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나 상

| 2012. 1. 29. 10:39

세 번째로 읽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짧게 정리하자면, 소설 속 관점에서 봤을 때, '장미의 이름'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미스테리 소설이고 '푸코의 진자'가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한 미스테리를 다룬 소설이라면 '로아나'는 과거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미스테리에 대한 소설이다.
서술 시점상, 즉 서사적 서술법에 따르면 과거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이중성을 띠게 되는데 바로 이 이중성이 소설에 대한 흥미를 배가한다.
최소한 상권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로아나.상여왕의신비한불꽃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지은이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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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과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미스테리가 무슨 말이냐?
에코는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 담긴 기억은 모두 잊었으나 그렇지 않은 별 잡다한 지식은 다 알고 있는 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이 독특한 설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의 좋은 점은 사랑했다는 사실을 추억하는 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 하나의 추억만으로 살아간다. 예를 들어 외제니 그랑데가 그러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만 할 뿐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 상황은 그보다 더욱 고약하다. 어쩌면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기억이 나지 않다 보니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 아니 무의식의 흐름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같은 얌보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에코가 채택한 방식은 바로 난무하는 메타포다.
관념과 관념 사이에 느슨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들 사이에서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를 이어나가며 실제와 기억, 그리고 그 기억에 대한 기억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자연히 해박하디 해박한 그의 지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고서를 매매하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ㅡ 고서 수집은 실제로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적인 취미 중 하나다 ㅡ 현학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틈새만 있다하면 능글맞은 너구리처럼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어김없이 그리고 유감없이 그 유창한 언어로 '하하, 나는 이만큼이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동네방네에 알린다.
이런 능글 맞은 너구리가 너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고 그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리저리 통제하여 어느 정도 일관된 방향으로 유지하게끔 도와주는 역자 이세욱의 조곤조곤한 주석은 정말 놀랍기 짝이 없다.
이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학' 같은 것이라도 전공했단 말인가? ㅡ 그런 학문이 있기는 있나?
어떤 면에서는 에코와 마찬가지로 현학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는 이윤기의 주석보다도 훨씬 질이 높다.

상권까지의 키워드는 안개다.
"여왕의 신비한 불꽃"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끝까지 안개라는 단어가 핵심 키워드로 유지될지 잘 몰라서 "상권까지의"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어쨌든 "안개"가 잔뜩 낀 기억의 저 끝을 찾아 떠나는 기약없는 여정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정말이지 안개와 관련하여 수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그의 필력을 이렇게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올 뿐이다.
대체 이 사람은 살면서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여자도 만나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여행도 하고 뭐도 하고 저것도 하는 그 사이에 무슨 짬을 내서 이렇게 많은 책을 이렇게나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
시간 여행자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나온 것처럼 혹시 그의 삶은 수십번을 윤회한 어떤 지혜로운 영혼의 현신이 아닐까?

기억 여행이라는점에서 영화 '메멘토'를, 모두의 시간과 역행하여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그 기억 속에서 점점 젊어지는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이야기 구조의 프로토 타입이 되는 고전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사람의 기억과 심리를 환원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라야 가능한 발상이니 만큼 그 기원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 뒤로 다시 며칠(5일, 7일, 10일?)이 흐르는 동안, 내가 보고 읽고 들은 것들이 기억 속에서 뒤섞였다. 어쩌면 그렇게 뒤섞이는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몽타주의 정수라고 할 만한 것이 나에게 남았으니 말이다. 나는 종류가 다른 증거들을 한데 모아, 때로는 생각과 감정의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서, 때로는 대조를 통해서 잘라 내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남은 것은 내가 그 며칠 동안 보거나 느낀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에 내가 보거나 들었을 법한 것도 아니었다. 내게 남은 것은 일종의 허구였고, 열 살 때 내가 무슨 생각을했을까를 놓고 예순 살에 만들어 낸 가정이었다. 이것만 가지고 <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벌어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에 느꼈으리라고 추정되는 것을 파피루스 문서와 같은 형태로 되살릴 수는 있었다.

상권 후반부 얌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에선 서술의 디테일이 극에 달하는데 바로 이 때부터 이 소설이 자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용이 진행될수록 원래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한 한 사람의 노력이라는 주제가 희미해져어느 순간에 이르면 독자의 머리 속에 얌보는 온데간데 없고 2차대전 당시의 이탈리아만이 덩그러니 남게 된다.
'로아나'가 단순히 흘러간 과거와 그 과거에 살던 에코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연민과 노스탤지어를 담은 송가일 수도 있다는 중요한 논점을 던지는 부분.
이에 대한 답은 하권의 평으로 넘기는 바.

전반적으로 내가 읽었던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서술체의 느낌이 목가적이고 차분하여 에코의 소설 중에서는 '이지 리딩'에 속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자전적 느낌 때문에 내 머리 속 얌보의 이미지에 움베르토 에코의 인심 좋은 미소가 매치되는 것도 이런 '이지함(easiness)'에 한 몫 거들고 있으리라.
비록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의 뜨거움도 포함하여, 어떤 치열함이 끼어들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후끈거리는 에코의 모습이 썩 잘 상상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양치질을 할 때처럼, 내 몸은 성행위 방식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은 느린 리듬을 가진 잔잔한 움직임이었다. 파올라가 먼저 오르가슴에 올랐고(언제나 그랬어요, 하고 그녀는 나중에 말했다), 곧이어 내가 올랐다.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결국 이것이 나의 첫 경험인 셈이다. 사람들 말마따나 정말 좋았다. 내가 별로 놀랍게 받아들인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성행위가 좋은 것임을 이미 머리로 알고 있는 듯했다. 몸으로는 단지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괜찮았어>하고 나는 털썩 등을 대고 누우면서 말했다. 「이제 사람들이 왜 그걸 밝히는지 알겠어.」
「원 세상에,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예순 살 먹은 남편의 동정을 빼앗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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