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 2011. 7. 4. 14:21

나는 언제 어느 자리에 나가든 조지 오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내가 조지 오웰의 책이라고는 단 두 권, '동물농장'과 '난 왜 쓰는가'밖에 읽지 않았다는 것.
그만큼 조지 오웰의 글이 내 맘에 쏙 들었다는 뜻이겠지.
담담하지만 핵심을 간파하는 그 신사다운 어투가 참 맘에 든다.
또한 그가 선호하는 것은 나도 선호하고, 그가 선호하지 않는 것은 나 역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글과 나의 정신 사이의 페이스를 맞추는 것도 어렵지 않다.

조지 오웰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책은 '카탈로니아 찬가'였다.

카탈로니아찬가(세계문학전집46)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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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일종의 수필인데 자꾸 소설로 분류가 되어 상당히 혼란을 겪었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라고 한다면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어디까지가 조지 오웰이 각색한 부분인지 구분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키피디어를 참조해 오해를 풀었다.
이 책의 장르는 '넌픽션'이다.

전쟁과 관련된 소설을 읽으니 자연스레 안정효의 '하얀 전쟁'이 떠올랐다.
한국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여태까지 읽어본 한국 소설 중에는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하얀 전쟁'.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우연한 기회에 '지압 장군을 찾아서'도 읽었을 정도다.
두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면 작가가 직접 전투에 참가한 전쟁의 이야기를 썼다는 것.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만큼 어떤 장면이나 심정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 하나가 독자의 마음에 와닿아 공명을 일으킨다.
비록 황석영 씨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문인으로서 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좋은 작품을 쓰는 것에 있어 독특한 실제 경험이란 충분 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요 조건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두 작품에 차이점을 찾아보자면 '하얀 전쟁'의 경우 전쟁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이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다루기보다 그 전쟁에 참여한 개개인의 이야기 또는 전투 그 자체에 집중하는 편인 반면 '카탈로니아 찬가'는 후자와 전자를 균형있게 다뤘다.
따라서 1930년대 부근의 유럽과 미국의 정세,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등장과 그로 인한 마찰 등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이 책의 몇몇 부분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주제만 나오면 회피하는 생활을 더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는 간간히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가며 읽었다.
그래서 분량이 짧고 대부분 흥미진진한 이야기라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데에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에는 전반적으로 조지 오웰 특유의 냉소가 진하게 깔려있다.

실전이 벌어질 기미는 거의 없었다. 포세로 산을 떠나면서 총알을 세보았는데, 거의 3주 동안 적을 향해 딱 세 발을 쏘았을 뿐이었다. 사람 하나를 죽이는 데 총알이 천 발 들어간다고 흔히들 말한다. 따라서 내가 총알을 소비하는 속도를 고려할 때, 20년이 지나야 파시스트 하나를 죽이게 되는 셈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내 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바르셀로나로 후송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나는 간신히 아내에게 곧 도착한다고 전보를 칠 수 있었다. 곧 병원측에서는 우리를 버스에 빽빽하게 실어 역으로 보냈다. 기차가 출발을 하고 나서야 우리와 함께 가게 된 병원 잡역부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우리가 가는 곳은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타라고나라고 말했다. 기관사의 마음이 바뀌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답군!」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전보를 치는 동안 기차를 세워놓고 기다려주기로 한 것도 역시 스페인다웠다. 그리고 그 전보가 아내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은 더욱더 스페인다웠다.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쓴 주요 목적은 전투의 경험을 표현함과 동시에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는 자들을 복권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숨겨진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의 자세엔 러셀의 그것이나 촘스키의 그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바르셀로나 시가전을 둘러싸고 워낙 많은 정치적 논란이 벌어졌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분량의 기록이 쌓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 10분의 9는 사실이 아니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당시에 신문에 난 기사 대부분은 멀리 떨어져 있던 기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사실 보도로서 부정확할뿐 아니라 고의적으로 왜곡할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어느 한 측면만이 대중에게 전달되도록 허용되었다. 당시에 바르셀로나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포되어 온 거짓말들 가운데 많은 부분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 만큼은 보고 들었다. 이전 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논란이나 혼란스러운 이름(꼭 중국 전쟁에 나오는 장성들 이름 같다)의 수많은 정당과 하급 단체들에 관심이 없다면 빼놓고 읽어도 상관없다. 정당 내부의 논쟁에 너무 자세하게 파고드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오물 구덩이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가능한 한 진실을 확립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먼 도시에서 벌어진 이 지저분한 싸움이 보기보다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누가 되었든 이와 같이 거짓 속에 가려진 진실 운운하는 사람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정보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누구는 A가 맞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A는 사실 조작된 현실이고 그와 반대되는 B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조지 오웰 역시 왜곡자 중의 한 명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조지 오웰이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대해 내놓은 분석은 근본적으로 조장의 의도가 없는 순수한 교정의 목적을 가진다.
그의 논리를 살펴보면 '그들'의 거짓을 폭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지 새로운 화제 거리를 들고 나와 대중들을 교조적으로 설득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조지 오웰 방식의 서술에는 주관성이 개입하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조지 오웰이라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신뢰에 따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관이 개입하는 서술에는 꼭 그렇다는 사실을 밝힌다.
비록 썩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나 역시 나의 주관이 들어가며 그 주관적인 평이 상당히 중요한 말을 할 때엔 꼭 그렇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각설하고, 조지 오웰은 그렇게 절제된 서술을 했음에도 책의 거의 마지막 무렵에서 독자들의 주체적인 판단을 다시금 강조한다.

내가 한 이야기가 사실을 오도하지 않기 바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하지도 않고 또 진실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힘들며,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당파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혹시 앞에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지금 말해두겠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란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

그렇다면 그의 '당파적 태도'란 무엇인가.
위에 인용한 부분에 따르자면 그의 태도가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 파악해야지만 그 방향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왜곡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지 오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예측할 수 있겠지만 그의 태도는 분명했다.

이제 쟁점은 분명했다. 한쪽에는 전국노동자연맹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경찰이 있었다. 나는 부르주아적인 공산주의자를 꿈꾸는 이상화된 「노동자」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살과 피를 가진 노동자가 그들의 천적인 경찰과 싸우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니 내가 어느 편인지 굳이 자문해 볼 필요가 없었다.

책의 뒷부분에서 오웰은 자신의 글로는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그 사건들이 자신에게 남긴 느낌은 기록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뻥이다.
파시즘이 어떻네 트로츠키주의는 이렇네 무정부주의는 이렇네 프랑코랑 누구랑랑 어쩌구 저쩌구네하는 핵심적이면서도 지루한 내용은 논외로 하고, 순전히 그의 경험만을 묘사한 부분만 보면 참 생생하기 그지없다.
실감이 돋는다는 말이다.
객관적이고 간결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문장들에 박수를 짝짝.[각주:1]

이렇게 글을 재밌게 잘 쓰니 조지 오웰의 책을 찾아 읽어보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다.
  1. 물론 그 박수의 일부는 이 책을 옮긴 정영목 씨에게 돌려야 한다. 많은 히트작을 번역해낸 그의 '번역 실력'은 굉장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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