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적 연애론: 맞춤

| 2015. 3. 19. 09:31

연애를 주제로 이야기하다보면 참 자주 등장하는 구문 중의 하나가 "맞춰간다"는 것이다. 연애의 당사자들이 서로의 "맞지 않는 점"에 대해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볼 때 애초에 그렇게 맞지 않는 점을 공유해야만 하는 연애는 그런 연애를 해봤다는 경험 그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조기에 끝내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웬만큼 배려심이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지사지를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그 사람의 사유와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친구 관계에서는 이 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친구들이라면 그렇게 맞지 않는 부분을 쉽게 자신의 여집합 영역으로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인 관계는 당연히 다르다. 이미 한 번 교집합의 영역으로 들어온 골칫거리는 좀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맞지 않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결론은 대개 뻔하다. 고통 받는(만약 본인이 그 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고통을 주는) 연애를 하다가 사이가 비틀어져 영영 헤어져버리거나, 잠시 헤어졌다가 그런 것 정도는 참아줄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다시 만났다가 비슷한 지점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은 뒤 헤어지거나, 이 과정을 몇 번 더 반복하다가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사이가 되어 헤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인내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솔깃한 과정일지 모르나 웬만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말이다.

사람이 타인에게 맞춰나갈 수 있는 정신적 여백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아주 사소하고 지엽적인 타협은 가능하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바라는 만큼의 맞춤이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맞춰나가는 연애는 점진적이고 파국적인 연애다. 맞춰나가는 연애가 아니라 처음부터 잘 맞는 연애를 해야 한다. 대안은 없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그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냐고. 그것은 약 1할의 노력과 9할의 천운으로 결정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