이진 못했는데 이 트랙에서는 작정하고 감상적이 되려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제프 벡의 음악을 듣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차분하고 안정적인, 모든 것을 다 끌어 안을 것 같은 인류애 물씬 풍기는 기타 톤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토크 박스를 써서 'She's a woman' 같은 편곡을 했더라면 거의 플레이밍 립스까지 연상될 수 있는 거대한 잠재성의 트랙.

http://www.last.fm/music/Arctic+Monkeys/+images/33550655


'Do me a favour'의 조용해지는 뒷부분은 복고의 느낌을 넘어서 클래시컬하기까지 하며 'This house is a circus'는 16비트를 쪼개는 드럼이 일품이다.
'If you were there, beware' 역시 프로그레시브함이 돋보이는 트랙인데 다양한 기타 이펙팅에 힘 입은 결과다.
악틱 몽키즈의 트랙치고 스케일이 굉장히 큰 것에 비해 트랙의 길이가 4분 34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미스테리에 가깝다.
압축기라도 쓴 것 같은 느낌.

크게 할 말이 없는 10번과 11번 트랙이 지나면 경천동지의 '505'가 흘러나온다.
알렉스 터너가 직접 오르간을 맡은 이 진기한 트랙은 포스트 펑크의 정석 위에 이들만의 색을 입힌, 어떤 면에서 본질로의 회귀를 꿈꾸는 트랙이다.
위키피디어를 보면 1집 발매 후 세계 각지로 투어를 돌게 된 악틱 몽키즈가, 자신들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던 좁은 셰필드를 벗어남으로써 그들의 음악 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미 가사에서 이런 여정이 드러나는 '505'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빨리, 3집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