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를 하는 사람, 또는 해봤던 사람이라면 상당수가 공감하겠지만 종종 음악을 듣다 보면 꼭 이 곡은 카피를 해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게 하는 그런 음악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 그런 소망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그저 꿈으로 떠돌다가 흐지부지 공중 분해되고 만다.
나에게 전자의 예는 꽤 많은 편이다.
고등학교 졸업 공연 때 만족스럽게 노래했던 뮤즈의 'Sober', 대학교 1학년 때는 크라잉 넛의 '명동콜링', 3학년 때 검정치마의 '강아지'와 자미로콰이의 'Black crow' 등 그 당시에 꼭 해봤으면 좋겠다는 노래를 내가 직접 무대에 올린 기억이 여럿이다.
물론 후자의 예도 있다.
강한 드라이브 사운드에 꽂혀 지냈던 고등학생 때 판테라의 'Cowboys from hell'을 합주해보려다가 관뒀고 ㅡ 나는 필립 안젤모의 역할을 맡을 뻔 했다, 대학교 초반에는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을 카피하려다가 다론 말라키안의 변태 같은 튜닝에 혀를 내두르며 관뒀고, 휴학을 하고 밴드에 상당히 전념하던 시절에는 어떻게 해서든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불러 보고 싶었으나 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세션들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혀 ㅡ 사실 레드 제플린을 카피하겠다는 바람은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생각이다 ㅡ 그만둔 적이 있다.
여기에, 아마 후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곡이 있다.
이름의 울림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제프 버클리의 'Eternal life'가 바로 그 주인공.
제프 버클리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감상 이야기는 2011년이 가기 전에 포스팅 될 그의 'Grace' 앨범 리뷰에 맡기고 이번에는 'Eternal life' 한 곡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Grace' 앨범에서 4번째이자 마지막 싱글로 나온 'Eternal life'는 처음 듣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놀라운 매력을 지닌 녀석이다.
긴장감을 고조하는 인트로가 끝나자마자 초장부터 드라이브 걸린 베이스 라인이 강하게 치고 들어온다.
뒤편에서는 역시 드라이브 걸린 기타가 그르렁 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마틴 루터 킹의 암살, 제2차 세계 대전, 가이아나의 참극과 찰스 맨슨의 살인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는 제프 버클리의 의도와 아주 적합하게 맞아 들어가는 도입부다.
바로 이 '분노'가 'Eternal life'를 지배하는 분위기다.
쉴 줄을 모르는 베이스가 그 분위기의 2등 공신이며 강약 조절을 모르고 후려 갈겨대는 드럼이 3등, 아무래도 제프 버클리의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섞인 목소리가 1등이다.
그 분노는 가사에도 잘 녹아있어 가사의 뜻을 음미해가며 들으면 한 구절 한 구절이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분노의 시너지가 팡팡 발생한다.
그렇다고 모든 신경을 분노를 느끼는 것에만 집중하지는 말자.
제프 버클리는 우리에게 'All I want to do is love everyone'이라고 분명히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말도 안 되는 형이상학적 표현이 끝도 없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의 표현을 좀 더 정제할 여유를 주기 위해 앨범 리뷰로 넘기기로 한다.
2번의 버스(verse)가 지나가고 두 번째 코러스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는 부분이 지나간 후부터가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다.
초로 따지자면 약 2분 30초부터 약 3분 30초까지 ㅡ 어떻게 보면 2분 30초부터 곡의 끝까지다.
나는 이 1분에 달하는 시간을 바짝 긴장하면서 듣는 것이 'Eternal life'의 감상 포인트라고 본다.
사실상 곡의 유일한 변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는 곳이면서 곡의 분위기가 폭풍이 휘몰아치듯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는 것이 극적인 느낌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장대하게 펼쳐지는 코러스, 작렬하는 드럼, 갑자기 찾아온 정적, 다시 고조되는 분위기.
곡이 끝날 때까지 유지하는 팽팽한 긴장감 덕에 트랙이 끝나면 뭔가 허전함이 물밀듯이 마음을 채워서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이 노래를 듣자 마자 공연하고 싶다는 느낌이 불끈 솟았다.
그러나 채 한 번을 다 듣기도 전에 그 꿈을 실현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느낌도 같이 들었다.
우선은 악기 세션의 난이도가 마음에 걸렸다.
이런 느낌의 곡은 연주를 완전히 몸에 체득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나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내가 'Eternal life'에서 맡고 싶은 보컬 파트를 도저히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를 절대 하지 못하리라는 절망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결론적으로 나의 현실과 그들의 노래의 괴리는 실로 엄청나다는 것.
혹시나 제프 버클리의 라이브는 어떨까 하고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그 괴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난 느낌이다.
고작 4분 50초밖에 되지 않는 노래에서 서사시적인 구성이 느껴지는 것은 제프 버클리의 우수함에 대한 방증.
4분 50초 후에 내게 드는 두 역설적인 감정 또한 제프 버클리의 우수함에 대한 방증.
그래도 나는 이 노래를 꿋꿋이 들을 것이며 공연의 꿈 또한 버리지 않겠다는 염세적인 희망마저 제프 버클리의 우수함에 대한 방증.
어떤 경우에 그런 소망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그저 꿈으로 떠돌다가 흐지부지 공중 분해되고 만다.
나에게 전자의 예는 꽤 많은 편이다.
고등학교 졸업 공연 때 만족스럽게 노래했던 뮤즈의 'Sober', 대학교 1학년 때는 크라잉 넛의 '명동콜링', 3학년 때 검정치마의 '강아지'와 자미로콰이의 'Black crow' 등 그 당시에 꼭 해봤으면 좋겠다는 노래를 내가 직접 무대에 올린 기억이 여럿이다.
물론 후자의 예도 있다.
강한 드라이브 사운드에 꽂혀 지냈던 고등학생 때 판테라의 'Cowboys from hell'을 합주해보려다가 관뒀고 ㅡ 나는 필립 안젤모의 역할을 맡을 뻔 했다, 대학교 초반에는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을 카피하려다가 다론 말라키안의 변태 같은 튜닝에 혀를 내두르며 관뒀고, 휴학을 하고 밴드에 상당히 전념하던 시절에는 어떻게 해서든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불러 보고 싶었으나 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세션들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혀 ㅡ 사실 레드 제플린을 카피하겠다는 바람은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생각이다 ㅡ 그만둔 적이 있다.
여기에, 아마 후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곡이 있다.
이름의 울림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제프 버클리의 'Eternal life'가 바로 그 주인공.
제프 버클리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감상 이야기는 2011년이 가기 전에 포스팅 될 그의 'Grace' 앨범 리뷰에 맡기고 이번에는 'Eternal life' 한 곡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Grace' 앨범에서 4번째이자 마지막 싱글로 나온 'Eternal life'는 처음 듣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놀라운 매력을 지닌 녀석이다.
긴장감을 고조하는 인트로가 끝나자마자 초장부터 드라이브 걸린 베이스 라인이 강하게 치고 들어온다.
뒤편에서는 역시 드라이브 걸린 기타가 그르렁 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마틴 루터 킹의 암살, 제2차 세계 대전, 가이아나의 참극과 찰스 맨슨의 살인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는 제프 버클리의 의도와 아주 적합하게 맞아 들어가는 도입부다.
바로 이 '분노'가 'Eternal life'를 지배하는 분위기다.
쉴 줄을 모르는 베이스가 그 분위기의 2등 공신이며 강약 조절을 모르고 후려 갈겨대는 드럼이 3등, 아무래도 제프 버클리의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섞인 목소리가 1등이다.
그 분노는 가사에도 잘 녹아있어 가사의 뜻을 음미해가며 들으면 한 구절 한 구절이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분노의 시너지가 팡팡 발생한다.
그렇다고 모든 신경을 분노를 느끼는 것에만 집중하지는 말자.
제프 버클리는 우리에게 'All I want to do is love everyone'이라고 분명히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말도 안 되는 형이상학적 표현이 끝도 없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의 표현을 좀 더 정제할 여유를 주기 위해 앨범 리뷰로 넘기기로 한다.
2번의 버스(verse)가 지나가고 두 번째 코러스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는 부분이 지나간 후부터가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다.
초로 따지자면 약 2분 30초부터 약 3분 30초까지 ㅡ 어떻게 보면 2분 30초부터 곡의 끝까지다.
나는 이 1분에 달하는 시간을 바짝 긴장하면서 듣는 것이 'Eternal life'의 감상 포인트라고 본다.
사실상 곡의 유일한 변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는 곳이면서 곡의 분위기가 폭풍이 휘몰아치듯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는 것이 극적인 느낌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장대하게 펼쳐지는 코러스, 작렬하는 드럼, 갑자기 찾아온 정적, 다시 고조되는 분위기.
곡이 끝날 때까지 유지하는 팽팽한 긴장감 덕에 트랙이 끝나면 뭔가 허전함이 물밀듯이 마음을 채워서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이 노래를 듣자 마자 공연하고 싶다는 느낌이 불끈 솟았다.
그러나 채 한 번을 다 듣기도 전에 그 꿈을 실현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느낌도 같이 들었다.
우선은 악기 세션의 난이도가 마음에 걸렸다.
이런 느낌의 곡은 연주를 완전히 몸에 체득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나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내가 'Eternal life'에서 맡고 싶은 보컬 파트를 도저히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를 절대 하지 못하리라는 절망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결론적으로 나의 현실과 그들의 노래의 괴리는 실로 엄청나다는 것.
혹시나 제프 버클리의 라이브는 어떨까 하고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그 괴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난 느낌이다.
그래 차라리 내가 엿을 먹고 말겠다.
고작 4분 50초밖에 되지 않는 노래에서 서사시적인 구성이 느껴지는 것은 제프 버클리의 우수함에 대한 방증.
4분 50초 후에 내게 드는 두 역설적인 감정 또한 제프 버클리의 우수함에 대한 방증.
그래도 나는 이 노래를 꿋꿋이 들을 것이며 공연의 꿈 또한 버리지 않겠다는 염세적인 희망마저 제프 버클리의 우수함에 대한 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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