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여행기 2 : 대만, 중국어 전혀 못해도 문제 없다

| 2015. 7. 16. 03:48

인천에서 타오위안으로 가는 비행편은 대충 3시간 남짓 소요된다. 비행기에 올라탄 직후에는 오랜만의 해외 여행이라는 점에 잠시 들떴지만 지난 밤의 피로가 찾아오면서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잠을 청했다. 인천발 비행기에서는 닭고기와 소고기 베이스의 기내식이 제공되었는데 둘 다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밥을 먹으니 정신이 들었다. 지인으로부터 들은 타이페이 여행 팁 중 타오위안행 비행기 안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히로인 계륜미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저 유명한 허우샤오셴이 연출을 맡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라는 영화를 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영화는 생각보다 루즈했고 약 30분 정도 본 뒤에는 그냥 도착할 때까지 잠이나 더 자기로 했다.

해가 사정없이 내리쬐는 대낮에 타오위안 공항에 내렸다. 입국에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가방을 찾아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길에 대만의 티머니와도 같은 이지카드를 구매했다. 직원에게 다가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한글이 적혀 있는 매뉴얼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들 다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난하게 500 타이완 달러가 충전되어 있는 카드를 구매했다. 시험 삼아 바로 옆에 있던 음료수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아봤다. 한국의 캔커피와 아주 똑같은 맛이었다. 로밍을 켰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페이 시내로 가는 지하철이나 기차 노선 따위가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이 되는 버스 노선을 이용해 타이페이까지 가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판매대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과연 이 나라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을 했다. 나의 걱정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잘못된, 또는 지나친 것이었음이 밝혀졌는데 이는 내가 당시에 있던 곳이 공항이라는 점을 어리석게도 고려하지 않았고 대만에서 영어 교육이 꽤나 널리 보급되었다는 점을 몰랐던 탓에 생긴 오해였다. 웬만한 의사소통은 영어로 해결이 가능했다.

거기에 내가 그래도 조금은 한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자격증 같은 것을 따기 위해 따로 한자 공부를 하지 않고 그저 초등학교 몇 학년인가에 CA를 한자부로 들고 중학교 한문 수업을 성실하게 들었던 수준 정도밖에 안 되니 웬만하면 주요 한자들을 읽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간판이나 표지판, 노선도 등에는 영어 병기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나마 이게 어디를 가리키는지, 이 음식점에서는 무슨 재료로 어떤 요리를 하는지 감을 잡는 정도로는 충분하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조금 타고는 곧 타이페이 시내로 들어섰다. 위대한 구글 맵을 사용해 버스의 움직임과 도로의 형태, 예약한 호텔과 버스의 종착지를 확인하니 꼭 종착지인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전에 하차하는 것이 호텔까지 더 가까워보였다. 버스의 안내 방송과 구글 맵스의 정보를 잘 조합해서 맥케이 기념 병원에서 내렸다. 거기서 한 5분 정도 걸으니 리젠트 타이페이 호텔이 보였다.

호텔에서부터는 부담없이 영어를 사용했다. 가격대가 제법 있는 호텔이라 그런지 거의 모든 서비스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괜찮았다. 특히나 문에만 접근하면 사람이 수동으로 열어주는 자동문 시스템이 가장 민망하다고 해야 할까, 여튼 부담스러웠다. 나도 손 있고 문 잘 열고 닫을 수 있는데 말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보증금을 선결제한 뒤 방 열쇠를 받았다. 8층이었다. 방은 쾌적했다. 짐 정리를 하고 일단 한 번 씻었다. 7월 초의 타이페이는 이른 오전부터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곳이다.

타이페이에서의 공식적인 첫 일정은 씨티은행 국제체크카드에서 타이완 달러를 찾는 것이었다. 가볍게 여행객 짐을 싸들고 방을 나섰다. 프론트에서 근처 가까운 씨티은행 위치를 물었고 간단한 지도를 받았다. 예의 수동 자동문이 열리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