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 2012. 3. 14. 16:23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발간된 그의 신작.
워낙 도발적인 두 개념을 갖다 붙인 제목이었기에 책의 출간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오다 이제야 읽게 됐다.
전반적인 감상은 다른 알랭 드 보통의 책과 비교했을 때 딱 평타를 치는 정도의 책이라는 것.

http://www.apieceofmonologue.com/2009/07/alain-de-botton-responds-to-his-critics.html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역설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제목의 책 안에 담긴 내용은 무엇일까.
드 보통은 책의 서두에서, 무신론계와 종교계 양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융단폭격식 비난을 피하기 위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인지 밝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몇 가지 특정 종교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에는 저마다의 옹호자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 책은 세속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적용되더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는 종교 생활의 여러 측면을 검토하려고 한다. 이 책은 종교에서 보다 독단적인 측면을 제거함으로써, 골치 아픈 이 행성에서의 우리의 유한한 생애 동안에 가뜩이나 회의적인 현대인이 마주쳐야 하는 재난과 슬픔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측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 책은 이제 더 이상은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현명한 것들을 구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흥미로워 보인다, 아니 이미 흥미롭다.
근데, 이어지는 내용들은 생각보다 흥미롭지가 못하다.
단순한 과잉 기대의 탓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아무래도 문제는, 알랭 드 보통이 알고 있는 종교와 내가 알고 있는 종교 사이에 있는 거대한 괴리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

드 보통이 인용하고 있는 종교의 쓸 만한 프레임들은 과거 1X 세기부터 박제화된 것들이거나 그가 거주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영국에서 현재 접할 수 있는 것들, 또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접하게 된 이국적 느낌이 강한 것들이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종교들로부터 버려야 할 컨텐츠는 버리고, 취해야 할 프레임은 취하자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던진다.
하지만 그의 종교관은 내 입장에서 봤을 때 너무 이상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종교들, 즉 대한민국의 종교들은 이미 자신의 뿌리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고 세속화될 대로 세속화되어 악영향이란 악영향은 전부 내뿜고 있는 우리 사회의 독소 숙주와 같은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을 대한민국에서 딱 10년, 아니 5년만 살게 한 뒤에 자신이 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다시 한 번 읽히는 생체 실험을 해보고 싶다.
과연 그가 말한 종교(religion)는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종교 ㅡ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대 교회, 거대 사찰들의 "부패"라는 단어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ㅡ 와 같은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의 부패한 종교 이야기를 더 길게 하는 것은 모두의 화만 불러일으키는 주제이므로 이보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속 교회의 현실.


어쨌든 드 보통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종교와, 내가 알고 있는 세속적인 종교의 차이가 워낙에 큰 것이라 책의 내용에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는 것이 요지다.
아무래도 둘 중 어느 한 쪽의 것을 부르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야 개념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상적인 종교는 그 자체의 선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그대로 "종교"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옳겠다.
반면 후자의 썩을 대로 썩은 종교는 혀에 힘을 주고 입 천장을 살짝 튀기는 귀여운 발음으로 "똥교"라고 부르기로 했다.
절대 대변에 관한 단어가 아니고, 그냥 어린 아이들처럼 좀 귀엽게 발음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나는 전반적으로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의 내용에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본적인 논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예전에 알랭 드 보통이 날린 트윗 중에 리처드 도킨스를 필두로 하는 공격적인 무신론을 원리주의적인 무신론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드 보통의 책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로 나 자신이 이 원리주의 무신론의 노선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종교관에 이곳 저곳 수정할 여지가 생겼다는 점은 차치하고, 참 재미있는 논리가 아닌가.
무신론에 있어 원리주의란 개념을 끌어오다니.
"원리주의 무신론"의 대두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결이 심화 구도에 접어들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새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이 책을 내낸 인상 쓰고 봤냐고 묻는다면 또 그것은 아니올시다이다.
책의 내용을 굳이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 지을 필요 없이, 단지 '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라는 주제에서 바라본다면 무척 흥미로운 글로 읽힌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주제만 쏙 빼낸다면 ㅡ 물론 그 주제를 빼놓는다는 것은 이 책의 알맹이 대부분을 빼먹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지만 ㅡ 그냥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알랭 드 보통식 관점들의 책이 되는데, 그런 면에서는 다른 드 보통의 책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진다.
즉, 꽤 쓸 만한 책이라는 뜻이다.

"쓸 만한데?"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파트는 교육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교육관을 직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이 대목의 핵심은, 종교가 자신의 교리를 가르치는 방식을 차용한다면 세속적 교육의 효과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종교의 교육 방법이 교조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장이었다.
우선 드 보통은 자체 모순을 가지고 있는 현대 대학 교육의 문제점부터 짚는다.
졸업 연설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인문 교육을 지혜나 자각의 획득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지혜나 자각 같은 목표는 대학에서 학과별로 시행하는 강의나 시험의 일상적인 방법과는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일방적인 미사여구 대신 실제로 하는 일을 근거로 판단하면, 대학은 철저하게 한 분야에 초점을 맞춘 다수의 전문직 종사자(변호사, 의사, 기술자 등)를 배출하며, 또한 문화적으로는 박식하지만 윤리적으로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에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소수의 대학 졸업생을 배출한다.
드 보통은 자신이 지적한 내용의 문제를, 더 인간적인 주제, 어쩌면 피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세속의 모습 그대로를 가르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의 내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 대학 교육의 문제는 오히려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더 많이 기인하는데, 그는 이 방법론의 문제를 다음의 한 단락으로 깔끔하게 제시한다.
이 대목을 읽고 나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아직까지 정리가 다 되지 않았다.
제기랄, 이거 순 나 같은 사람을 겨냥한 스나이핑이 아닌가.
우리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도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그만 간과하고 있다. 즉 우리는 책을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책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육 기관, 교육자가 취해야 할 의식과 태도를 정리한 것은 아래와 같다.
존 웨슬리는 자신의 설교 모음집 서문에서 단순성을 향한 자신의 집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옹호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평범한 진실을 목표로 삼았다. ……나는 멋있고 철학적인 사변을 모조리 제거해버렸다. 복잡하고 난해한 추론을 모조리 제거해버렸다. 심지어 학식을 드러내는 것조차도 가급적 모조리 제거해버렸다. 나의 목표는 ……내가 평생 동안 읽은 것을 모조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육에 대해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학문 중 다수는 내용의 면에서 일반 이성을 훨씬 뛰어 넘는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방법론적으로 아무리 꼼수를 쓰더라도 적합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드 보통은 오귀스트 콩트의 이야기를 꺼내며, 강력한 이성의 힘으로 똘똘 뭉친 무신론적인 사회의 재현에 대한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알랭 드 보통은 런던 한복판에 책에서 언급한 "관점의 사원"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계획에 대해 우리의 용사 도킨스는 비판적인 태도를, 멍청한 종교계는 다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정독한다면 저 두 쪽의 태도가 각각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과 잘못된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

종교에 대해 상당히 굳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나의 종교관을 재정립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많은 텍스트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받긴 했지만 내 독서 관성을 당장 멈추기에 충분한 정도는 아니었다.
조만간 신과 종교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더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