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러 나가다

| 2012. 3. 6. 15:12

1903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한 조지 오웰은 길지 않았던 인생에서 큰 전쟁을 여러 차례 겪은 인물이다.
2011년 4월에 초판이 발행된 따끈따끈한 책 '숨 쉬러 나가다'[각주:1]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쓴 소설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거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세상과 그 후의 세태를 대비, 그 전쟁이라는 이상한 녀석이 불러온 끔찍한 변화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양상을 토대로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한 불안함과 그 전쟁이 인간 사회에 불러올 또 다른 방식의 영향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 뚱보의 이야기를 담았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흐릿한 봄 하늘 같은 느낌이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냉소적인 개그를 적절히 배치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의 글이기에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숨쉬러나가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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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의 느낌이 강한 1부의 하이라이트는 아래에 인용한 부분이다.
회사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점심 시간이 되어 잠시 밖으로 나와 런던 시내에서 자신의 예산으로 먹을 수 있는 싼 점심을 찾다가 시킨 소시지를 시켜 한 입 물었는데 그 안의 내용물에서 생선 맛이 난 상황.
오웰은 그 소시지의 겉과 속이 다른 점에서 출발해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의 폐해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논점을 옮긴다.
시대 정신이 가득하지 않은 작가라면 쉽사리 캐치할 수 없는 디테일이다.
나는 그 느글느글한 것을 어디다 뱉을지 몰라 아직도 혀로 더듬고 있었다. 모든 걸 엉뚱한 무엇인가로 만들어낸다는 독일의 식품공장에 대한 기사를 어디서 본 기억이 났다. 그걸 '에르자츠'라고 하던가. 거기선 정말 생선으로 소시지를 만들고, 생선은 물론 다른 무엇으로 만든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현대 세계를 깨물어보고 그게 정말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게 된 느낌이었다. 요즘 우리 사는 꼴이 그런 식이다. 모든 게 매끈매끈하고 유선형이며, 모든 게 엉뚱한 무엇인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디나 셀룰로이드며 고무며 크롬강 칠갑이고, 밤새 아크등이 빛나고, 머리 위로 유리 지붕이 덮여 있고, 라디오는 모두 똑같은 음악을 울려대고, 녹지는 남아나지 않고, 어디나 시멘트로 덮이고, 중성 과일나무 아래 모조 거북이가 풀을 뜯는다. 하지만 본질에 다가가 단단한 그것을 깨물어볼 때(이를테면 소시지 같은 것 말이다) 느껴지는 것, 그건 다른 무엇이다. 고무 같은 껍질에 든 썩은 생선이요, 입 속에서 터지는 오물인 것이다. 
주인공은 아침 출근 길에서만 많은 것을 본다.
소시민의 가정 경제는 파산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느릿느릿 다가가고 있을 뿐이고, 가족이라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선(善)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으며, 주택 금융 조합이라는 공적 사기가 난무하고 청년 취업은 사상 최악에 자본주의 쳇바퀴 속에서 어차피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직속 상사는 권위주의만을 내세우는 광경을 직접 체험한다.
그러다 신문에서 우연히 어떤 단어와 마주치게 되는데 주인공 조지 볼링은 바로 그 단어로부터 과거로의 회상 여행에 빠진다.

전체 소설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2부는 전부 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차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 부분은 마치 움베르토 에코가 '로아나'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과 아주 흡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유년기에 대한 서술은 나까지 아련하게 만들 정도로 흐뭇하고 그윽하다.
옮긴이 이한중은 조지 오웰이 템스강 근처에서 살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부터 이 유년기 서술의 토대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한다.
워낙 서술의 디테일이 돋보이기 때문에 애초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오른쪽이 어린 조지 오웰. http://www.orwelltoday.com/readerlatinorwell.shtml

남은 우리는 정처없이 떠돌 듯 오래오래 걸었다. 남자애들이 온종일 집을 떠나 있을 때, 그것도 허락 없이 그랬을 때 흔히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내가 진짜 소년으로서 먼 길을 걸어본 최초의 경험이었다. 조와 내가 케이티 시몬즈와 함께 걷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우리는 타운 가장자리에 있는 마른 도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녹슨 깡통과 회향풀이 가득한 곳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 점심을 내게 조금씩 나눠주었고, 시드 러브그로브한테 1페니가 있어서 누군가 '페니 몬스터'를 사와 모두 나눠 마셨다. 아주 덥고, 회향풀 향기는 아주 강하고, '페니 몬스터'의 탄산가스 때문에 모두 트림을 했다. 그 다음 우리는 별 목적도 없이 허연 흙길을 터덜터덜 걸어 어퍼빈필드까지 갔다(그쪽 길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언덕 정상 부근의 너도밤나무 숲으로 가니 낙엽이 카펫처럼 깔려 있고, 굵고 매끈한 나무 줄기가 하늘로 솟아 있어 높은 나뭇가지에 있는 새들이 점처럼 보였다. 그 시절엔 이 숲 어디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뚱뚱보 볼링의 과거는 이렇게 보석 같은 것만 있지는 않다.
그 소년은 나이가 먹어 학교에 다녀야 했고 자신의 시골 마을이 점점 도시화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으며 그와 더불어 점점 삐거덕거리는 가정 경제를 위해 학교를 그만 두고 일찍부터 일을 배워야 했고 형편없이 늙어가는 부모님을 돌봐야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가 회상하는 과거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비록 조지 오웰이 참여했던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은 아니지만, 나름 전선에서 싸웠던 경험[각주:2]을 토대로 오웰은 일개 병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오웰이 직접 싸웠던 전투의 양상이 다소 지루했던 탓인지, 아니면 이 사람이 현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원래 이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묘사하는 전쟁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막 치열하고, 피가 벅벅 튀기며, 전우애와 애국심이 꽃을 피우는 그런 장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조지 오웰의 전쟁은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체계 하에서 바보 놀음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의 자세한 전쟁관에 대해서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참고하길 바란다.

어쨌든 전쟁은 끝난다.
영국은 분명히 전쟁의 승전국이 되었지만 막상 국내의 분위기는 굉장히 이상해진다.
오웰은 이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전쟁은 나를 홱 낚아채어 내가 알던 옛 시절 바깥 세계로 내동댕이쳤고, 전후의 야릇한 시기 동안 나는 그 시절을 거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중략) 하지만 그 무엇도 더이상 내 마음속에 살아 있지 않았다. 나와의 인연이 끝나버려 멀게만 느껴지는 무엇일 뿐이었다. 언젠가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전쟁 직후는 참으로 이상한 시기였다. 사람들이 그리 생생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전쟁 자체보다 이상할 정도였다. 
이 때부터 주인공의 무기력한 삶이 시작된다.
어영부영 어떤 여자 ㅡ "결혼하고서 처음 2~3년 동안 내가 힐다를 죽일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는 그런 여자 ㅡ 와 결혼하게 되고, 자신의 삶은 완전히 수렁에 빠지게 ㅡ "어느날 밤 아직 꽤 젊다고 느끼며 여자 생각 같은 걸 하다가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자신이 죽는 날까지 아이들 부츠를 사주기 위해 죽어라 일만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이 먹은 뚱보일 뿐임을 철저히 자각하게" ㅡ 된다.

이야기는 다시 현재 시점으로 넘어오며 3부로 접어든다.
이념 싸움으로 몰아가는 또 다른 전쟁에 대한 대비에서 느끼는 모순과 배신감, 세태에 무관심한 지식인 층에 대한 다소 간의 불만을 내세우는 것을 빼면 이 파트는 4부를 위한 징검다리다.
주인공 조지 볼링은 문득 왜 자신이 그 좋은 기억이 담긴 옛 고향에 돌아가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자책하며 아내 몰래 자기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시궁창 같았던 집 근처를 떠나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고향으로 떠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4부.
당연하지만,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시궁창 같았던 자기 동네의 복사판이었다.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오며 생각한 것 하나. 이제 과거로 돌아가본다는 생각일랑은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있다. 
환멸을 느끼고 옛 고향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오웰은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차에서 혼자 있으니 의심스럽던 온갖 것들이 자못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로어빈필드에 오면서 어떤 의문을 품고 있었다. 우리에게 닥칠 것은 무엇인가? 게임은 정말 시작되었나? 우리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계는 영영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리고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옛 시절은 끝나버렸고, 그걸 다시 찾으러 다닌다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로어빈필드로 돌아갈 길은 없다. 요나를 다시 고래 뱃속으로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벽은 과거와 현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이다.
소설 속 주인공 조지 볼링과 소설의 저자 조지 오웰은 모두 다가올 전쟁에 대한 불안감 또는 그 전쟁이 불러올 또 다른 단절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끔찍한 전쟁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시하고 있음에도, 그리고 결국 전쟁을 벌이는 것이 사람에 의지에 달린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바꿀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안다. 아무튼 그때 난 알 수 있었다. 헤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원한다면 맞서 싸울 수도 있고,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못 본 척할 수도 있고, 스패너를 들고 나가 사람들과 누군가의 얼굴을 내려칠 수도 있다. 하지만 벗어날 길은 없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쟁.


딱히 해결책은 없다.
하긴 전쟁이 다가오는 마당에 무슨 해결책이 있겠나.
그 때쯤 가서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일어날 기미가 있을 때 진작에 막혔겠지.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전하려는 경고 메시지와 문제 의식만으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따지고 보면 소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회적 역할은 독자들에게 문제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지 구체적인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며 독자들을 계몽시킬 필요는 없다.

중반까지는 글이 꽤 잘 써지나 싶었는데 아주 졸렬한 마무리가 된 것 같다.
책 뒤에 나와 있는 해설 ㅡ 무려 이 책의 옮긴이가 직접 쓴! ㅡ 이 훨씬 훌륭하다. 
고(故) 조지 오웰에게는 그저 죄송할 따름.
  1. 영문 제목은 Coming Up For Air. [본문으로]
  2.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카탈로니아 찬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