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나무가 되는 꿈>

| 2012. 3. 9. 22:51

지난 번 나희경의 앨범 리뷰보다는 훨씬 높은 퀄리티다.
비록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의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타는 친 기분!

이것으로 두 번째 네이버 출연 달성.
네이버 버전은 여기서 확인 가능!


선정의 변 :

이번 주 이 주의 발견은 훌륭한 앨범들로 가득 했다.
개인적으로 존 박의 앨범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잠재력에 비해 아쉬운 앨범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반면, 박지윤의 8집이 대중음악상 선정위와 네티즌 선정위로부터 골고루 좋은 평을 받아 이 주의 발견에 선정되었다.
앨범의 완성도를 고려하면 절대 아쉬운 선택은 아니다.


앨범 리뷰 : 성공적인 두 번째 시도 <나무가 되는 꿈>

비록 박지윤이 그녀의 7집, 그러니까 무려 6년 만에 발표된 그 정규 앨범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어느 정도 인정 받았다고 하더라도 많은 대중들에게 박지윤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타를 잡고 차분히 곡을 쓰는 모습이라기보다 '성인식'에서의 도발적인 모습일 게다.
솔직히 나는 그랬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트랙이 지나고 두 번째 트랙이 지나고 계속해서 트랙을 넘길수록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신보와 더불어 현재 컨셉의 모태가 되었다는 7집도 들었다.
그때서야 인정했다.
박지윤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성인식의 그녀를 떠올리는 것은 이제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을.

JYP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단 소속사를 차리고 발매한 7집을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한다면 그 시도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번에 공개한 8집, 다르게 말해 그녀의 두 번째 시도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대중이 박지윤을 바라보는 방식의 근본적인 사고 전환을 유도한다.
자연주의의 틀 안에서 담담한 삶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여자.
이것이 진정한 박지윤의 모습이다.
어쩌면 박지윤이라는 사람은 애초에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릇된 색안경을 너무 오래 끼고 있던 것일까.

변화, 변신 따위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새로운 시도라고 칭한 7집과 8집 <나무가 되는 꿈>으로 초점을 옮기자.
2009년에 발매된 그녀의 7집을 인상 깊게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은 두 앨범의 컨셉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박지윤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어쿠스틱과 포크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전자적인 사운드를 가미한 박지윤 스타일의 싱어송라이팅은 두 앨범 모두를 지배한다.
거대한 맥락에서 7집과 8집을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를 찾자면 8집의 사운드가 7집의 그것보다 전반적으로 더 진지해지고 무거워졌다는 것, 꼭 앨범 제목처럼 "나무"의 묵직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보컬 레코딩의 톤은 더 짙게, 슬로우 템포의 비트는 더 무겁게, 중저음의 현악 구성은 더 깊게 잡았다.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꽃이나 풀이 아닌 나무로 정한 박지윤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

두 앨범의 성향이 비슷한 이유로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이 작·편곡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스타일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7집 <꽃, 다시 첫 번째>의 작·편곡에 참여했던 디어클라우드의 용린, 박아셀이 8집에서 제작에 관여한 트랙은 앨범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이 외에 7집에서는 루시드 폴, 넬의 김종완 등이 앨범 제작을 도왔고, 8집에서는 노리플라이의 권순관, 메이트의 정준일 등이 그녀에게 멋진 곡을 선사했다.
비록 그녀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선보였다고는 하지만 앨범의 완성에 기여한 사람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박지윤 자신의 역량만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여기서 지적하려는 점이 그녀의 음악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고 이 앨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박지윤이 단순히 그녀의 언어와 목소리만이 아닌, 자신만의 메시지와 화법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면, 큰 흐름에서 엇비슷한 감성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영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트랙 하나 하나의 완성도를 보면 그 치밀함에 놀라게 된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깊은 현악 세션이 점진적인 분위기 고조를 돕는 '그땐', 어떤 면에서 콜드플레이를 연상시킬 만큼 서정의 한계에 도전하는 타이틀 곡 '나무가 되는 꿈', 잔잔한 감성이라면 대한민국 누구에게라도 뒤지지 않을 박아셀이 피쳐링한 '소리' 같은 트랙들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깊이감은 가볍게 듣고 넘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는, 7분 32초에 달하는 마지막 트랙 '소리'는 서사시적이고 점층적인 진행을 사용해 청자의 마음에 뜻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어떤 싱어송라이터도 가볍게 소화할 수 없는 분위기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무턱대고 진지함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가사를 가벼운 셔플 리듬과 따뜻한 피아노 소리에 얹은 '너에게 가는 길', 앨범 전체의 분위기에서 가장 벗어나는 동시에 트렌디한 창법을 구사해 팝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럴꺼야', 드라이브 걸린 기타의 사용이 두드러지는 락 넘버 '그 날들처럼'등은 충분히 이지 리스닝이 가능한 트랙들이다.
다소 아쉬운 점은 그녀의 개성 강한 목소리가 사운드의 다양함을 따라가기에 버겁다는 것 정도.

전반적으로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앨범이라고 본다.
한계성이 동시에 노출된 점이 조금 아쉽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면서도 잠재성을 드러냈고 내용 면에서 진지한 음악적 성찰을 이루어냈다.
"음악인" 박지윤의 다음 앨범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