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 2012. 10. 7. 22:12

이 영화를 본 게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라니, 최근 내 주변에서만 시간이 프레스토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직까지 미량으로나마 잔존하고 있는 영화 《백야행》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상당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고 생각하는 평을 링크해두니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배경 지식을 쌓고 싶다면 내 포스트보다는 저 리뷰를 읽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영화의 초반은 극도로 산만하기 그지 없다.
관객들이 등장 인물이나 스토리에 친숙해지기 이전에 너무 많은 캐릭터를 한꺼번에 등장시키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수준으로 시간을 넘나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도입이 있었다는 식으로 변호를 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 점을 단점으로 인식했더라면 좀 더 관객 친화적으로 각색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난해하기 짝이 없는 초반부를 잘 넘긴다면, 중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따라오는 것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영화 《백야행》의 중후반부, 영화의 전체 진행을 1부터 10으로 놓고 봤을 때 약 3~8에 해당하는 부분은 보통 우리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영화의 그것들과 견주어 크게 손색이 없다고 본다.
숨길 정보는 적당히 숨겨가면서 관객들의 흥미 유발을 위한 최소한의 힌트를 던지는 방식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ㅡ 물론 이 부분에서 찬사를 보내야 할 대상은 영화 제작진이라기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겠지 ㅡ 그 전까지 영화의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충분히 즐겁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일본 작가들은 참 이런 류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종특 수준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몇몇 이야기 부분들의 아다리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기는 한데 뭐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아니다.
영화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의 시적 허용 정도로 해석하고 너그러이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이 훌륭했던 진행은 날벼락과도 같은 엔딩 장면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데,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야 할 그 손예진의 마지막 대사가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내뱉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링크한 리뷰에서 이 영화를 두고 "원작의 오독이고, 원작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 이런 장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바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정보의 양적인 면에 있어 단연 우위를 점하는 소설의 디테일한 에피소드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여 제한된 시간, 제한된 분량 안에 어떤 식으로 구현해내느냐다.
다시 말해 절정 부분의 감정적 클라이막스와 결말 부분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낼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적절한 분위기에 배치하여, 관객들이 소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선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ㅡ 어쩌면 《백야행》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이 점에서 영화는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트리비아를 정리하면, 고수는 시종일관 잘생겼고 손예진의 베드신은 탄산 다 빠진 콜라를, 그것도 미지근하게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민정은 그저 그랬다.

http://blog.naver.com/brightyou03/70074653180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슨도메  (0) 2012.11.17
In Time  (0) 2012.11.11
나얼 《Principle Of My Soul》  (0) 2012.10.18
네이버 음악 이 주의 발견 - 국내 앨범 10월 둘째 주 40자평  (0) 2012.10.17
네이버 음악 이 주의 발견 - 국내 앨범 9월 셋째 주 40자평  (0) 2012.10.13
Platoon  (0) 2012.09.18
Barbarella  (0) 2012.09.04
농담  (1) 2012.09.03
네이버 음악 이 주의 발견 - 국내 앨범 8월 다섯째 주 40자평  (2) 2012.09.01
Malena  (0) 201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