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1. 7. 16. 00:59

'당신의 가치관에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5명을 고르시오'라는 질문이 있다면 어김없이 그 한 자리를 꿰찰 사람은 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다.
처음으로 읽었던 그의 책은 '만들어진 신'이었다.
작년 초에 그 책을 읽고 썼던 간단한 평에는 '특유의 시니컬함에 이공계인의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글은 누가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이공계인'이라는 단어만 제외한다면 조지 오웰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경우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천성적으로 그런 말투를 좋아하든지 또는 도킨스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말투를 좋아하게 됐는지 둘 중에 하나를 의미할텐데 아무래도 후자가 더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이기적유전자(전면개정판)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 교양유전 > 유전이야기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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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가 제시하는 기본 아이디어는 이런 방식의 개념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던 내게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나는 멍청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도입부에서 도킨스는 우선 책의 논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에 주력한다.
예상되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들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였겠지만, 나중에 책의 뒤에 달린 보주를 읽어보면 역시나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질문은 있었다.
보주에서 다소 해학적으로 설명을 달아두기는 했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은근히 종교인들의 신념을 건드렸기 때문이겠다.

더욱이 인간의 문서인 경우에는 오류가 개량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생각하기 어렵다. 구약성서의 그리스 판본을 만든 학자들이 '젊은 여성'이라는 히브리어를 '처녀'라는 그리스어로 오역하여 "보라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라는 예언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그들이 큰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논의는 2장부터 시작한다.
이기적 유전자론이란 무엇인가?
짧게 한 문단으로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지해 가는 데 사용한 기술이나 책략이 점차 개량되는 데에 끝이 있었을까? 개량을 위한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장구한 세월은 도대체 어떤 기괴한 자기 보존 기관을 만들어 냈을까? 40억 년이란 세월 속에서 고대 자기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절멸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 생존 기술의 명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바닷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자기 복제자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먼 옛날에 자유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이기적 유전자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개체적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저자 도킨스는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현재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신선한 이론을 바탕으로 여태까지의 우리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분석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분석을 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을 뿐더러 신빙성도 무척 높다.
3장에서 언급한 노화 이론과의 관련성, 4장에서 언급한 의식의 진화와 관련한 내용은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던 과학 만화를 읽는 느낌으로 와구와구 읽어댔다.
특히 4장의 내용은 더 흥미로운데, 유전자가 우리를 기계로 부리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의식은 무엇이며 나의 대뇌는 무엇인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문을 말끔하게 해결하기 때문이 아닐까.

5장에서는 이후로 남은 분량에서 이기적 유전자론을 설명하는데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자주 등장하는 ESS의 개념을 소개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인과 결과가 주어졌을 때 그 논리의 전개 과정이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된 방식, 즉 'A에서 B가 비롯되는 이유는 C이기 때문이다'의 C부분에 강한 태클을 거는 것이 ESS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직관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그런 논리의 과정은 사실 더 세부화된 여러 과정으로 나눠져있는 것이다.[각주:1]
ESS가 도킨스가 주체적으로 구상한 개념이 아니며 '다윈 이후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는 ESS 개념'이라고 서술했던 것을 보주를 통해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론이라는 거대한 맥락에 이 ESS는 핵심적인 역할로 기가 막히게 맞아들어간다.
생물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기존의 장황한 서술보다 ESS의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질서정연한 설명이 더 명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6장에서는 유전자의 '겉보기 이타주의'가 어떤 메커니즘을 가지는지 설명한다.
유전자는 이기적인 성질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에 많은 개체나 군이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이다.
이에 대해 근연도를 바탕으로한 수학적인 접근을 하면 어떤 특정한 행동에 대한 '행동의 순이익' 값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유전자는 그 값이 최대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골자. 유전자의 경험 정보와 개체의 학습 정보가 결합하여 내린 이기적 판단이 결과적으로 이타적으로 보이는 것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신빙성을 가진다.

한 가지 흥미로운, 그러나 왠지 힘이 빠지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 특히나 첫 눈에 반한다고 하는 그런 사랑이라면 더더욱, 이기적인 유전자가 인간으로 하여금 이타성을 유발하는 현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뒤에 나오는 '확장된 표현형'의 아이디어와 같이 생각해보면 그 사랑이라고 하는 말랑말랑하고 달짝지근하고 포근하며 아름다운 감정은 결국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전략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뭐 그 전략이라고 하는 것을 두루뭉실하게 돌려 표현해 자기애(愛)라고 한다면, 그것으로 사랑이라는 특성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내 사견의 결론은 개소리라는 것이다.


7장부터는 이 때까지 등장한 원리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한다.
7장에서는 개체수 조절에 관해, 8장에서는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사이의 갈등에 대해, 9장에서는 암수 간의 갈등에 대해, 10장에서는 무리 생활에서의 갈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생태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여 수치적인 분석을 하는 수리 생물학이라는 분야는 계산과 숫자를 좋아하는 나에게 꽤 흥미롭게 보이더라.

11장에서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인 '밈(Meme)'이 등장한다.
이기적 유전자론을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의 인간에게 접목시켜 결국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에도 어떤 자기 복제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이다.
이 장에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론과 개체적 진화론, 그리고 자신이 주창한 밈의 개념까지 결합한 세계관에 대해 짧게 언급한다.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서로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인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이 하나의 문단을 읽는 것에 어떤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면, 그것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주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론을 받아들일만한 능력이 없었거나 그럴 의도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기적 유전자론은 유전자적 결정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 기계인 특정 개체에 어떤 식의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지만 몇몇 개체, 최소한 인간은 그 영향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다.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본능 아니면 의지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것은 완전한 억설이다.

책의 마지막 장 '유전자의 긴 팔'은 '확장된 표현형'의 기본 개념을 소개하는데 거의 뭐 저 책을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을 것 같다.
다음에 읽을 리처드 도킨스의 책은 '확장된 표현형'으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전반적인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끼워넣지 못한 인용구 하나만 소개하고 꽤 길었던 평을 끝내야겠다.
다윈의 진화론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던,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근본적인 모순에 어떤 식의 공격을 가하는지, 그 공격으로 인해 산산조각난 위대한 인간의 존엄성, 알량한 채식주의 같은 위풍당당했던 개똥들은 어떤 식으로 치워나가야 할지 생각해보자.
따지고보면 이규보의 '슬견설'은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유전자적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본 한국 최초의 사설이 아닐까.

동종의 일원이 다른 종의 일원에 비해 특별한 도의적 배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전쟁 이외의 상황에서 살인하는 것은 통상 범죄 중에서 가장 큰 죄로 생각되어 왔다. 우리의 문화에서 살인보다 더 강하게 금지되는 유일한 것은 식인 행위다(비록 이미 죽은 자일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다른 종의 일원을 먹는 것을 즐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인무도한 범인에 대해서조차 사형 집행을 꺼려하는 데 반해, 많은 피해를 주지 않는 유해 동물에 대해서는 재판도 없이 쏴 죽이는 데 기꺼이 동의한다. 그뿐인가! 우리는 수많은 무해한 동물들을 오락이나 유흥을 위해 죽인다. 아메바만큼이나 인간적 감정이 없는 인간의 태아는 어른 침팬지보다도 많은 공경과 법적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최근의 실험적 증거에 따르면 침팬지는 감정이 있고 사고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도 있다. 태아는 우리 종에 속하므로 그것만으로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아, 참 읽으면 읽을 수록 생각할 것이 많다.


  1. 이 모든 단정적인 서술은 물론 이기적 유전자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는 생물학자도, 생물학 전공자도 아니므로 도킨스의 이론이 사실인지 헛소린지 나의 주관에서 판단하기는 힘드나 그의 논리를 통해 그의 말이 사실과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