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된 표현형

| 2011. 10. 30. 08:44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마저 자기가 쓴 책 중 가장 추천하는 책이라며 극찬을 마지 않았던 책.
여태까지 살아 오면서 나의 확장된 표현형 중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산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도킨스 같은 사람이 자화자찬했던 대상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이기적 유전자'의 다음 이야기라는 선전 문구가 붙어 있던 것도 흥미 유발의 한 요소였다.
책의 마지막 장 단 한 장만을 빌려 확장된 표현형의 개념을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지만 그 발상의 전환이 내게 가져온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더 흥미로운 떡밥거리가 없나 싶어서 흥미진진한 들뜸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아뿔싸.

확장된표현형
카테고리 과학 > 생물학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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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독자는 필자와 관련 있는 전문 분야의 동료, 진화생물학자, 동물행동학자와 사회생물학자, 생태학자 그리고 진화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철학자와 인문학자는 물론 모든 학문 분야의 대학원생과 학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필자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편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진화생물학과 그에 대한 학술용어의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내가 리처드 도킨스의 주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이었다.
책 '확장된 표현형'의 난이도는 '이기적 유전자'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잘 모르는 개념에 별로 개의치 않는 나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우걱우걱 책을 읽어나갔는데, 언젠가 얼기설기로나마 거대한 퍼즐이 끼워 맞춰지리라는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달리 나의 안타까운 뇌는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어갔다.
조사와 마침표를 제외하고는 털끝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문장도 많았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생물학적 지식과 관심을 더한 수치로 줄을 세워보면 중간보다는 약간 상위권에 위치하리라고 예상되는 나의 이 책에 대한 순수한 감상평이다.
평을 6자로 줄이라면 '상당히 어렵다', 5자로는 '많이 어렵다', 4자로는 '꽤 어렵다'고, 3자로는 '어렵다'이리라.
무턱대고 흥미만을 좇아 읽을 만한 책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무턱대고 덤비다간 이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와 같은 극악의 이해도를 가지고, 이 책에 대한 평을 써보겠다.
'확장된 표현형'은 여러모로 '이기적 유전자'의 다음 이야기라는 말이 맞다.
그 무엇보다 난이도 면에서
책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반론으로부터 스스로를 변호 ㅡ 도킨스는 이를 두고 후안무치하다고 평하는데 뭘 이해했어야 후안무치든 아니든 알 게 아닌가 ㅡ 하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변호는 책 후반부에서 주장될 이 책의 핵심 내용에 대한 스끼다시이기도 하다.
위대한 생물학 책의 표본을 따르듯 방대한 사례를 들며 도킨스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꿰뚫는다.
4장 '군비 경쟁과 조작'의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일반인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친근감을 느끼는 부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비핵유전의 이야기도 부분적으로 나의 주목을 받았는데 겉보기에는 라마르크주의를 대변하는 예처럼 보였는데도 그를 뒤집어 신다윈주의적인 논리로 명쾌하게 설명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비핵유전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본능적인 관심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도킨스가 1장에서 밝힌대로 정말 제목과 부합하는 '확장된 표현형'에 대한 본론은 11장부터 시작한다.
내가 건성으로나마 이 앞의 내용을 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읽기 여부와는 무관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부터는 제법 이해가 잘 되는 편이다.
현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진정한 자기복제자인 유전자의 표현형은 세포와 신체라는 경계를 넘어 그 밖으로도 표출되며, 이 때 한 생물체의 유전자들 사이의 연관뿐만 아니라 한 집단 사이의 유전자들, 심지어 전혀 다른 집단간의 유전자들도 연관된다는 것.[각주:1]


이 단순해 보이는 한 문장을 위해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두 책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친절한 ㅡ 그러나 어려운 ㅡ 문장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리고 책을 덮고 주위를 보면 평소에는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경이로움과 낯섦을 느낄 수 있으리라.
바로 그것이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넥커 정육면체의 다른 면이다.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냐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라고 물을 사람에겐 이 이상 달리 할 말이 없다.
훌륭한 논의점을 시사하는 마지막 장의 간단한 내용들마저 내가 직접 언급하기엔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극후반부의 두 문단을 인용한다.
그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지만.

실재하는 자기복제자는 세계를 조작해서 스스로를 유리하게 하는 데 뛰어나다. 이때 자기복제자는 환경이 부여해주는 기회를 이용한다. 또한 자기복제자의 환경에 대해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은 다른 자기복제자와 그것들의 표현형의 표출이다. 이와 같은 자기복제자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어쩌다 공존하고 있는 다른 자기복제자에 의해 조건에 따라 유리한 표현형 효과를 갖는 경우이다. 이외에 자기복제자도 성공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존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서로 적합하도록 성공한 자기복제자의 조합, 즉 같이 잘 해 나갈 수 있는 자기복제자에 의해 점점 채워 간다. 원리적으로 이것은 서로 다른 유전자풀의 자기복제자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종, 강, 문, 계의 자기복제자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그러나 특히 긴밀한 상호적합성을 갖는 관계는 세포핵을 공유하고 있는 자기복제자의 부분집합 사이에서 발전해왔다. 또 유성생식의 존재에 의해 상호 적합성이 의미를 갖는 형태로 나타나는 곳에서는 유전자풀을 공유하고 있는 자기복제자의 부분집합 사이에서 발전해왔다. 
  1. 이 문장은 내가 직접 요약한 것이므로 오류와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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