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 2011. 10. 16. 14:28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은 것이 올 2월 초다.
그의 책에서 다뤄진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이야기를 읽고는 그에 대한 흥미가 생겨 그의 작품을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 역시 2월 초 무렵이겠다.
플로베르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를 산 것은 거의 8월쯤인 것 같고 가을 햇살이 완연하게 내리쬐는 10월 중순에 책을 읽기 시작해 마찬가지로 10월 중순에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별로 쓸 말도 없기는 하지만 그 짧은 글을 더 짧게 줄여보자면 '마담 보바리'에 대한 나의 인상은 '적과 흑'이나 '장 크리스토프'를 읽었을 때의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내 취향과 매우 안 맞을 뿐더러 읽고나면 대체 왜 이런 책을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다.

마담보바리(세계문학전집36)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귀스타브 플로베르 (민음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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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같은 작품이 떠오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로 그랬던 건지,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던 그 당시의 작가들의 진부한 습관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유의 과도한 리액션이 내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만 있으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기절과 졸도를 밥 먹듯이 하는 '마담 보바리'의 인물들을 보면서 나는 도무지 공감을 느낄 수 없다.
나 자신이 그렇게 극적인 삶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차치하고서, 실제로 일상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의 심성은 요새 사람들보다 더 맑고 깨끗하고 순수했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인 문제를 표출하는 방법에 있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그런 '오바'를 보여주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희박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묘사력 하나는 인정할 수 있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디테일을 모든 감각을 곤두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내가 절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느낀 이유는 내가 그런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플로베르는 이 소설에서 크게 두 가지 대상, 자연과 인간을 주로 다루는데 정말이지 그 필력은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다.
1856년에 완성되었다는 '마담 보바리'에는 자연을 묘사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우리를 둘러싼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도 없이 많은 생명체들을 가리키는 단어와 표현이 이렇게도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실제로 그 때의 자연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절로 나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 그런 아름다움의 정도는 전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있다.
플로베르는 그런 면에서 확실히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확실히 지금보다는 옛날이 더 아름다운 세상인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디테일을 잡아내는 능력도 빼놓으면 아마 저기 어딘가 묻혀있는 플로베르가 섭섭해 하리라.
나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섬세한 관찰로부터, 그는 참 많은 것을 발견했던 모양이다.

시골 풍습에 따라 그녀는 뭘 좀 마시라고 권했다. 그가 사양하자 그녀가 다시 강권했다. 그리고 마침내 웃으면서 자기도 마실 테니 리큐어를 한잔 마시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녀는 찬장에서 퀴라사오 병을 꺼내오고 손을 뻗쳐 조그만 유리잔 두 개를 집어다가 하나에는 가득히, 다른 하나에는 살짝 붓는 척만 하고는 잔을 맞부딪친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거의 빈 잔이었으므로 그녀는 마시기 위하여 몸을 뒤로 젖혔다. 그렇게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입술을 내민 채 목을 길게 늘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웃으면서 예쁜 이빨들 사이로 혀끝을 내밀어 컵 밑바닥을 몇 번씩이나 날름거리며 핥았다.

책의 뒷표지에서 이 책이 사실주의 소설의 완결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주의라는 단어가 플로베르 식의 묘사법 ㅡ 사물을,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즉 사실대로 설명하는 ㅡ 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사실주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사실주의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뒤늦게 아버지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흔히 듣는 사실(寫實)주의(realism)의 사실과 우리가 흔히 쓰는 사실(事實, fact)에는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마담 보바리'가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불린 까닭은 그가 사물을 묘사하는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사람의 외양과 행동을 눈에 보이는 대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그런 방법론을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를 관찰하고 그 사회의 각종 특성과 내면에 깔린 풍토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방법론을 두고 사실주의라고 하는 것이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내가 원래 이해했던 사실주의의 의미로 보나, 실제로 쓰이는 사실주의의 의미로 보나 사실주의 소설임이 분명하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의 여러 전형적인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우선 보바리 부인의 모습이다.
그녀는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낭만주의의 찌꺼기 같은 존재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보바리 씨는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하등 문제가 없는 사람이나 보바리 부인의 허영을 채워주기에는 참 무관심하며 무감각한 사람으로 나온다.
나는 이런 남자의 모습이 시대를 초월한 것이라고 보는 편인데 이 세상 어딜 가나 감정의 곡선이 심하게 기울지 않고 주변에 대한 인지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은 비단 남자뿐만이 아니라 몇몇 여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런 여성이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뚝뚝한 남성'이라는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는 루앙에서 사는 동안 한번도 극장에 가서 파리에서 온 배우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그는 수영도 모르고, 검술도 모르고, 권총도 쓸 줄 몰라서, 어느 날 그녀가 소설을 읽다가 마주친 승마 용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했다.
 
약제사 오메는 이성과 과학을 맹신하는 실증주의적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오메의 무신론적(또는 비종교적), 이성적, 과학적 사고가 작가 플로베르의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플로베르가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오메라는 캐릭터를 써내려갔다면 이런 식으로 확고하며 정확하게 서술하지는 못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지고의 존재>를 믿고, <창조자>를 믿어요. 이름이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시민으로서 일가의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도록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창조자 말입니다. 그러나 구태여 교회를 찾아가서 은접시에 입을 맞춘다든가 우리보다 더 잘 먹고 지내는 사기꾼들을 내 주머니 돈으로 먹여살릴 필요는 느끼지 않습니다! 신을 숭배하는 일은 숲속에서도, 벌판에서도, 그리고 옛날 사람들처럼 창공을 우러러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받들어 모시는 나의 신은 소크라테스, 프랭클린, 볼테르, 베랑제가 모시는 신입니다. 나는 사보아 부제의 신앙 고백과 89년 불후의 원칙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팡이를 짚고 화단을 어슬렁거리든가, 친구들을 고래 뱃속에다 재워준다든가, 비명을 내지르고 죽었다가 불과 사흘 뒤에 소생하는 하느님 같은 그런 아저씨는 믿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엉터리 같은 얘기인 데다가 물리학의 모든 법칙에 완전히 어긋납니다. 
 
플로베르의 문맥을 파악하는 데에 주석이 많은 도움이 된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마담 보바리'의 주석은 상당히 독자 친화적이라 가려운 곳을 적당히 골라 시원하게 긁어준다.
당시 시대에 관해, 문화에 관해 우리가 주석이 아니면 절대로 몰랐을 그런 정보를 제공하며 필요할 때는 역자가 직접 개입하여 자신의 주관이 가미된 해설을 곁들이기도 한다.
무지몽매한 나 같은 독자들에게 그런 주석은 편견을 심어주는 잣대보다 숨겨진 내용을 이해하게 하는 혜안을 제공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500쪽이 조금 넘는 소설을 읽은 것 치고는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불륜의 이야기는 요즘의 아침 드라마의 이야기에 비하면 매우 건전한 편이고, 보바리 부인보다 훨씬 더 타락해가는 인간상은 주변에 널린 것이 현실이기 때문일까.
뒤에는 약 50쪽에 달하는 작품 해설이 실려있는데 그다지 읽고 싶은 느낌이 안 나서 읽지 않았다.
막회와 같은 비릿함과 뒤섞임 범벅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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