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서 끄적이는 제프 벡 할배의 내한 공연 후기

| 2014. 5. 15. 04:00

사진 같은 거 무성의하게 찍는 블로그인 거 잘 아시죠?

2010년 이한결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아쉬웠던 일 중 하나는 3월에 있었던 제프 벡의 내한 공연에 가지 못한 것이었다. 그만큼 대단히 아쉬운 일이 없었다는 뜻도 되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제프 할배가 다시 내한을 못 하고 노령으로 저 세상에 가시게 되는 일이라도 발생했더라면 거의 인생에서 후회할 만한 일 최소 탑 20 정도에는 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도(?) 내가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올해 그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대전에 있는 후배 녀석과 연락을 주고 받아 티켓을 예매했고 한참 나중에 서울에 있는 다른 친구 녀석이 일행에 껴서 총 3명이 올림픽 홀을 찾게 되었다.

동행했던 친구는 기대보다는 못미치지 않았느냐라는 평을 내렸지만 내게는 제프 할배를 살아 생전에 영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돈 십만원 값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노화한 탓인지 가끔 삑사리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나이 70이 다 된 노인에게 전성기 시절의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것도 대단히 억지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비록 송진 가루 퍽퍽 묻혀 맛깔나는 리프를 말 그대로 "조지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대가의 연주는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역시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무리를 장식했던 바로 이 곡이었다. 첫 노트를 찍는 순간에 오바 조금도 섞지 않고 소름이 돋았더랬다.

공연을 보며 신선했던 점은 제프 벡을 비롯한 모든 무대 멤버가 노란 리본을 차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초반의 멘트에서 안타까운 사고의 희생자들에게 제프 할배가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 공연을 보며 의외였던 점은 제프 할배가 생각보다 외향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것.

사실 공연 끝을 약 30분 정도 남겨두고 아래쪽 일이 급해지는 바람에 후반부 공연을 대단히 편안한 상황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장탄식을 ㅡ 물론 긍정적인 감탄의 의미에서 ㅡ 내질렀던 것을 보면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공연이 끝나고는 인파를 헤치고 서둘러 빠져나와 화장실을 가려고 했으나 가는 곳마다 번번이 긴 줄에 밀려 포기를 하고 고속터미널까지 가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근처 상가에서 치킨과 먹태와 함께 소맥을 나눠먹었다. 먹태라는 왠지 모를 촌스러운 이름에 긴장했던 녀석들에게 고유의 고소함을 알려줄 수 있어 뿌듯했다.

여기까지는 공연 이야기라면 아래로는 제프 벡의 기타에 대한 나의 짧은 지식과 그보다도 짧은 의견을 섞어보려한다.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해져서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3대가 저주를 받는다는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제프 벡은, 내가 알기로, 세 명의 기타리스트 중 작곡 능력은 가장 떨어지나 연주 실력은 제일 좋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지미 페이지는 리프 및 솔로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나 연주 실력이 좀 개판이고, 에릭 클랩튼은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다, 라는 이야기를 예전에 듣고는 나름대로 수긍을 하고 위대한 세계 3대 기타리스트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으로 삼았다.

조금 더 진지하게 이 이야기에 접근을 하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Stairway to heaven'의 솔로와 'Heartbreaker'의 리프를 만들어낸, 그리고 하나 하나 언급하자면 수없이 많은 명곡을 써내려간 지미 페이지의 곡을 만들어내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대해선 모두가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올드팬들이라면 당연히 헛소리라는 반응을 내겠지만 사실 음악을 캐주얼하게 접하는 사람들에게 에릭 클랩튼은 히트곡 몇 개 정도 만든 그냥 좀 늙은 팝 가수다. 그래도 자기가 만든 히트곡 몇 개 정도는 있는 것이 에릭 클랩튼이다.

이 날의 주인공인 제프 벡에게는 그렇다면 무슨 떳떳한 히트곡이 있을까? 제프 벡하면 떠오르는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기타 좀 치는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역시 음악적 재능에 있어서는 역대급인 스티비 원더의 작품이다. 'People get ready'? 리메이크다. 제프 벡을 알고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정도에서 끝이다. 제프 벡은 자신의 히트곡이라고는 하나 없는, 어떤 면에서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세계 3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 만한 그런 사내(지금은 할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계 3대의 꼬리표를 달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이유에 집중해서 그의 음악을 차근차근 듣다 보면 내가 저 날 무대 위의 노익장에게 보낸 박수 갈채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제프 벡의 연주는, 그 굵은 손마디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인간과 닮아 있는 그 소리는 위대하다.

너무 제프 할배 뽕을 빤 것 같아 부끄러워 이쯤에서 글은 마쳐야겠다. 할배, 항상 건강하시고 웃음 잃지 마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