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Blunt - Goodbye my lover

| 2011. 12. 14. 11:52

노래의 가사는 문학이다.
그리고 문학을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그 문학이 쓰여진 언어에 상당히 정통해야 한다.
특히나 대부분의 노래 가사는 문학 중에서도 운문에 가까운데, 운문이라는 문학의 장르만큼 그 문학의 언어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경우도 없다.

나는 가사가 들어간 음악에서 가사가 그 음악의 훌륭함에 기여하는 바를 조금 낮게 보는 편이다.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내가 듣는 가사의 절반을 훨씬 넘는 비율의 가사가 내가 그나마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한국어가 아니고, 따라서 내가 그 가사가 가지는 깊은 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내게 있어 가사의 1차적 존재 의의는 라임(rhyme)이고, 사실 이 라임보다 더 중요한 내재적인 의미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그러니 가사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 한국어가 아닌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 가사 하나만으로 음악적 완성을 이룬 트랙이 있다.
잉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블런트가 부른 'Goodbye my lover'.
영어 가사와 함께 감상해보자.


혹시나 이 가사를 이해하기엔 짧은 영어 실력을 가진 사람을 위해 인터넷에서 많이 돌고 있는 번역에 조금 수정을 가해서 아래 올려두었다.


노래의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뒷부분 어딘가를 제외하면 코드 진행은 두 가지 대동소이한 패턴의 반복이다.
멜로디도 극단적이지 않게 무난하고, 다양한 악기의 사용도 자제했다.
정말이지 가사 하나만으로 모든 감동을 우려내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동감하는, 또는 감동 받은 부분은 첫 브릿지의 "You changed my life and all my goals."부터 시작한다.
현재의 삶을 바꾸고 내 모든 목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태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 그를 기반으로 계획되었거나 예상되는 장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말 그대로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위태롭게 만드는 그런 여자 ㅡ 제임스 블런트의 가사에서 "너의 아이의 아버지"라는 구절이 나오므로 이 노래의 청자를 여자라고 가정하겠다 ㅡ 라니.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쓸 수 없는 가사다.
대체 'Goodbye my lover'의 모티프가 되었던 뮤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확인되지 않은 정보원에 의하면 그 뮤즈는 미샤 바튼이라고 한다.
과연 제임스 블런트는 영화 '식스 센스'를 봤을는지.

"Shared your dreams and shared your bed. I know you well, I know your smell."
내가 좋아하는 두 번째 구절은 너의 꿈을 알았기에 너를 잘 안다고 할 수 있고, 너의 침대를 공유했기에 너의 체취를 알고 있다는 우리나라 같았으면 당장에 19세 딱지 붙었을 대구(對句)의 구절을 아름다운 라임에 맞춰넣은 부분이다.
너의 침대를 공유했기에 체취를 알고 있다니, 거의 존 메이어가 'Your body is wonderland' 같은 성희롱성 섹드립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과 비슷한데 어쩜 두 사람 다 이리도 달콤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역시 사람은 일단 멋있고 볼 일이다.

제기랄!
근데 미샤 바튼과 잠자리를 함께 했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1/100은 가진 느낌이겠다.

http://www.sheknows.com/celebrity-photos-entertainment-news-gallery/celebrity-weight-loss/mischa-barton-in-a-bikini


세 번째는 "And as you move on, remember me."다.
첫 구절은 꼭 사랑과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도의 의미로 생각해도 된다.
어느 쪽의 해석이든 여자의 미래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말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부탁이지만 이상스럽게도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본다.
심지어 굴욕적이고 찐득찐득 지저분한 이별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조차 항상 '그래도 꾸준히 나를 기억하겠지.'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자존감이 강한 남자들이 공유하는 감정일 수도 있겠다.
나 같은 사람은 누구나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리라는, 나 혼자서만 자존감이라고 말하고 모든 다른 사람들이 미친 생각이라고 부르는 그런 감정의 발로.
이미 그 여자들은 나를 잊은 지 오래겠지만.

마지막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구절 "I'd be the father of your child."다.
당연히 나는 "your child"에는 관심이 없고 "being the father"에 아주 지대한 관심이 있다.
장난이다.

글을 끝내기 전에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은 제임스 블런트의 목소리가 지니는 특유의 온도와 습기가 얼마나 이 아름다운 가사를 더 아름답게 표현해냈냐는 것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 노래를 오랜만에 여러 번 음미하며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Goodbye my lover'를 이승열의 목소리로, 제임스 라브리에의 목소리로, 앤서니 키에디스의 목소리로, 벤 폴즈의 목소리로 들어도 원곡과 비슷한 정도의 감동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참으로 놀라운 가사다.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ath Proof  (0) 2011.12.17
Radiohead <The Bends>  (3) 2011.12.17
Paul Gilbert - Friday night (Say yeah)  (2) 2011.12.16
스무 살, 도쿄  (0) 2011.12.16
달콤한 인생  (0) 2011.12.16
일의 기쁨과 슬픔  (0) 2011.12.11
글렌 체크(Glen Check) <Disco Elevator>  (0) 2011.12.11
신곡 : 천국편  (0) 2011.12.08
Lenny Kravitz <Mama Said>  (0) 2011.12.03
John Legend - Soul joint  (0) 201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