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Eyed Peas - Alive

| 2012. 1. 29. 15:43

통화 연결음 서비스, 다른 말로는 흔히 컬러링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이 언제인지는 그렇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03년에 처음 휴대폰 ㅡ 팬텍앤큐리텔 제품이었다 ㅡ 을 손에 얻게 된 내가 예전의 컬러링 시스템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업체들이 ㅡ 대체 그 많던 회사와 그 회사들에서 일했을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ㅡ 말도 안 되는 양의 통화 연결음을 양산해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당시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젊은이들에겐 세련됨의 상징으로 컬러링 하나쯤은 필수적으로 장착하고 다녀야 했다는 것 정도다.
그 짧고 조악한 음질을 가진 컬러링은 특히나 10대에겐 그 사람의 정체성과 거의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최대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되 남들과의 차별성도 고려하고 동시에 청자가 되는 그 전화 상대방의 대중적 취향까지 배려해야 하는 선택이었기에 애초에 컬러링을 무엇으로 하는지 고르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ㅡ 게다가 왜 그런 쓸데 없는 곳에 돈을 써야 하냐는 부모님의 핀잔 또한 이겨내야 했다 ㅡ 이미 정해진 컬러링을 자기 쇄신의 목적으로 바꿀 때도 굉장한 고뇌가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락과 메탈 계열의 컬러링을 선호했다.
라르크 엔 시엘의 'Stay away'를 골랐던 기억은 분명히 있고, 확실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레드 제플린의 'Rock and Roll'을 선곡했던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판테라류의 스래쉬 메탈에 도전했다가 주변 아이들의 성화를 들었던 것도 같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컬러링으로 기억나는 것은 정말 지독히도 오래 들어왔던 그 사람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너바나 언플러그드 커버 ㅡ 정말 몇 년을 듣다보니 그의 컬러링이 빌 위더스의 곡으로 바뀌었을 때 그 느낌이 너무도 이상하여 발신 번호를 몇 번이나 확인했더랬다 ㅡ 그리고 기간만 따지자면 나랑 가장 오래 사귀었던 그 사람의 'L-O-V-E.' 나탈리 콜 버전, 그리고 바로바로 포스팅 제목에 써 있는 트랙, 현존 최고의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Alive'다.

처음에는 아예 무슨 노랜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에게 전화를 걸면 잠깐씩, 오랜 기간을 들어오던 어느 날, 이 노래의 풀버전을 공연 준비 중에 접했고 그 노래를 같이 듣던 밴드원 모두가 ㅡ 컬러링 보유자를 포함한 ㅡ '이거 엄청 좋은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뒤로 'Alive'는 범범(Bumbum) 멤버들의 Top 5, 양보해서 Top 10에 드는 그런 트랙으로 자리매김했다.
비록 첫 만남은 비좁은 수화기 속 스피커를 통해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린 사두용미(蛇頭龍尾)의 케이스.


'Boom boom pow'가 첫 트랙을 장식하는 전대 미문의 히트 앨범 'The E.N.D.'의 6번 타순을 맡고 있는 트랙 'Alive'는 그 순서가 'I gotta feeling' 다음에 위치하기 때문인지, 또는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성도만큼은 앨범을 통틀어 그 어떤 트랙보다 높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사운드, 비트, 멜로디, 템포, 라임(rhyme) 등 곡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쉽다.
청자가 부담감을 느낄 부분은 처음부터 ㅡ 여태까지 블랙 아이드 피스의 음악을, 윌아이엠의 행보를 전반적으로 돌이켜봤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단어 선택이다 ㅡ 존재하지도 않았다.
'My humps'에서 지독한 색기를 풍기는 퍼기조차 이 곡에선 자신의 여성성을 완벽히 포기할 정도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굳이 능동적이 되지 않고 그저 흘러나오는 진동에 귀와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햇빛 쨍쨍 내리쬐는 아름다운 열대의 백사장을 즐기는 법은 다양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자신의 몸에 비키니 라인을 새기며 태닝을 할 수도, 남성미를 억지스럽게 드러내며 축구, 럭비 따위의 구기 종목 경기를 벌일 수도, 바나나 보트를 타고 또는 자기 사지의 능력을 믿고 대양을 향해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이 열대 해변의 비유에서 'Alive'가 맡을 역할은 넉넉하기 그지없는 푹신푹신한 고무 튜브다.
엉덩이만 잘 자리 잡으면 파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그냥 넋 놓고 이국적 바캉-스의 쾌적함과 안락함을 만끽할 수 있다.
말 그대로의 쾌락이요 아타락시아이며 내 귀의 작은 오르가즘이다.

제목 : 한 여자의 오르가즘. 부제 : 인어공주의 부모님.


테마 파크 데이트가 심장 박동 인식에 대한 착각을 교묘하게 이용해먹는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을 고려한다면, 들을 때마다 가… 가버렷!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Alive'를 컬러링으로 사용해 이성을 요리할 때 더 없는 무기로 쓸 수 있지 않겠나.
'Alive'를 컬러링으로 쓰던 그 때 그 사람이 이런 교묘하고 불순한 의도로 음모를 꾸몄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근데 뭐 사실 아무렴 어때?
그도 나도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고, 서로에게 오르가즘을 주고 싶을 만큼 동성애적이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Arctic Monkeys <Favourite Worst Nightmare>  (2) 2012.02.06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2) 2012.02.04
로아나 하  (0) 2012.02.02
Ben Folds Five - Brick  (0) 2012.02.01
네이버 음악 이 주의 발견 - 국내 앨범 1월 넷째 주 40자평  (0) 2012.01.30
로아나 상  (0) 2012.01.29
The Hangover  (0) 2012.01.29
Stevie Wonder <Recorded Live : The 12 Year Old Genius>  (0) 2012.01.23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0) 2012.01.23
Ben Folds - Still Fighting It  (0) 20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