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내 삶이 재미없게 흘러간다고 느껴서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나의 삶을 돌아보며 과연 지금 무엇이 결여되었나 곰곰히 생각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최근에 내가 영화를 매우 안 보고 있었다는 것.
블로그를 참고하자면 최근 8달 동안 나는 48개의 영화를 봤는데 이는 약 4일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본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나는 원래 영화를 두 편은 봤어"야" 하는 기간에 한 편도 보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저녁이 되어 의무감으로 영화를 봤다.
피곤했기에 러닝 타임이 2시간이 안 되는 것 중에 골랐다.
그렇게 해서 뽑힌 것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황정민과 차승원이 나온다는 말에 기대감이 커졌다가 한지혜의 출연 소식에 조금 좌절하고 이준익 감독의 이름을 봤을 때 다시 기대감이 커졌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기대감은 점점 줄어들어 실망감이 되고 말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만화에 대해서는 이 포스트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예상했던 대로 이 영화는 만화 고유의 맛을 맛깔나게 담아내는 데 실패한 케이스다.
다른 몇 개의 리뷰를 읽어봐도 이 영화가 원작 구현에 실패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된 칼 싸움 장면에서는 그나마 만화의 "정중동" 느낌을 살리긴 했으나 대사의 무게감 같은 내용 면에서도, 컷 구성의 독특함 같은 형식 면에서도 원작의 우수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원작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 취할 수 있는 접근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여러 가지의 방법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관한 것이다.
재현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게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는 방법도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과 갈등 구조를 재구성하는 방법도 있고, 등장 인물 성향의 재해석도 가능하며, 원작의 플롯 구조만 가지고 와서 거의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여기서 평자가 꼭 견지해야 할 태도는 그런 다양한 방법론 자체에 있어서의 좋고 나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의 소지가 생기는 부분은 그렇게 선택한 길을 어떤 식으로 나아가느냐에 관한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의 평이 충분히 가능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가장 큰 문제는 플롯에 있다.
초점을 두는 등장인물을 바꿔서 이야기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바꾼 점은 신선도의 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일단 그렇게 대대적인 작업을 벌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원작의 이야기 구조, 스토리텔링 기법,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아주 조심스럽고 치밀한 계산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치밀함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매우 엉성한 시나리오를 상영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중반부까지 어느 정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구도는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채우기 위해 대의를 버린 이몽학을 악으로, 그 악을 저지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황정학과 견자, 백지를 선으로 그리던 영화는 먼저 그렇게 악으로 규정된 것처럼 보이는 이몽학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의 행동에 선의적인 면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첫 물 타기를 시도한다.
이몽학의 반란은 그렇게 대의를 얻게 된다.
비록 그 꿈을 향한 방법이 잘못된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상적인 대동 세계를 조직하려는 그의 행보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황정학의 죽음과 거기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대의를 느끼는 이몽학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하지만 영화의 극후반부에서 또 한 번의 물 타기가 행해진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무능한 정부와 의미없는 당파 싸움의 편 가르기에 대비되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를 다시금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개입까지 등장하며 관객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옳지 않은 것인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가 끝이 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는 카타르시스가 없다.
그렇다고 분명한 주제 의식이 있느냐?
그런 것도 없다.
이몽학과 견자의 대결과 그 후 견자가 보여주는 분노는 여태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모든 대의를 쪽쪽 빼버리고 그것들을 개인적 자존심 놀음으로 격하시킨다.
대체 이렇게 김 빠지는 플롯이 어디에 또 있을 수 있겠나?
'최종병기 활'에 대한 나의 비판은 대부분 그 형편없는 플롯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도 영화를 만드느라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금의 동정심을 발휘해 후반부에 출연 배우들에 대한 칭찬으로 끝을 내렸는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솔직히 배우의 캐스팅이나 연기가 훌륭했다고까지 말하기도 좀 뭐하다.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차승원과 황정민, 두 사람의 연기야 공인되기도 했고 극 중 역할에 최적화된 캐스팅이라는 평을 할 수 있겠지만 글쎄, 나머지에 대해서는 마냥 칭찬만 할 수가 없다.
한지혜는 거의 걸어다니는 배경 수준이었고 ㅡ 쇄골 노출 장면만큼은 오! ㅡ 원작의 주인공인 견자 역의 백성현은 억지로 붙인 티가 나는 수염도 안 어울리고 얼굴도 안 어울리고 말투도 안 어울리고 전반적으로 참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였다.
'최종병기 활'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류승룡의 문신(文臣) 연기는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고, '적과의 동침'에서 감초 같은 조연 역을 맡았던 신정근의 연기도 뭐 그냥 그랬으며 선조 역의 김창완도 뭐 별로 덧붙일 말은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본 영화가 이렇게 실망스럽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이 작품을 처음으로 보는 건데 요상한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 더욱 아쉬울 따름.
하나 확실한 것은 최근에 내가 영화를 매우 안 보고 있었다는 것.
블로그를 참고하자면 최근 8달 동안 나는 48개의 영화를 봤는데 이는 약 4일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본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나는 원래 영화를 두 편은 봤어"야" 하는 기간에 한 편도 보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저녁이 되어 의무감으로 영화를 봤다.
피곤했기에 러닝 타임이 2시간이 안 되는 것 중에 골랐다.
그렇게 해서 뽑힌 것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 내내 차승원의 빛나는 기럭지가 돋보이더라. http://olpost.com/v/86318
황정민과 차승원이 나온다는 말에 기대감이 커졌다가 한지혜의 출연 소식에 조금 좌절하고 이준익 감독의 이름을 봤을 때 다시 기대감이 커졌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기대감은 점점 줄어들어 실망감이 되고 말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만화에 대해서는 이 포스트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예상했던 대로 이 영화는 만화 고유의 맛을 맛깔나게 담아내는 데 실패한 케이스다.
다른 몇 개의 리뷰를 읽어봐도 이 영화가 원작 구현에 실패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된 칼 싸움 장면에서는 그나마 만화의 "정중동" 느낌을 살리긴 했으나 대사의 무게감 같은 내용 면에서도, 컷 구성의 독특함 같은 형식 면에서도 원작의 우수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원작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 취할 수 있는 접근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여러 가지의 방법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관한 것이다.
재현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게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는 방법도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과 갈등 구조를 재구성하는 방법도 있고, 등장 인물 성향의 재해석도 가능하며, 원작의 플롯 구조만 가지고 와서 거의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여기서 평자가 꼭 견지해야 할 태도는 그런 다양한 방법론 자체에 있어서의 좋고 나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의 소지가 생기는 부분은 그렇게 선택한 길을 어떤 식으로 나아가느냐에 관한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의 평이 충분히 가능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가장 큰 문제는 플롯에 있다.
초점을 두는 등장인물을 바꿔서 이야기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바꾼 점은 신선도의 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일단 그렇게 대대적인 작업을 벌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원작의 이야기 구조, 스토리텔링 기법,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아주 조심스럽고 치밀한 계산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치밀함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매우 엉성한 시나리오를 상영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중반부까지 어느 정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구도는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채우기 위해 대의를 버린 이몽학을 악으로, 그 악을 저지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황정학과 견자, 백지를 선으로 그리던 영화는 먼저 그렇게 악으로 규정된 것처럼 보이는 이몽학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의 행동에 선의적인 면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첫 물 타기를 시도한다.
이몽학의 반란은 그렇게 대의를 얻게 된다.
비록 그 꿈을 향한 방법이 잘못된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상적인 대동 세계를 조직하려는 그의 행보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황정학의 죽음과 거기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대의를 느끼는 이몽학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하지만 영화의 극후반부에서 또 한 번의 물 타기가 행해진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무능한 정부와 의미없는 당파 싸움의 편 가르기에 대비되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를 다시금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개입까지 등장하며 관객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옳지 않은 것인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가 끝이 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는 카타르시스가 없다.
그렇다고 분명한 주제 의식이 있느냐?
그런 것도 없다.
이몽학과 견자의 대결과 그 후 견자가 보여주는 분노는 여태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모든 대의를 쪽쪽 빼버리고 그것들을 개인적 자존심 놀음으로 격하시킨다.
대체 이렇게 김 빠지는 플롯이 어디에 또 있을 수 있겠나?
있을 수가 없어.
'최종병기 활'에 대한 나의 비판은 대부분 그 형편없는 플롯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도 영화를 만드느라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금의 동정심을 발휘해 후반부에 출연 배우들에 대한 칭찬으로 끝을 내렸는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솔직히 배우의 캐스팅이나 연기가 훌륭했다고까지 말하기도 좀 뭐하다.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차승원과 황정민, 두 사람의 연기야 공인되기도 했고 극 중 역할에 최적화된 캐스팅이라는 평을 할 수 있겠지만 글쎄, 나머지에 대해서는 마냥 칭찬만 할 수가 없다.
한지혜는 거의 걸어다니는 배경 수준이었고 ㅡ 쇄골 노출 장면만큼은 오! ㅡ 원작의 주인공인 견자 역의 백성현은 억지로 붙인 티가 나는 수염도 안 어울리고 얼굴도 안 어울리고 말투도 안 어울리고 전반적으로 참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였다.
'최종병기 활'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류승룡의 문신(文臣) 연기는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고, '적과의 동침'에서 감초 같은 조연 역을 맡았던 신정근의 연기도 뭐 그냥 그랬으며 선조 역의 김창완도 뭐 별로 덧붙일 말은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본 영화가 이렇게 실망스럽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이 작품을 처음으로 보는 건데 요상한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 더욱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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