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빼놓지 않고 감상해왔는데 항상 느끼는 것은, 작화의 수준은 극상의 수준이나 도무지 그 길지 않은 스토리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언어의 정원》 역시 내가 생각하는 "마코토스러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지배적으로 드는 생각이다. 작화는 여전히 기가 막히다.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의 빛의 활용법은 감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으며, 《언어의 정원》에서는 그의 주특기인 빛 말고도 물과 소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출처 http://jsgooni.com/137
빛과 물과 소리가 극적으로 아우러지는 장면은 역시 주인공 타카오가 비가 오는 날 공원 속 정자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특히나 비에 살짝 젖은 나무 위를 걸어가는 바로 위 장면은 마코토의 차기작 역시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의 대단한 팬은 아니라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순 없지만, 나는 이보다도 더 사실적으로 그리되 보는 것만으로도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화를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신기원이다.
그러나 쓴 소리를 빼먹을 순 없다. 애니메이션이 모두의 장르일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인 스토리가, 나 같은 사람에겐 ㅡ 이라고 굳이 한정 지은 이유는 혹시나 내가 뭔갈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 때문에 ㅡ 도저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애니메이션이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소설이든, 시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어떤 컨텐츠에 꼭 "메시지"가 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림만으로 훌륭한 감성을 자아내는 애니메이션에 뚜렷한 메시지가 없다는 것은 마치 향기가 나지 않는 꽃, 앙꼬 없는 찐빵, 가슴이 없는 여자 (...) 같은 아쉬운 조합인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보고만 있어도 감성 또는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이유는 메시지가 부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바로 이 감상이 마코토 감독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둘 다 억지로 갖다붙인 티가 많이 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정원》은 여름철, 특히나 장마철에 감상할 수 있는 놀랄 만큼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전체 테마를 오롯이 담고 있는 단가의 한국어 해석을 끝으로 아련한 여름날의 기억, 두 팔을 벌려 안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아련함을 정리한다.
우레소리가 / 조금씩 울려오고 / 구름 흐리니 / 비도 오지 않을까 / 그대 붙잡으련만
우레소리가 / 조금씩 울려오고 / 비는 안 와도 / 나는 떠나지 않아 / 당신이 붙잡으면
- 만엽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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