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stie Boys <Licensed To Ill>

| 2012. 1. 3. 10:37

하드코어 펑크 밴드로 시작해 랩 펑크, 힙합 락 밴드로 장르르 전환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팀이라는 전력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혁명을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선 역시나 서사적인 진행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나는 비스티 보이즈의 첫 데뷔 정규 앨범 'Licensed To Ill'을 듣기로 했다.


이 앨범은 뭐랄까 영락없는 꼴라쥬(collage)다.
그 당시 점점 다분화되던 음악 장르의 단편을 하나 하나 따와서 일종의 통섭을 이뤄낸 것이다.
위키피디어를 참조하여 이들이 이 앨범에 쓴 샘플들의 주인공들을 나열해보자.
정통 락과 헤비메탈 밴드의 원조들인 블랙 사바스와 레드 제플린, 좌파적인 성향을 가진 초기 펑크 밴드 클래쉬, 빅밴드 훵크 밴드들인 트러블 훵크와 워(War), 이들보다 좀 더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진 쿨 앤 더 갱, 재즈 피아니스트 밥 제임스, 힙합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했던 커티스 블로우, 슬릭 릭, 런 디엠씨 등.[각주:1]
비스티 보이즈는 이들의 사운드를 조각 조각 잘라와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했다.
이 과정을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에서 말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에 비유해도 무리가 없겠다.

이런 인위적인 콜래보레이션이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 앨범의 제일 마지막 트랙인 'Time to get ill'이다.
위대한 위키피디어를 보면 이 트랙에는 총 11개가 넘는 샘플링이 사용되었는데 도저히 샘플링의 원본을 제공한 뮤지션 사이에 어떤 합의점을 이끌어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레드 제플린과 AC/DC, 배리 화이트와 빌리 프레스턴, 스티브 밀러 밴드와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스티비 원더와 쿨 앤 더 갱 등의 이름을 매치하면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음악을 한 데에 묶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 않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래다 퍼왔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냥 이 앨범이 이러이러하다는 사실적 관계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자칫 칭찬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위의 내용은 나의 감상과는 거의 정반대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사실 별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들의 전력은 깔끔히 잊고 말라비틀어진 흑인 두 명으로 ㅡ 그래서 사실 이들의 외모를 보고는 상당히 놀랐다 ㅡ 구성된 틴에이지 힙합 그룹인줄 알았고 힘찬 라임이 주를 이루는 미니멀한 반주에서 딱히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는 없었다.
'Brass monkey' 같은 트랙은 짧으면서 훅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지만 뭐 그것도 비교 우위에서 나온 느낌이라고 본다.
정리하면, 그저 한 번 쓰윽 들어보고 넘어가는 정도의 역할말고는 별 다른 게 없었다는 말이다.

한편 이는 내가 뉴욕이라는 곳에 한 번도 가지 못해서 벌어진 참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의 3달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 평생을 살아왔던 나와 브룩클린 출신인 이들의 앨범이 요구하는 인간상 사이에 큰 괴리가 있지는 않을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6년의 최신 유행을 쌍용 띠의 해에 태어난 내가 억지로 꾸역꾸역 거슬러 따라가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이들의 음악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앤디 워홀의 팝 아트적인 분위기 ㅡ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음악이 기계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단순한 구성의 장르라는 점 때문이 아닐까? ㅡ 와 내가 앤디 워홀 전시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어우러진, 그런 필연적인 결과는 아닐까.
등등의 짧은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1. 당연히 나도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냥 아는 체 좀 해보려고 별 말 안 붙이려다가 너무 허세를 부리는 것 같아서 나도 하나 하나 클릭해보고 대충 적어놨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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