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체크(Glen Check) <Disco Elevator>

| 2011. 12. 11. 14:36

글렌 체크.
무궁무진한 미래가 내다보이는 저력의 밴드다.


EP 앨범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이 앨범에 수록된 트랙은 총 6개고, 어쿠스틱 편곡을 제외하면 도합 4개의 트랙이 들어 있다.
갓 스물을 넘겼다는 이들의 음악은 냉정하게 평가해서 이지 리스닝의 극대화로 최근 전세계적인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일렉트로 팝의 인기에 편승한 한철 음악에 지나지 않는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고작 몇 곡 안 들어 있는 앨범에서 단조로움을 느낄 정도로 귀가 번쩍 뜨이는 독창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울 시티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었는데 보컬의 전자적인 음색은 처음에야 무난무난해서 들을만 하지만 반복해서 들을수록 시종일관 사근거리는 그 간지러움에 지루해지고 이유 모를 짜증이 난다.
세 번째 트랙 'Metro'에서 사운드면에서든 구성면에서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의 흔적이 조금 엿보이나 매우 출중한 것은 아니다.
가사의 소재도 벌써 고갈되어버린 건지, 4곡 중에 3곡이 우리 모두 파티장에 나가서 춤추고 높시다~하는 알맹이 없는 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주제다.
그럴싸하게 영어로 가사를 도배해 세련된 느낌을 보여주려는 허세스러운 냄새가 진동한다.
미안하지만 이렇게 물러 빠진 노래로는 사람들의 무릎을 움직일 수도 없고 지하 세계를 누비는 지하철을 달리게 할 수도 없으며 저기서 춤추는 여자의 드레스를 슬슬 벗길 수도 없다.
한국 인디 신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마라, 요 꼬맹이들아!

는 다 훼이크다.
하지만 전부 다 훼이크라고 하기엔 마음 어딘가가 조금 불편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땐 저렇게 심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조금은 위 문단과 같은 감상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 또 듣고, 저쩌다 또 듣고 하면서 글렌 체크가 가진 양파 같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 들리는, 그렇고 그런 식상한 음악이 아니었다.
글렌 체크는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끊임없이 새 껍질을 보여주는 양파 같은 녀석들이었다.

나는 이들의 음악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영화 '더 락'의 VX 가스 구슬을 떠올렸다.
영롱한 녹색 빛을 내는 VX 가스 구슬은 조금의 충격이 있을 시에 깨져서 가스를 내뿜고 순식간에 그 가스를 마시는 사람을 중독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점을 빼면 글렌 체크의 음악은 VX 가스 구슬과 꽤 닮아 있다.
이들의 음악은 화려하게 반짝거린다기보다 은근히 영롱하고 알차게 단단하기보다 깨지기 쉬운 여린 성질의 것이며 일단 그 본질을 맛보게 되면 순식간에 중독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첫 트랙 'Addicted'에서 그들은 이런 가사를 노래한다.

I'm so addicted to you, you're like drug to me.
I'm so addicted to you, you're my fantasy.


분명히 자신들의 노래를 들은 청자들의 반응을 예상한 가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히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가사다.
어쩌면 이들의 음악에서 VX 가스 구슬을 떠올린 것은 이 트랙을 가장 좋아하는 내가 'Addicted'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게다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영계들의 음악이라지 않는가.
어린 친구들의 음악은 시작부터 완성형에 가까울 수 없다면 차라리 이렇게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는 에테르 같은 성질을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순수한 원질적 음악이 앞으로 어떤 형상으로 바뀌어 갈지 지켜보는 것은 다마고치를 키우는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막연한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다.

글렌 체크.
정말 무궁무진한 미래가 내다보이는 저력의 밴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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