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야 뭐라 하건!

| 2011. 11. 11. 21:15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살았던 물리학자의 이야기.
사실 이 책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ㅡ 왜 ‘할 수 있는’이라는 열린 의미의 형용사를 썼냐면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가 같은 작가가 이보다 더 전에 쓴 책이기는 하나 두 책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서사적으로 순서가 뒤죽박죽이기 때문이다 ㅡ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이렇게 책을 둘로 나눠서 출판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두 책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별로 분량도 안 되는 책을 무슨 단행본 마냥 둘로 잘라 출판한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의 추세를 그대로 잇는 것인가 싶다.
지은이 랠프 레이턴은 ‘남이야 뭐라 하건!’의 머리말에 이 책의 이야기를 어디서 얻었는지, ‘남이야 뭐라 하건!’이 전작과 구분되는 점은 무엇인지 짧게 서술했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읽어 봐도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긴 하기만 말이다.
그가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파인만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싶었더라면 모든 정보를 한데 모아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배열했어야 옳았다.
그는 자기의 직무에 태만했던 사람이다.
라고 쓰려고 했는데 이런 제기랄, 그는 실제로 그런 작업을 해냈고 그 책은 ‘파인만!’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한국에서 출판된 것이 아닌가?
내가 실제로 ‘파인만!’이라는 책을 본 일은 없지만 그 책이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의 최악의 표지 디자인과 띠지를 개선하고, ‘남이야 뭐라 하건!’의 최악의 종이 재질 ㅡ 고작 357쪽밖에 안 되는 책이 두께가 무슨 600쪽짜리 책 정도다 ㅡ 을 교체했다면, 파인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여, 부디 돈 낭비하지 말고 ‘파인만!’을 꼭 사시길!

남이야뭐라하건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리처드 파인만 (사이언스북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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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 즉 위대한 물리학자 파인만의 인생에까지 태클을 거는 것은 아니다.
나의 불만은 어디까지나 비효율적인 분권과 독자를 우롱하는 편집에 국한된 것임을 알아달라.
일회성 에피소드적인 측면이 강조된 전작과는 조금 다르게 이 책에서는 파인만이 자신의 일생 동안 일관되게 견지한 기본 자세를 느낄 수 있다.
나는 그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 ‘파인만식 세상 살아가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본다.
첫째는 책의 제목과 같은 ‘남이야 뭐라하건!’ 정신(이하 남뭐! 정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남이야 뭐라 하건 무슨 상관이야?’ 하는 태도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린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어야 돼.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되고 말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내가 보기에 말이 안 되거나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면 우리 생각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해.

말이야 쉽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복잡해지는 원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어디까지 우리의 주관을 내세울지, 어디부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할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그 기준이 전자 쪽으로 기우는 순간 그 사람은 독단적이고 안하무인이며 말썽꾸러기에 매우 비사교적인 인물로 전락하고 말고, 후자에 치우치면 줏대 없는 호구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기준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나 하는 것은 본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남뭐! 정신은 타인이, 그 타인 자신의 기준에서 다른 타인을 판단하게 된다는 부정적인 평가 방법을 가지게 되며 리처드 파인만의 행적 중에서 가끔은 지나치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결과인 것 같다.
대부분 파인만은 전자로 기우는 행동을 많이 한 편이며, 그런 행동들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야 유쾌하지 당시에 실제로 그를 상대한 사람들에겐 아주 꼴불견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들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남뭐! 정신은 아웃이다.

http://blog.naver.com/fjqmfl3503/40068417844


그러나 나는 남뭐! 정신의 기준은 그런 정신을 갖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며, 타인 각자의 입장에서 그런 기준을 정하는 것은 매우 건방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편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무례했던 적이 있고, 그런 방법론은 마땅히 잘못되었다고 비판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남뭐! 정신을 발휘한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의 행동이 진정 무례하게 비춰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충만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신경 쓰지 않고 다소 독단적으로 굴어도 자기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으며 실제로 그렇게 스스로 인생의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지 않았는가!
범인이 해내기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의 원칙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내가 잘 아는 과학 분야에서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억누르고 오직 증거를 매우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어떤 이론을 만들었다면 그 이론의 좋은 점과 함께 나쁜 점을 동시에 설명해야 한다. 과학을 함으로써 말하자면 순수와 정직이라는 행동 규범을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순수와 정직’.
그 울림마저 아름다운 두 단어가 지니는 미덕을 리처드 파인만처럼 잘 가진 사람은 드물다.
파인만의 일화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엉뚱함, 웃김 ㅡ 때로는 우스움, 뜨거움, 장난꾸러기와 같은 이미지는 바로 저 순수와 정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아일린과 감동적이고 초인적인 사랑을 나눌 때도, 책 뒤에 실린 ‘과학의 가치’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한 물리학자의 시선을 이야기 할 때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도 ㅡ 이 이야기는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 실려 있다, 챌린저 호 폭발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섰을 때도 그는 순수와 정직이라는 미덕을 이지 않았다.
이런 특별한 순간이 아닌 매 일상적인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옮긴이는 이 책에서 파인만 아버지의 양육법과 그에 따른 파인만의 성장 과정을 내가 언급한 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의 중요함이 있다고 적어놨다.
그 의견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나 나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옮긴이가 주목했던 것에 감명을 받았다기보다, 파인만이란 사람이 얼마나 어려서부터 영리했는지를 깨닫고 나의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꼈을 뿐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너무 심술을 부리는 거고 그냥 단지 별 느낌이 없었다.

즐거이 읽기 좋은 책이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에겐 더욱 더 권하고 싶다.
주의할 사항은 딱 한 가지.
아직 이 책이든 전작이든 실제로 책을 사지 않았다면, ‘파인만!’을 사라는 것이다.
이런 데서 쓸데 없이 남뭐! 정신을 발휘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