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은 그저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 2015. 2. 11. 23:04

레딧에서 꽤나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이슈라서 간단히 정리를 해본다. 흑인이라는 단어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단어를 쓸까 조금 고민했지만 그냥 흑인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

상황: 2007년 NAACP(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라고 번역된다고)는 흑인을 뜻하는 N-word(싸이의 챔피언에서 소리 지르는! 음악에 미치는! 다음에 나오는 단어랑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단어 장례식" 행사를 벌였다. 당시 행사를 보도하던 톰 벌링턴은 보도 중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저희가 드디어 n-----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합니까?(Does this mean we can finally say the word n-----)"

그의 발언 직후부터 흑인 동료들의 반응은 격했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이어진 뒤 그는 더 이상 방송사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고 그 뒤로 어떤 방송에도 출연하지 못하고 요새는 부동산을 팔고 있다고 한다. 벌링턴은 2009년, N-word를 사용하는 흑인 동료들은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 반해 자신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자신의 전 직장인 팍스 텔레비전 스테이션을 비롯한 관계사를 고소했다.

문제: 사실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다. 나의 의견과 레딧의 댓글들을 정리한다.

1. 톰 벌링턴이 보도하고 있던 N-word의 장례식 행사에서는 100여 번이 넘게 그 N-word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름 에드워드 머로우 상까지 수상했던 한 백인 앵커가 비하의 목적이 아닌 보도의 목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자마자 분위기가 싹 굳은 것이다.

2. 그런 보도 뒤 문책성 회의가 열렸고 회사 인사팀에서 벌링턴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보라고 요구를 했다고 한다. 벌링턴은 아마도 당시 보도 내용을 그대로 진술했던 것 같은데, 회의 진행자는 아직도 그 N-word를 사용하는 것이냐며 바로 회의를 정리하고 벌링턴에게 최후통첩 성격의 경고와 인종 차별과 관련된 강의를 들으라는 처벌을 내렸다. 당시 상황에 대한 진술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 어디에서 이 사람의 잘못을 찾을 수 있나.

3. 레딧 댓글의 대부분은 인종 차별이라는 문제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더 정확히 하자면 미국 흑인들의, 인종 차별에 대한 과민적 반응이 정도를 넘었다는 반응이다. 비단 이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그들이 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이들의 주요 논리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언급"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멍청한 일이라는 것. 뉴스 채널에서 뉴스를 전하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시비를 거는 것은 유치하고 싸이코 같다는 이야기다.

4. 비슷한 관점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은 유독 미국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마녀 사냥이 심하다는 이야기, 흑인 선수들의 신체적 장점을 언급한 한 대학 풋볼 코치가 그 발언이 인종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인해 결국 사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기사의 제목에서 언급된 인종에 대한 "역차별"이란 잘못 사용된 단어이며 인종 차별에는 정차별과 역차별 같은 방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차별"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 댓글을 의식한 결과인지는 몰라도 해당 기사의 제목에 있던 역차별이라는 단어는 차별로 바뀌었다고 한다.) 등이 있다. 조금 빠지는 이야기지만 이 사건을 다루는 뉴스 기사에서조차 (소리 지르는) "니X!"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N-word라고 대체해서 사용하는 것은 마치 의사가 대변을 대변이라 부르지 못하고 똥이나 응가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바보짓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이 입장에 동의하는 바이므로 아래부터는 그냥 한글로 표기하겠다.)

5. 흑인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아니 지네들끼리는 맨날 랩하고 힙합하고 하면서 서로 잘들 불러대는 그 단어를 자신들이 사용하면 인종 차별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그 단어는 말로도 못 꺼내고 글자로도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말이 되나.' 하는 식의 논리가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NACCP의 단어 장례식의 한 가지 큰 취지 또한 흑인들 스스로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더 이상 종식하자는 것이었다.

6. 이 의견에 전면 반박까지는 아니지만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당시 벌링턴의 발언의 뉘앙스를 문제 삼는다. 굳이 니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하는 행사에서 저런 질문을 던진 이유가 무엇인가? 벌링턴의 질문을, 이제 니가를 비하적인 의미가 아닌 용법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참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질문에 포함된 "드디어(finally)"라는 단어를 왜 사용했는가? 질문의 취지가 정당했다 하더라도 그 방식이 멍청하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3~5번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현상만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7. 용산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윌리엄스라는 흑인 병사와 7개월 정도 같은 방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같은 흑인 병사들끼리 서로를 니가라고 부르는 것을 지적하며 그 말이 그렇게 차별적이라고 느낀다면 왜 너희들끼리는 그렇게 그 단어를 사용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마땅히 이유가 없다며 나를 (장난 삼아) 침대로 내동댕이쳤다. 한 번은 NHL 선수 중에 흑인 선수도 있냐는 순수한 질문에 나를 인종 차별자라 (장난 삼아) 몰아간 적도 있었다. 한참을 그러던 그는 나중에서야 사실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결론: 나 따위의 씹선비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이야기로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어떤 행위의 결론을 비하라고 결정하는 것은, 마치 추행의 기준에 있어 추행을 받은 당사자의 주관적 잣대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비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엔 동의한다. 따라서 6번에서 나온 이야기, 즉 벌링턴이 "드디어" 같이 다소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니가라는 말을 언급했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것을 충분히 불쾌하게 느끼고 누군가는 그것이 인종 차별적 발언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2번의 멍청한 이야기를 포함해 그가 동료들에게 나름 사과를 시도했고 회사에서 명한 강의를 수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에 가까운 처분이 내려진 것, 그 뒤로 다시는 방송계에 발을 붙일 수 없었던 것엔 정당성의 여지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의 발언의 기본적인 성격이 비하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벌링턴에 대한 처벌이 대단히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니가라는 말에 대해 처벌을 내렸다면 니가라는 말을 한 모두에게 최소 비슷한 처벌을 내려야 했다. 니가라는 말이 나온 상황에 따라 처벌의 경중을 고려하겠다면 벌링턴의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그러지 못한 처벌은 어느 상황에서, 그 누가 보더라도 부당한 것이며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역차별"이 아닌 그저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http://en.wikipedia.org/wiki/Aparthe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