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춤을 추다

| 2012. 3. 19. 10:52

올해 들어 네 번째로 보는 공짜 공연.
나중에 공연 기획 분야에 종사하는 지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를 절실히 느꼈더랬다.

공연은 지난 3월 11일에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감상만 쓰려고 하면 자꾸 더 급한 일이 생겨서 미루고 미루고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말로 표현하기엔 상당히 부담되는 공연이었던지라 공연 직후에 글을 썼더라도 별 내용이 없었겠지만 일주일이나 지나버린 지금 와서 떠올려보니 쓸 말이 더 없다.

공연의 컨셉을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앙상블시나위의 전통 음악과 무용, 그리고 비주얼 미디어 아트의 만남"이다.
전통 음악이든 무용이든 미디어 아트든 다들 나의 관심 분야와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아주 단순한 형태의 감상 외의 것은 전달할 도리가 없다.

이 공연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중 가장 나의 눈을 끌었던 것은 아무래도 무용이었다.
<전통에서 춤을 추다>에는 전통 무용, 고전 발레, 현대 무용, 현대 발레라는 네 가지 춤의 장르(맞나?)가 총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기럭지 길고 늘씬늘씬한 남녀들이 몸의 동작으로서 표현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뭐 알고 봐왔던 춤들이라고는 고작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말초적인 것들밖에 없는 나로서 이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리다.
나의 깊은 감명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춤을 진지하게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춤 추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에게 혁명이나 다름 없었다는 말이다.

여태까지 내가 알아왔던 춤의 전부. http://splayer.tistory.com/137


앙상블시나위의 음악 역시 춤 못지 않게 훌륭했다.
고등학교 때 한참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빠져 지낼 때가 있었다.
비록 깊은 수준에까지 들어가지는 못 했고 입문 단계에서 그치기는 했지만 앙상블시나위의 음악이 그 때 듣던 소위 아트 락이라는 장르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아트 락이 깊은 부분에서 클래식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한 서구의 장르 잣대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클래식을 국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 있을지도.
장르 색깔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서 이스태틱 피어(Estatic Fear)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준 높은 크로스오버에 감명을 받은 나는 현장에서 앙상블시나위의 음반을 사지는 못 했고 그냥 네이버 음악에서 음반을 다운로드 받았다.
한국 예술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 하는 나의 얇은 머니 클립을 탓하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지인이 참여했던 비주얼 미디어 아트는 일단 분량 자체가 꽤 적었어서 정말 할 말이 없다.

꼭 충무로 어귀에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신당역 근처에 있는 충무아트홀엔 처음 가보는 것이었는데 대극장의 의외로 큰 규모에 놀랐다.
분명히 1층의 객석이 적지 않은 양이었음에도 2층에서 보이는 무대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 시작 전에 몰래 찍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로 공연을 보러 가면 공연장의 규모와 설비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전반적으로 꽤 괜찮은 인상을 받았다.
충무아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면 그 공연의 질을 정하는 것에 있어 환경 탓을 할 수는 없겠더라.

공연 관계자들이 모두 마음을 모아 정성스레 준비한 공연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마지막 양 사이드에서 터져나오던 종이 대포가 아주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단순히 거슬리는 일들에 대한 과잉 기억에 불과할 뿐이다.
훌륭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춤은 언제부터 배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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