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kes <Room On Fire>

| 2011. 11. 5. 16:30

스트록스의 1집은 꽤 듣기 좋은 편이었다.
이 정도면 1집을 충분히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자연히 2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평면 공간에서는 두 점이 주어지면 직선을 그릴 수 있다.
머리 속에서 스트록스 1집의 트랙들에 해당하는 가상의 점을 찍고 두 번째 앨범이 위치할 곳을 예상해 보았다.
고정불변할 것은 스트록스의 트레이드마크인 담백한 8비트일 것이다.
문제는 다른 부분이었다.
만약 이들이 1집 'Is This It'에서 보여준 사운드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틀림없이 과거의 영광을 모두 말아먹는 선택이 되리라.
조금의 기대와 조금의 걱정을 안고 듣기 시작한 스트록스의 2집.
결론부터 짚어 보면, 스트록스의 2집 'Room On Fire'는 1집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


무엇이 2집을 이렇게 칭찬하게끔 만드는가?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린 'Room On Fire'가 전작에 비해 나아진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들이 종전의 다소 틀에 박힌 듯한 주형물식 사운드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스트록스의 1집은 준수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다양성과 신선함을 선호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맛있는 붕어빵이긴 했으나 결국 죄다 모양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했다.
아무리 붕어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같은 붕어빵을 계속해서 섭취하면 질리게 마련이다.
나의 아쉬움은 그런 질리는 현상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그랬던 스트록스가 그들도 모르게 그어버린 가상의 둘레에서 벗어났다.
아무 생각 없이 듣다 보면 내가 몇 트랙쯤 들었는지 잘 모르겠고 이 노래가 저 노랜지, 저 노래가 이 노랜지 구분이 잘 가지 않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본래의 색은 잃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수단을 통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이루어 낸 환골탈태이기 때문이다.
스트록스 스타일 대로, 담백하고 옹기종기한 요소들의 조합을 바꿔가며 곡 내부에서 분위기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그런가 하면 멜로디적인 면도 한층 강화되었다.
원래 이들 음악의 핵심이 멜로디나 코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더 세련된 멜로디는 정박자 8비트가 그루브감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기존의 음악이 청자의 상하 움직임을 자극했다면 2집은 확실히 전후 좌우의 평면 공간적인 움직임을 유도하는 면이 있다.

어떻게 들으면 검정치마의 펑크 넘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10번 트랙이자 이 앨범의 세 번째 싱글 'The end has no end'이 방금 언급한 것들을 손쉽게 종합하는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패러디 장면이 간간히 등장하는, 밀라 쿠니스와 에바 멘데스가 출연한 뮤직 비디오를 보자.


강한 인트로 뒤로 급격히 한산해지는 버스(verse), 베이스가 가세하는 듯 하더니 조금 뒤엔 드럼을 제외하고는 모든 악기가 급격하게 빠진다.
이어지는 기타 리프의 브릿지, 버스와는 다른 분위기의 코러스.
뜬금없이 튀어 나오는 기타 솔로.
분위기가 훨씬 고조된 두 번째 버스,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가는 브릿지.
단순한 요소들의 콤비네이션만으로도 이렇게 신나고 흥겨운 곡을 써냈다.
대구를 이루는 마무리는 또 얼마나 깔끔한가.

5번 트랙 'You talk way too much', 9번 트랙 'The way it is', 마지막 트랙 'I can't win' 등은 이와 같은 새로운 흐름의 곡이다.
3번 'Automatic stop', 4번 '12:51', 6번 'Between love & hate', 8번 'Under control' 등은 이전의 스타일을 독실하게 유지한 트랙이다.
어느 쪽이든 나쁘진 않다.
단지 나에게는 후자에서 지루함의 문제가 발생할 뿐이다.

스트록스의 2집 'Room On Fire'는 1집의 시작점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직선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혹독한 평가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과연 이 다음 앨범에서는 자신들의 색을 얼마나 유지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할지 기대가 된다.
이런 식의 기대를 안겨주는 밴드가 있다는 것은 청자의 입장에서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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