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연을 만나다

| 2012. 1. 8. 20:37

내가 손지연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은 2009년, 23세 때의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느 한 장르의 음악만을 주구장창 듣는 일종의 악습관을 버리고 열심히 음악 세계를 넓히고 있던 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음악들을 다양하게 들으며 정저지와의 자세를 버리고 음악에 대한 한 차원 높은 식견을 배우고 있었던 어느 날, 지인이 엄청난 음악을 발견했다면서 누군가의 노래를 들고 왔다.
정확한 때는 아마 4월이나 5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이렇게나 탈구조주의적인 멜로디를 쓸 수가 있을까 놀라움을 표하며 그녀의 3집을 열심히 들었고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음악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내 인생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던 손지연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난 해 말.
지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막걸리 집에서 술을 먹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그녀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분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무심결에 던졌는데, 놀랍게도 가게의 사장님과 노래의 주인공이 상당히 친하며 원한다면 같이 만날 수도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 기회가 있게 된다면 매우 영광이라는 말을 하고, 내게 처음 손지연의 음악을 알려주었던 지인에게 연락해 이런 일이 있으니 언제 서울로 올라올 약속을 잡자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과도한 음주 때문에 잠에 들었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는 전날의 기억을 많이 상실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만남의 약속까지는 잊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대전에 거주하는 나의 지인은 바쁜 일정 때문인지 여간해서 서울에 올라올 짬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 주 중 우연히 사장님을 정독도서관 정문 건너편의 까페 연두에서 마주쳤고 조만간 지난 번의 약속을 빨리 잡아버리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이런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영영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지인에게는 안 됐지만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보기로 한 뒤 잽싸게 약속을 잡았다.
대망의 날은 2012년 1월 7일 토요일, 시간은 저녁, 장소는 사장님의 가게로 정해졌다.
참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시천주
주소 서울 종로구 관훈동 9-22 2층
설명 100% 국내 농산물만을 이용하여,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한식 음식점
상세보기

태어나서 이 정도로 유명한 가수를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진지한 음악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아직 들어보지 않은 그녀의 1집과 2집을 아침부터 꼬박 다 들었다.
혹시나 신청곡을 요청해야 할 사정이 생길지도 몰라 신청할 노래의 제목까지 외워두었다.
'1집에선 '절망', 2집에선 '너', 3집에서는 '거절'이 듣고 싶으나 이 노래는 사실 연주가 듣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제쳐두고 진짜 노래로는 '그리워져라'가 듣고 싶다.'라는 멘트까지 준비했다.
뭔가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 그리고 그냥 일상에 대해 질문할 거리는 없는지 열심히 생각해두기도 했다.
뻘쭘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기엔 1분 1초가 아까운 만남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약속 시각인 6시에 딱 맞춰 가게를 찾았고, 안주 삼아 먹을 치킨을 시켜두고는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나중에 올 다른 지인이 보드카를 들려 보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도착하면 맛있게 먹기 위해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6시 30분 무렵에 드디어 인기 가수 손지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물은 사진과 거의 흡사했다. http://cafe.daum.net/runningson/_album/310


가게에서 나온 것이 새벽 1시 무렵이었으니 거의 6시간 가량을 같이 이야기한 셈이었다.
나의 노력과는 달리 초반은 상당히 쭈삣쭈삣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녀의 털털함의 끝을 달리는 성격 덕에 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직접 집에서 담가 오늘 먹기 위해 가져왔다는, 엄청나게 맛이 있었던 김치와 우리가 준비한 BBQ 황금 가슴살, 시천주 사장님의 해물 전과 냉이 된장국, 거기에 맛있는 막걸리와 보드카+포도 쥬스, 고량주까지!를 같이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우 자연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째서 그렇게 프레임이 없는 멜로디를 쓸 수 있는지, 직설적이면서도 시적인 운치가 느껴지는 가사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우연히 본 TV에서 알게 된 유행어를 농담으로 던지며 터져나오던 박장대소, 담배 연기와 함께 튀어나오는 구수한 욕설, 결국 성사된 신청곡의 단촐한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 목소리 등에서 삶에 대한, 그리고 음악에 대한 그녀의 접근법을 부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하나 둘 늘어갔음에도 유쾌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술을 먹고, 술을 먹고, 술을 먹으며 별로 무겁지는 않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고, 때로는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ㅡ 그녀의 라이브는 정말 엄청나게 좋았다! ㅡ 다음 주 언젠가 또 만나서, 김치 사이에 껴넣은 가자미를 꺼내 먹자는 약속을 정하기도 했다.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게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고, 그 다음 날인 오늘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심한 숙취를 느꼈다.
즐거운 술 자리 뒤에는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두통을 새옹지마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인기 가수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재밌고 유익하면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교훈을 온 몸으로 느낀 어제와 오늘이었다.
비록 그 라이브 현장을 직접 찍지는 못 했지만, 아쉬운대로 그녀가 예전에 불렀던 에델바이스 영상을 올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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