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ngarry Glen Ross

| 2011. 12. 18. 10:06

'악마를 보았다' 본다고 해놓고 까먹었다.
내 단기 기억 상실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던 좋은 사례.

어쨌든.
'글렌개리 글렌 로스'는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다.
탄탄한 짜임새를 자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에 알 파치노, 잭 레몬, 알렉 볼드윈, 에드 해리스, 알란 아킨, 케빈 스페이시 같은, 연기라면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명배우들이 나온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악마를 보았다'가 가볍게 잊혀질 수밖에.

거짓말 같은 출연진이지만 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http://www.eventbrite.com/event/2604321596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특별한 연출 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대사가 주를 이루는 영화이길래 이 영화의 연극화도 흥미로운 작업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러면 그렇지.
알고 보니 이 '글렌개리 글렌 로스'가 원작 연극의 영화화라고.

텔레마케팅과 방문 상담을 통해 부동산을, 아마도 투자 가치 없는 아주 쓰레기 같은 땅을 파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하루 이야기를 담았다.
짧은 발단이 끝나고 본사에서 파견 나온 사람 역의 알렉 볼드윈이 앞으로 일주일 동안 시간을 준 뒤 그 때까지의 영업 실적을 따져 맨 위 두 사람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해고하겠다는 이야기를 아주 매섭고 재수없게 통보하면서 영화는 전개 과정으로 돌입한다.
이 때부터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무섭게 변한다.
그리고 바로 이 때부터 우리가 명배우라고 부르는 그들의 진가가 발휘된다.

갑자기 입장이 뒤바뀌는 잭 레몬과 케빈 스페이시의 캐릭터를 제외한 '글렌개리 글렌 로스'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평면적인 성격을 갖지만 그 성격 자체가 각각 매우 독특하다.
말로써 사람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여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결정을 내리게 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화술과 대인 능력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일주일간 최대의 활약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우에 대한 불만을 가진 불안한 캐릭터들, 게다가 각자 나름의 사정과 성격을 가진 그 복잡한 캐릭터들을 정말 잘도 연기한다.
대본을 외웠다고는 하지만 어쩜 저렇게 구구절절 긴 이야기를 청산유수처럼 말하는지 신기하다.
위키피디어는 이 영화의 제작 예산이 무려 12.5M$라고 하는데 별 다른 부분에서 돈을 썼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작비의 대부분을 모두 배우 캐스팅에다가 돈을 부은 것 같다.
비록 영화가 흥행에 매우 실패해 제작비 회수에는 물 건너갔지만 말이다.

워낙에 영화가 말뿐이 없고 나름의 반전이 있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야기할 수 없으니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이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평을 보면 뭐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그렇게까지 이 영화를 진지하게 보지 않아서 그런지 현대인의 이기적 심리와 소시오패스들의 존재, 등장인물들의 배타주의와 단조롭고 밋밋한 연출의 관계 같은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음, 그런 게 아니라면 기가 막힌 화술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의 작품들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잇겠다.
물론 말 하나만 놓고 보면 '인 디 에어'든 '땡큐 포 스모킹'이든 토니 상에 노미네이트되고 퓰리처 상을 받았던 이 대본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지만 말이다.

알렉 볼드윈의 이 연기를 보라.
매우 웃기면서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이 언중유골의 대사들이 마음에 팍팍 꽂히지 않는가.
ABC!
AIDA!
물론 그의 영어가 잘 들리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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