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천국편

| 2011. 12. 8. 17:35

오랜만에 책을 다 읽고 해설에 작가 연표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운 다음 뒷표지를 덮으면서 '야! 다 읽었다!'고 속으로 의미불명의 탄성을 내질렀다.
굳이 수치를 제시한다고 하면 10%에서 15%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읽는 내내 왜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냐는 자문을 들게 했던 '신곡'의 마지막 권을 다 읽고 저런 탄성이 터져나왔다는 것은 단순히 고생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에서 비롯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도 별로 이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작품 뒤의 해설과 인터넷의 정보를 조잡하게 짜깁기해 나의 평이 아닌 것을 나의 평인 척 쓰고 싶지도 않다.[각주:1]
설령 그것이 단테의 '신곡'에 대한 나의 몰이해와 몰지각을 드러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분명히 이 세 권의 책을 상당한 인내를 감수해가며 읽었던 것이다.

"인내"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단테의 '신곡'은 그냥 읽기에 매우 어려운 책이다.
단테 본인이 피렌체의 속어를 사용해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함을 주고자 했던 그 의도가 무색할 정도다.
각 구절과 단어에 담긴 수많은 해석과 해설은 꼭 고등학교 때의 언어 영역 공부를 떠올리게 한다.
조목조목, 단어 하나 하나 구절 하나 하나의 의미에 집중하여 밑줄을 긋고 필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단테의 신곡에 이와 같은 주해를 다는 것은 엄청난 지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해야 하고 성경을 낱낱이 꿰뚫어야 하며, 서양 문명의 태동부터 단테가 살던 중세까지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역사를 자세히 알아야 함은 물론이고 철학, 수학, 신학,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져야 하며, 라틴어와 중세 이탈리아어에 능통해야 하고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사람을 둘러싼 그의 인생 전반을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파악할 수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평생 동안 단테의 '신곡' 하나만 붙잡고 있어도 이루기 힘든 일이라는 것.
그 수많은 고난을 파헤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이 대작에 주석을 달아준 역사 속의 지성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신곡'을 이만큼이라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이렇게 축적되고 집약된 지식의 산물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머리로 받아들이려고 하니 내가 '신곡'을 읽는 것을 독서라기보다 고행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곡:천국편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지은이 단테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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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천국편'은 이전에 읽었던 두 편의 책보다는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나는 믿지도 않거니와 그 존재가 불필요하다고까지 느끼는 신이라는 허구적 개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굳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그 대상이 준다는 은총과 그를 찬미하는 모습에 강한 회의를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말도 안 되는 경외심 때문에?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 신격화 될 수 있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세속적이면서 조용하고 은근한 사랑관을 가진 내가 단테의 순정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을까.

햇빛이 가장 약한 눈에 그러하듯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생각만 해도
나는 정신을 잃고 분간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식의, 내가 보기엔 과장의 극치를 달리는 순정의 묘사는 '마담 보바리'에서 느꼈던 감정을 불러오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인간이란 이렇게 가벼운 존재들이 아니다.
인간의 지성은 이보다 훨씬 침착하고 무거우며 느긋한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신곡 : 연옥편'의 평에서도 언급했듯이, 단테의 지성은 위대하다.
단테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든 지적 산물을 쏟아부어 써놓은 글로부터 알게된 기성 지식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내가 이미 여러 번 밝힌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지식들을 토대로 자신이 만들어 낸 고유의 사고 체계에 관한 것이다.
이기적이면서 종교적인 의도에서 나온 구닥다리 같은 조언도 있기는 하지만 때로 단테가 제시하는 삶의 지혜들은 시대를 꿰뚫는 힘을 가진다.
안타깝도다.
이런 거대한 인물의 이성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허황된 존재와 감정에 관한 것이라니.

나는 지금까지 지나온 일곱 개의 하늘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우리의 세계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작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을 가볍게 보는 정신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
사고의 방향을 돌리는 사람이 진정 현명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종교와 사랑이 이토록 대단한 것이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종교전쟁'에서 신재식 교수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이렇게 뛰어난 학자마저 푹 빠지게 만드는 그 거침없는 매력은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의 책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 이면엔 대체 어떤 신비로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종교와 사랑은 ㅡ 어쩌면 어떤 한 대상에 대한 초인적인 애정으로 합칠 수 있는 두 개념 ㅡ 앞으로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탐구해야 할 대상들이다.

'신곡'을 훌륭한 책이라고 평한다면, 나는 이 책의 놀라운 표현력과 여기에 담긴 방대한 양의 지식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반대로 '신곡'을 별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라고 치부한다면 상징적 표현에 대한 난해함과 개인적인 호불호의 개입을 부각시킨 것이다.
사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의 평은 단편적인 것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이따위 글을 쓰는 것도 매우 무의미한 일이다.

어쨌든 2011년 12월 5일 저녁, 나는 단테의 '신곡'을 다 읽었고 '신곡' 읽은 남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그 영향이 잠재적으로 나타날지, 평생 동안 이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르게 영원히 내 머리 속 어딘가에서 잠복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자신의 경우엔 어떨지 궁금하다면, 한 번 직접 읽어보라.
  1. 이 문장은 꽤 많은 수의 포스팅이 이와 같은 짜깁기로 구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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