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던 어느 날 문득 '연애운'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작 세 음절밖에 되지 않는 단어지만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대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애운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불확실성 ㅡ 사실상 보장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어리석음을 기반으로 하는 불확실성! ㅡ 을 감수하면서까지 궁금해하는 건지 자못 궁금해졌다.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짤방.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애가 무엇인지, 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 한심한 세태에 대한 비판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 같으니 연애란 이성간의 교제가 시작되어 끝이 나는(그게 어떤 방식이든지간에) 일련의 과정으로, 운이란 능력의 범주를 벗어난 운명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로 하겠다. 즉, 연애운이란 어떤 이성을 만나 그 이성과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개입되는, 한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불확실성 정도가 되겠다.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ㅡ 그러니까 이런 운 비지니스가 성립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장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ㅡ 이 불확실성의 범위가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어떤 사람의 '연애'에 '운'이 개입할 여지는 대단히 적다.
이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다. 아직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강한 충격, 정말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그 충격이 기억난다. 정말 간단하다. 소개팅 또는 기타 만남의 자리에 나오는 사람들의 수준이 바로 남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당신의 수준이라는 것. 아무리 부정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당신은 딱 그 정도의 사람인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유의미한 조건이 만족되어야 성립이 되는 말이긴 하지만, 어차피 한 인간이 연애 대상으로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수준(?)은 그 인간이 살아온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그 환경이 더 이상 크게 변하지 않는 적정한 시기가 되면 인맥에 있어 일반적인 범주 안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상대의 풀(pool)은 거의 정확하게 정해진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제거된다는 것은 연애에 운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네 연애 이야기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부모님조차 알지 못하는 이상한 잠버릇이 있냐 없느냐는 그야말로 '운'의 영역이다. 그것이 좋든 아니든 그만의 특이한 체취가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손동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대단히 신경 쓰이는 버릇일 수 있다. 침대에서 무심코 뱉는 말들, 지난 연애를 바라보는 방식, 화장실 휴지가 풀리는 면이 화장실 벽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의 정도, 일주일에 청소기를 돌리는 최소 또는 최대 횟수 같은 것에 대해 서로의 호불호가 맞을지는 실제로 한 번 맞춰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써놓고 보니 실제로 연애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차피 웬만큼 정해져 있는 조건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지력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운의 영역에 속한, 사소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요소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것들은 백날 자신의 연애운에 대해 연구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등 쓰잘데기 없는 연애운에 몰두할 시간에 차라리 당신의 연애운 ㅡ 과연 연애운이 존재하는지는 차치하고 ㅡ 을 한 번이라도 더 시험하라. 오히려 그 편이 당신의 연애운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더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며 실질적으로 당신의 연애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일 것이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차별은 그저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0) | 2015.02.11 |
---|---|
아무도 동계올림픽을 원하지 않는다 (0) | 2015.02.05 |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조금 더 올바른 방법 (0) | 2015.01.28 |
가능성과 개연성 (0) | 2015.01.23 |
드디어 수학자들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구분하는 법을 알아내다 (0) | 2014.12.24 |
유대인의 과거와 현재 (0) | 2014.07.22 |
전직 스나이퍼 출신 레인저가 밝히는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밀렵 실태에 대해 (0) | 2014.07.21 |
애드센스x티스토리 포럼을 다녀와서: 배너 광고에 대한 여러 인사이트들 (0) | 2014.07.20 |
마리화나가 합법화되는 동시에 비싸야만 하는 이유 (1) | 2014.07.13 |
사이트 방문자가 늘어나 생긴 예상치 못한 결과 (0) | 201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