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ers

| 2012. 3. 2. 17:24

http://loveprojekt.blogspot.com/2011/08/dreamers.html


낯이 익은 사진이라고?

당신이 대한민국 사람이고 지금 나이대가 2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라면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사진을 접하기까지 취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예상하기에 이 외설과 예술의 중간에 서 있는 사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은 한 때 대한민국 SNS 판도를 호령하던 싸이월드 미니홈피일 것이다.
대개 이 사진이 걸려 있는 미니홈피는 깔끔한 단색 위주의 스킨에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하우스 음악이나 재즈 따위가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뭐 이 사진이 주는 인상이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는 감이 있다.
나 또한 나의 지인인지 그 지인의 지인인지 하는 사람의 미니홈피에서 이 사진을 처음으로 봤다.
그 때 우연히 이 사진이 모모 패션 잡지의 한 장에서 오려낸 것이 아니라 '몽상가들'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이 야리꼴리한 영화를 꼭 보고 말리라고 다짐을 했는데 이제야 그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뭐 나의 선택이 그렇게까지 가치 있었다는 말까지는 못 하겠더라도 말이다.

몽상가들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2003 / 영국,이탈리아,프랑스)
출연 마이클 피트,에바 그린,루이 가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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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이 왜 '몽상가들(The Dreamers)'인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실을 꿈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슨 마약에라도 홀린 듯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이 상실된 남매와 그 이상야릇한 분위기에 점차 순응하는 한 이방인의 이야기.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꼬마들에겐 매우 매력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찬 눈 부신 삶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비좁은 욕조 속에 남녀가 얽혀 담배를 벅벅 피우고 'Hey Joe'를 듣는 광경이라니.
널부러지기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름다운 포장을 위해 영화는 감각적인 기법을 많이 동원한다.
옛날 냄새가 물씬 나는 OST들을 총동원함은 물론, 영화 중간 중간에 1930년대 영화 장면을 꼴라쥬 형식으로 끼워넣어 세련된 맛을 극대화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필모그래피를 트랙킹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류이치 사카모토와 같이 작업한 두 영화부터 봐야지.

이 영화를 화제거리로 만든 일등 공신인 베드신도 꽤나 감각적이다.
에바 그린이라는 마성의 끝을 달리는 여배우가 아니었다면 성립하기 힘들었을 장면이긴 하지만, 어쨌든 신인 배우였던 그녀를 용케도 섭외했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찍어내지 않았나.
에바 그린의 에이전트와 부모님이 모두 이 영화에 출연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다는데 신념을 굽히지 않고 참 힘들었을 연기를 소화한 그녀에게 박수를 짝짝짝.

에바 그린. http://aboutcelebritypopular4.blogspot.com/2011/06/eva-green-pictures.html


하지만 그냥 오늘을 살아가고,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범인의 입장에서 보기에 '몽상가들'은 참 개차반 같은 이야기다.

나처럼 지독한 현실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꿈에서 도무지 깨어나지 못하는 자들, 아니 도무지 깨어나려고 하질 않는 자들이다.
뒷통수 한 대 뻑 때려주고 분명히 얼 빠진 얼굴로 멍하니 있을 그 얼굴에 대고 "꿈 깨 임마. 현실은 현실이야."라고 톡 쏴주고 싶다.
개똥 냄새가 나는, 거의 '살로 소돔의 120일'을 방불케하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꿈이 끝나려는 것을 느낀 그녀가 모두에게 가스 자살을 선사하려는 장면은 현실 기피자들의 나약한 사고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
무엇이든 자기들 마음대로 하다가 현실이라는 벽에 턱 부딪치자 그냥 단순하게 현실을 떠나야겠다고 결정하는 모습이라니.
존스타운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공간은 꿈이 아니다.
루시드 드림조차 될 수 없다.
왜냐면 처음부터 현실은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몽상가들"에 대한 일갈을 내리며 현실은 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우리 눈 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며 그로부터 도망치려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자는 강한 정치적 메시지가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꿈에 취해 있던 관객의 뺨따귀를 모지게 때린다.
엔딩 직전의 장면은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인데, 그렇게 꿈에서 깬 사람들이 현실을 대하는 방법론에 있어 다시금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몰로토프 칵테일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용감한 남매와 저들과 같은 야만인이 될 수 없다고 뒤로 빠지는 우리의 유학생의 대조를 보며 여전히 우리에겐 꿈을 꾸는 사람들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주는 교훈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보지 말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에바 그린 화보나 찾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