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2011. 5. 14. 09:50

내 방에는 두 개의 커다란 책장이 있다.
책을 계획적으로 읽기 시작한 작년 9월 무렵부터는 그 책장의 특정한 부분을 골라 여태까지 내가 읽어온 책을 꽂아두기 시작했다.
자연히 원래 그 칸에 들어있던 책들은 제자리를 잃고 쫓겨나야 했는데 이 책은 왠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이 무엇에 관한 책인지 알고 싶다면 책의 부제를 살펴보면 되겠다.
'국화와 칼 : 일본문화의 틀(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책을 시작하는 1장이 끝나고 나면 2장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일본 전략의 일환으로 작성된 보고서이므로 전시 중에 마주치게 된 일본인의 특성을 분석한다.
다음과 같은 일본의 대동아 전략에 대한 시각 분석은 러셀이 '러셀, 북경에 가다'에서 보여준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반면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세계에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내의 통일과 평화를 달성하였고, 폭도를 진압하였으며, 도로·전력·철강 산업 등을 건설하였고, 또 공표된 숫자에 의하면, 공립 학교에서는 청소년의 99.5 퍼센트가 교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전제에 따라서 뒤처진 동생인 중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동아 여러 나라와 동일한 인종이므로 이 지역에서 먼저 미국을, 다음엔 영국과 소련을 쫓아내어서 '자기네의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일정한 위치가 주어져야 하며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3장의 화제는 바로 위에서 언급되는 '계층 구조' 또는 '알맞은 위치'에 대한 것이다.
글쓴이에 따르면 일본은 도요토미, 도쿠가와 시대의 사회·경제적 정책의 결과로 약 200년 동안이나 '계층 제도=안전과 보증'으로 인식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따라서 이런 계층 구조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일본인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계층 구조는 서구인이 생각하는 막연한 상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들은 계층을 넘어서는 일이 썩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 계층적 특권에 대한 결과는 감수하지만, 그 각각의 자리에서는 나름의 질서와 자유를 보장받는 유연한 카스트제였다는 측면도 존재했다는 점이 바로 그 차이점.
하지만 그런 안정된 계층 구조 역시 모든 봉건적 사회 구조가 겪게 되는 경제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과거의 안정적이었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유신이 발생하게 된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메이지 유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무라이와 상인의 혼합 계급에 의해 주도된 메이지 유신은 중앙집권적 지배를 더욱 강화하고, 각각 계급의 이름만 바뀐 계층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성격을 띈다.

이와 같이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정치에 있어서는 국가의 기능이 미치는 영역을, 종교에 있어서는 국가 신토의 영역을 신중히 구획했다. 그들은 다른 영역을 국민의 자유에 맡겼다. 그렇지만, 그들의 견지에서 볼 때 직접 국가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새로운 계층 제도의 최고 관리인인 그들 자신의 손에 그 지배권을 두려 했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계층 제도에 대한 자연스러운 도덕률이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글쓴이는 다음 장인 5장에서 그 도덕률의 유래를 온(恩, 은)의 관념에서 찾는다.
한국 말로는 대충 '은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서구인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글쓴이는 온의 특성과 온을 '입는다'는 개념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그 입은 온을 '갚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술하면서 '기무(義務, 의무)'에 속하는 '주(忠. 충)', '고(孝, 효)'의 개념을 설명한다.
7장과 8장에서는 기무와는 또 다른 성질의 '기리(義理, 의리)'에 대해, 세상에 대한 기리와 이름에 대한 기리로 그 분류를 나눠 설명한다.
일본인의 세상에 대한 기리라는 것을 살펴보면 지난 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각국의 구호 활동에 대해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것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또한 이름에 대한 기리에 대해서는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일본인의 영원 불변의 목표이며 이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지닌 상황적 현실주의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장에서는 일본인의 개인적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태까지 살펴본 일본인의 도덕률을 살펴보면 일본인은 개인적 욕망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 각각의 위치를 지키는 한 일본인은 쾌락을 인정하는 편인데 이는 쾌락이 악(惡)이 아니라 그 나름의 선(善)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여기서, 따라서 일본에는 선악 가치의 대결 구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같은 바는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기업,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토리라인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마침내 10장[각주:2]에서 여태까지의 고찰을 종합한다.
글쓴이는 앞에서 언급한 각각의 '덕'의 기준에 따르면 어느 것도 분명한 선과 악이 될 수 없고, 그 각각의 가치관이 가지는 각각의 선이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주시한다.
결국 일본인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많은 가치관들 중에 무엇을 선택하느냐, 즉 어느 가치관을 우선시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의 순간에 관여하는 덕이 '마코토(誠)'다.
글쓴이는 이렇게 서술한다.

일본인이 그들의 도덕률에 어떤 수정을 가하려고 노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원자론적이며, 덕의 원리는 여전히 그 자체에 있어서는 선인 어떤 행동과, 또한 그 자체에 있어서는 선인 다른 행동과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들의 윤리 체계는, 마치 브리지의 승부와 같은 것이다. 잘하는 경기자란, 규칙에 따라 그 규칙의 범위내에서 경기하는 사람이다. 그가 잘 못하는 경기자와 구별되는 것은, 추리의 훈련을 쌓고 있어서 다른 경기자들이 낸 패에, 그 패들이 경기의 규칙 아래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따라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호일에 따라 경기한다. 그는 한 수마다 무한한 세목(細目)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은 빠짐없이 경기의 규칙 속에 망라되어 있고, 점수도 미리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 특유의 생활 방식은 외국과의 접촉에 있어서 그 파탄을 통감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처럼 특수한 형식의 가치관이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잘 맞아들어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를 일본의 '덕의 딜레마'라고 명명하고 이 10장의 이름을 '덕의 딜레마'라고 지은 것이다.

11장은 일본인의 자기 수양에 대한 것이다.
일본의 문화는 신중하게 행동하고 어떤 덕을 준수하며 자기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도그마를 끊임없이 주입하는데 그런 각종 제한을 모두 떨쳐버리고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 '무가(無我, 무아)'의 경지이자 자기 수행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이다.
12장에서는 극단적인 경지에 이르러야만 해방될 수 있는 일본의 도덕적 규율이 어린 아이들의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착안하고, 일본의 유아 교육에 대해 살펴본다.
일본의 교육은 유아기에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지만 자라면서 각종 덕의 제한을 받는 식이다.
이런 교육의 결과로 일본인에게는, 넓은 의미에서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과 개인적 요구가 대립하는 이원성이 깊은 곳에 심어지게 된다.
그리고 글쓴이는 새로운 시대에 이 이원성을 자신의 입장에서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마지막 장인 13장에서는 전후 일본의 상황과 앞으로 예측되는 상황을, 앞서 전개한 논리의 견지에서 설명하는데 생각보다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은근히 김이 새는 부분이다.

이 책은 일본인,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측면 ㅡ 자세히 말하면 20세기 중반의 상황을 서구인이 바라보는 면 ㅡ 은 확실히 제공한다.
글쓴이 루스 베네딕트는 기본적으로 문화 상대주의적인 관점에 서서 일본의 문화를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여러 민족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진정한 존엄성'이란 민족에 따라 그 내용도 달라진다는 것, 즉 그것은 마치 그들 각 민족이 무엇이 굴욕인가를 그 나름대로 규정하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인 중에는, 일본인에게 자존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미국식의 평등주의 원칙을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적 자기 중심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만일 이들이 미국인이 원하는 것이 그들의 말처럼 일본인에게 자존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일본인의 자존심의 근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일찍이 토크빌이 인정한 것처럼, 이러한 귀족 제도적인 '진정한 존엄성'이 근대 세계에서 소멸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또 다른 그보다 훌륭하다고 우리가 믿는 존엄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일본에도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은 오늘 날 우리들의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일본 자신의 기초 위에서 그 자존심을 재건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것을 일본의 특유한 방법으로 순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무의식적 영역에서 비롯되는 어쩔 수 없는 서구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비평은 이런 글에서 잘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책이나 이 책의 내용을 맹신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를 잃어선 안되겠다.[각주:3]

국화와칼:일본문화의틀
카테고리 역사/문화 > 동양사 > 일본사 > 일본문화사
지은이 루스 베네딕트 (을유문화사, 1991년)
상세보기

  1. 독일어. [본문으로]
  2. 이 부분에서 상당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토록 중요한 10장이 이전 번역판에서는 빠져있었다는 사실이다. 글쓴이의 논리 전개 양상을 보면, 또는 단순히 그 방대한 양에 있어서라도 이 10장 '덕의 딜레마'는 '국화와 칼'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이 아닐 수 없다. [본문으로]
  3. 뭐 사실 이런 점을 지적하기도 민망한 게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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