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ing Private Ryan

| 2012. 3. 28. 16:16

정말 미국적인 메시지만 담겨있다는 한숨 섞인 불평이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수밖에 없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예비역 편입 기념으로 감상했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니 최대한 말을 아끼고자 노력하겠다.
이 정도의 영화라면 분명히 훌륭한 수준의 리뷰가 많을 터.

1. 뭐 꼬집어보자면 여러가지 옥의 티가 나오겠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자랑하는 연출의 리얼리티는 여태까지 본 그 어떤 현대 배경의 전쟁 영화보다 뛰어나다.
영화가 개봉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손에 땀을 쥐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전투 장면을 감상했다.
특히 마지막에 다리를 놓고 벌이는 전투는, 이미 누가 어떻게 죽고 엔딩이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바짝 졸이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11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기록이 헛된 것은 아니다.

2.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멀리서 보자면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는 길까지의 로드 무비로 볼 수 있는데, 이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감수성 풍부한 업헴, FM적인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저격수 잭슨, 밀러 대위의 수전증, 아이를 데려가려다 우연히 죽게 되는 카파조, 인식표 체크를 말리는 웨이드, 장군을 위해 장갑을 억지로 추가했다가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드윈트 소위, 어머니의 사사로운 감정보다 전투에서의 승리, 더 나아가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대의를 생각하는 라이언 일병, 한 번 풀려났다가 결국 다시 전장에서 마주치는 독일군 포로, 마지막 전투를 앞둔 군인들의 폭풍전야와도 같은 한가함 등 그 어떤 작은 에피소드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나 메딕 웨이드의 죽음과, 어렵사리 잡은 독일군 포로에 대한 처우, 이어지는 논쟁, 갈등 해결을 위한 밀러 대위의 일장 연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또 다른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빈틈없는 편집과 대본의 승리.
스티븐 스필버그는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다.

3. 역시 연출의 승리라는 말을 하려면 배우의 열연이 뒷받침되지 않을 수 없다.
톰 행크스라는 굵직한 주연 배우의 리드 아래, 톰 시즈모어, 에드워드 번즈, 맷 데이먼 등을 비롯한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연출의 리얼리티를 탄탄하게 보장했다.

그런데 그 도이치 저격수에게 당해 목숨을 잃고 마는 배우가 빈 디젤이라는 사실은 아시는지? http://www.aveleyman.com/ActorCredit.aspx?ActorID=25623

3. 하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포장된, 다양한 전쟁관이 우리로 하여금 유도하는 주제가 무엇인가?
보수의 좋은 예라고 평가 받기도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아버지의 깃발>을 본 사람이라면, 두 영화가 얼마나 대조적인 주제를 이끌어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포장은 화려하지만 껍데기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표리부동의 전형이라면, <아버지의 깃발>은 단촐한 연출로도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극적인 분위기 연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다고 하더라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미국적, 지극히 미국적인 메시지에서는 절대로 공감할 수가 없다.

4. 게다가 사실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은 분명히 일병이 아니고 이병이다.
아래 클립의 첫 장면에서 맷 데이먼의 좌측 팔에 달린 약장은 미 육군 일병의 것이 아닌 이병의 것이다.

왜 대한민국에서 라이언 이병은 일병으로 일계급 특진되었는가?
뭐, 라이언 이병이 라이언 일병으로 전역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당시에 밀러 대위의 분대가 구하려고 했던 것은 라이언 "이병"이지 라이언 "일병"이 아니다.
따라서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아무도 이 계급 특진에 대한 미스테리를 집어내지 않았냐는 것이 되겠다.
어쨌든 이 영화 제목의 진정한 번역은 <라이언 이병 구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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