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Gordon

| 2013. 12. 21. 16:52

이 만화 같은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아마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를 읽었을 때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몇 안 되는 문장에 매료가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책을 읽은 지 약 2년이 지나서야 그 때 메모해둔 영화를 보고 있다니 나도 참 대단히 끈질긴 덕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1980년에 제작되었다. 원작인 만화는 1934년부터 제작이 되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구시대의 SF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녀석이다. 꾸준히 작품화가 되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단지 움베르토 에코의 자전적 소설에 등장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플래시 고든》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추측. 스토리나 그 배경으로 전제된 조건 등에 문제가 없음은 확실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영화의 OST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위대한 밴드 퀸에 의해 제작되었다. 최상위 랭크만 따져봤을 때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각각 차트 1위와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하니, 음악적인 완성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무척이나 퀸스러우며 동시에 무척이나 80년대스러운 플래시의 테마를 잠시 감상해보자.

연출 면에서는 어떤 영화였을까? 1980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5번째 스타워즈 시리즈의 초기 제작비가 1800만 달러였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제작비는 총 2000만 달러였다. 굳이 21세기의 영화에 비유하자면 거의 아이언맨이나 어벤저스 급의 블록버스터다. 따라서 예산 부족으로 인해 연출의 질이 떨어지는 일 또한 없었다는 이야기에 정당성이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나 완벽한 조건을 갖춘 영화의 실체는 처참했다. 살면서 봤던 SF 영화 중에 이보다 더 총체적 난국인 영화를 꼽기가 어렵다. SF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설정부터가 진부하기 짝이 없었으니 나머지 요소들은 까대봤자 나의 시간 낭비요, 당신의 에너지 낭비요, 전우주적으로 엔트로피를 빠르게 증가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으므로 여기서 그만둔다.

대신 오라 공주 역으로 나와 뭇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오르넬라 무티라는 배우의 젊은 모습 사진이나 올리면서 이 분을 삭이도록 하겠다. 참으로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여자다.

오라 공주의 숨막히는 앞태. http://whatculture.com/film/blu-ray-review-flash-gordo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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