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 2012. 2. 4. 10:56

이제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 하나의 관용구가 된 '내일을 향해 쏴라',
우리 말 제목만 보면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하이틴 청춘 영화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궁금해서 심야에 나 홀로 감상했다.
심야 나 홀로 감상이 방법론적으로 유니크한 면이 있는 건 아니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영화를 이렇게 본다.

그런데 이 영화, 시작부터 느낌이 이상하다.
영화가 처음 상영된 1969년보다 20년이 넘은 뒤에 태어난 Y세대들을 위해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고급 정보를 주자면, '내일을 향해 쏴라'는 서부극이다.
게다가 영어 원제는 'Shot through tomorrow'나 'You pay tomorrow!' 따위도 아니고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다!
대체 버치 캐서디와 선댄스 키드가 뭐란 말이냐!
에바 캐서디와 선댄스 영화제[각주:1]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이와 같은 사실은 모두 영화를 처음 보면서, 그리고 이에 대한 정보는 영화를 전부 본 이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도 내가 얻은 정보들을 조금이나마 제공하는 것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도 올리고 재미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스포일러의 위험도 없으니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도 없는 셈이다.
뭐, 당신이 '제길! 이 영화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서부극이었다니! 너 때문에 엄청난 반전 거리를 놓쳤잖아! 아오, 씨X! 스포하지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이라고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냥 악플 달아라.

이거 실화임. http://streaming.egloos.com/2404127


이어지는 내용 중 사실 관계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위키피디어에서 얻었다.

버치 캐서디와 선댄스 키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악명이 높았던 열차, 은행 강도 콤비다.
버치 캐서디는 유타 출신의 13남매의 장남으로, 10대 초반에 집을 떠나 농장일을 하다가 가축도득 마이크 캐서디를 알면서 범죄의 길에 눈을 뜨게 된다.
그 후 그는 와이오밍에서 잠시 도살업자(butcher)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때 버치(Butch)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 별명에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멘토였던 마이크 캐서디의 성을 따 버치 캐서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자잘한 강도 짓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 처음 선고 받은 2년형 중 18개월을 복역하고 풀려난다.
그리고는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각주:2]라는 범죄 조직을 결성하는데, 그들이 첫 작업(?)을 마친 직후 선댄스 키드를 조직원으로 영입하게 된다.

이제 선댄스 키드의 인생을 살펴보자.
선댄스 키드는 펜실배니아 출신의 5남매 중 막내로, 스무 살이 되던 해 와이오밍의 선댄스에서 총과 말을 훔치다 붙잡혀 18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서 선댄스 키드라는 별명을 얻었고 복역을 마친 뒤에 농장 일을 거들며 살다가 1896년 말에 버치 캐서디의 와일드 번치로 합류한다.
버치의 나이 30세, 선댄스의 나이 29세의 일이다.

이것이 와일드 번치의 멤버들 실사. 좌측 아래가 선댄스 키드, 우측 아래가 버치 캐서디. http://en.wikipedia.org/wiki/File:Wildbunchlarge.jpg


영화는 이미 두 사람이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각각 상당한 악명을 떨칠 무렵부터 시작한다.
이제 슬슬 영화 이야기를 하려나보다고 기대했다면, 아쉽지만 아직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는 사격술 외 각종 신체적인 활동보다 계획을 짜고 꾀를 내는 것에 능한 버치 캐서디의 캐릭터와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을 지녔으나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하는 선댄스 키드의 캐릭터는 순전히 각본을 위한 각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버치의 경우 그가 직접적으로 저지른 이전 범죄 경력을 보건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각종 육체적 활동에 상당히 능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갱의 리더였다는 점을 이용해 그에게 다소 입만 산 캐릭터를 부여한 게 아닐까.
극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그의 모습이 다소 왜곡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본다.
반면, 선댄스 키드의 경우에는 그가 총질에 익숙했다는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위키피디어는 오히려 와일드 번치에 속해 있던 키드 커리(Kid Curry)[각주:3]와 선댄스 키드에 대한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키드 커리야말로 갱단 중에 가장 거친 녀석이라고 알려졌고 언론 매체에서 두 사람 다 키드(The Kid)와 같이 애매한 단어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선댄스 키드는 사람을 실제로 쏴죽였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로 거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중년에 가깝게 나오는 버치 캐서디의 캐릭터와 그보다는 더 팔팔함을 과시하는 선댄스 키드의 캐릭터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호적상 1살 차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역시 널리 허용되는 범주 내의 조작이라고 볼 수 있다.
버치 캐서디를 연기했던 폴 뉴먼과 선댄스 키드를 연기했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나이 차이는 11살인데 일단은 이 갭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볼 만하고, 둘째로는 이미 설정된 똘똘한 버치와 잘 싸우는 키드의 캐릭터에 맞춘 또 다른 설정일 가능성도 있고, 마지막은, 이건 내가 봐도 상당히 솔깃한 추측인데, 13남매의 장남이었던 버치 캐서디와 5남매의 막내였던 선댄스 키드의 가정적 환경을 고려한, 일종의 팩션적 설정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별로 안 획기적이면 말고.

둘 다 엄청 잘 생기고 난리다. http://www.moviemobsters.com/2010/01/19/throwback-tuesday-butch-cassidy-and-the-sundance-kid-1969


마지막으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부분은 캐서린 로스가 연기했던 에타 플레이스라는 캐릭터다.
사실 에타 플레이스에 대해서는 선댄스 키드의 범죄 행위와 필적할 만큼 거의 정보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녀가 학교 선생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다 쌩 구라다.
어쨌든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을 떠나 그 이후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하니 그런 미스테리함을 이용해 맘대로 에타 플레이스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무를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자, 그럼 영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미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던져줬으니 ㅡ 나만의 생각인가? ㅡ 영화 이야기는 짧게 줄인다.
영화 자체는 매우 잘 만들었다.
특히나 옛날의 카메라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그 세련된 촬영, 자연스러운 화면 연출, 고생 드럽게 했을 것이 빤히 보이는 로케이션 등이 돋보이더라.
폴 뉴먼의 영화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왜 이 사람이 명배우일 수밖에 없는지 속속들이 깨달을 수 있었고 '위대한 개츠비'에서 처음으로 봤던 젊은 시절의 로버트 레드포드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도 어김없이 프로 브래드 피트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 영화가 버치 캐서디와 선댄스 키드를 바라보는 방식이 맘에 들지가 않는다.
영화 중간에도 잠깐 등장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그러니까 법을 침해하지 않고는 도저히 돈을 벌 능력들이 없는 사람이다.
이들을 둘러싼 거품을 빼고 말하자면 이 놈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 도태되어도 한참 전에 굶어 죽었어야 할 그런 개똥차반이라는 말이다.
한낱 악질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 그들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시도 따위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버치 캐서디가 되도록이면 인명 피해를 내지 않으려는 신사적인 강도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다.
최후의 명장면 ㅡ 단지 영화로서의 명장면이다 ㅡ 에서 영화는 이 둘의 끈끈한 의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이러니하게 표현하며 사실 범죄자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식의 메시지로 물 타기를 시도하지만 그런 얕은 수로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만회할 수는 없는 법.
'퍼블릭 에너미' 역시 전설적인 은행 강도를 다룬 영화지만 이 영화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지, 이런 극단적 미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미화의 끝, 거의 김씨 부자 숭배와도 맞먹을 이 끔찍한 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근대 영화의 명장면이라고 꼽을 바로 이 장면이다.
하하, 유영철이나 조두순 같은 사람으로 영화를 만들어 다음과 같은 장면을 넣었다고 가정해보자.
예상되는 반응들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으면, '내일을 향해 쏴라'가 참으로 미국스러운 영화, 미국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1. 선댄스 영화제는 선댄스 키드를 연기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만든 영화제다. [본문으로]
  2. 영화에는 벽 속의 구멍(Hole-in-the-wall) 갱단이라고 하지만 위키피디어는 둘을 다른 페이지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자면, 와일드 번치는 벽 속의 구멍 갱단의 부분 집합 같은 개념으로 오클라호마에서 활약(?)하던 동명의 갱단에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그래서 위키피디어는 버치 캐서디가 조직한 집단을 버치 캐서디의 와일드 번치로 구분하고 있다. 영화에서 이와 같은 현실 조작을 꾀한 이유는 같은 시기에 출시된 '와일드 번치'라는 영화와 빚어질 수 있는 혼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본문으로]
  3. 위 사진에서는 오른쪽 위에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사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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