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tic Monkeys <Whatever People Say I Am, That's What I'm Not>

| 2011. 11. 14. 07:03

현재 영국 섬에서 활약하고 있는 밴드 중에서 가장 쿨하면서도 핫한 녀석들은 프란츠 퍼디난드라고만 알고 있던 내게 악틱 몽키즈의 음악은 나의 좁은 음악 세계를 향한 거대한 일갈이었다.
여전히 나의 선호는 프란츠 퍼디난드에게 기울어 있는 편이지만 어쩌면 이는 단지 관성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퍼디난드가 2년 전 초 여름 나의 머리를 단숨에 휘어잡았던 것처럼, 이 위력적인 잽을 날리는 원숭이들은 2011년 나의 겨울을 휩쓸어 갈 예정이다.


앨범은 시작부터 끝까지 빠릿빠릿한 긴장의 날이 서 있다.
4분을 넘는 트랙이 10번 트랙 'Perhaps vampires is a bit strong but...'과 마지막 트랙 'A certain romance'밖에 없다.
3분이 안 되는 트랙이 무려 8개나 된다.
그만큼 한 곡 내부에서 긴장감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는 뜻이 되리라.
위에서 이들의 음악을 '위력적인 잽'으로 비유했는데 내겐 이런 짧은 트랙의 연타가 짧게 치고 빠지는 잽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그랬다.
물론 나는 복싱을 할 줄 모른다.

밴드의 기본 구성은 사람들마다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내 머리 속에 있는 밴드의 기본 구성 ㅡ 기본 세트의 드럼, 일렉트릭 베이스, 일렉트릭 기타 2대, 사람의 목소리, 술과 담배와 여성팬 ㅡ 에 따르면 악틱 몽키즈의 음악은 맨 후자를 제외하고는 아주 충실하게 기본만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그들에게 수많은 여성팬들이 있겠지만 내가 이들의 앨범에서 여성팬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각설하고, 기본에 충실한 구성은 투박한 느낌을 준다.
이펙팅이 짙게 칠해진 것도 아니고, 악기들이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보컬이 '나는 가수다'처럼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아닌 것들' 역시 악틱 몽키즈 특유의 투박함에 한 몫 하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앨범을 들으면서 투박함만 느낀다는 것은 동전의 한 면만을 보는 슬픈 일이다.
사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드는 느낌은 투박함이라기보다 세련됨이다.
다소 분석적으로 듣다 보면 그런 특유의 투박함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지만 이 세상을 복잡하게 살아가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음악은 단지 세련됨이요, 신남이요, 흥겨움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변주로 비트의 느낌을 살리는 드럼, 이펙팅은 적지만 각자의 역할을 차분히 수행하는 두 대의 기타, 때로는 기타를 대신해 리프를 만들고 때로는 원래의 위치에서 묵묵히 사운드를 보좌하는 베이스, 거기에 끈적끈적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있는 알렉스 터너의 보컬은 폼생폼사 사나이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잉글랜드 북부에 사는 클러버들의 삶을 담았다는 가사와 'dancing'을 단싱이라고 읽는 그 발음을 듣고 있노라면 왜 이 앨범이 대영제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이 되었는지 수긍이 간다.
여담이지만 칵스의 'Oriental girl'을 처음 들었을 때, 가사의 첫 구절 'Look at her 단싱'을 듣고 악틱 몽키즈가 언제 이렇게 멜로딕해졌나 했다.
요새 멋쟁이들의 트렌드는 단연 단스다.

3번 트랙 'Fake tales of San Francisco', 8번 트랙 'Red light indicates doors are secured', 마지막 트랙 'A certain romance'에서는 복고적인 냄새가 솔솔 풍긴다.
이 앨범이 나올 때 멤버들의 나이가 20살, 21살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음악 세계가 상당히 성숙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7번 'Riot van', 9번 'Mardy bum' 등은 그나마 한숨 돌리는 트랙들.

인상적인 인트로를 가진 'I bet you look good on the dancefloor', '단싱'의 원조 격을 들을 수 있는 'Dancing shoes'도 좋지만 나는 'From the ritz to the rubble'이 가장 좋다.
사실 앨범 하나 소개하면서 이렇게 많이 링크를 걸어 보는 것도 처음일 정도로 이 앨범은 버릴 트랙이 참 없다.
더 쌈빡하고 더 어깨가 들썩이는 노래들은 천천히 알려주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친다.

이 트랙은 아침 7시에 들어도 좋다.
내가 단싱에 능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단스했었을텐데, 장식으로 달린 내 사지를 원망할 따름.
나 같은 앉은뱅이도 일어나 춤추게 만드는 ㅡ 최소한 그러고 싶게끔 만드는 ㅡ 이 원숭이들의 음악은 기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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