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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통채로 읽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완독한 시집은 아버지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 아닌 것 같이'가 아버지의 시집에 필적하는 중요성이 있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옹색한 이야기로 답을 대신하자면 내가 읽은 시집들은 전부 다 내가 직접 아는 사람들이 썼다는 것이다. 1
고등학교 때 입시를 대비해 읽은 시가 내 머리 속 시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조금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여전히 시가 갖는 미학을 깨우치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게 또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나의 본능이 시라는 장르를 어느 정도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어쨌든 자신 있게 떠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닌 만큼 최대한 짧은 평을 쓰리라고 마음 먹었다.
더 짧은 옷을 부탁해! http://julcara88.egloos.com/2887290
이 시집의 주된 테마는 아주 일상적인 일상 속에서 문득 깨우치는 자연과 인간의 이치 정도로 잡으면 되고, 그에 대한 표현 방법으로는 짧은 대구와 반복, 시적 허용을 통한 운율의 정돈 등이 자주 보이며, 어조는 낙관적이고 목가적이며 독백적이고 사색적이나 때로는 회화적이다.
이와 같은 시를 쓰기 위해선 아무리 진부한 것이라도 신선한 관점, 범인들이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에서 보려는 쇄신적이고 자기 초월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저자는 이와 같은 면에서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나 여행과 사진이라는 두 가지 후천적인 방법론을 통해 그 능력을 한 층 업그레이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글과 사진이 모두 쉬우므로 누구나 쉽게 별 생각 없이, 그러니까 "아무 일 아닌 것 같이"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그러나 편집은 조금 아쉬운 편.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두 편의 시를 올리며 평을 마친다.
삶은 달걀
삶은 달걀
짜지도 달지도 않고
맹탕의 맛 인것을
사람이
제가 소금 찍어놓고 짜다고 하고
설탕 찍어놓고 달다고 하더라
삶은 맹물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것을
사람이
제가 슬픔을 얹어놓고 슬프다고 하고
기쁨을 얹어놓고 기쁘다고 하더라
아프다
아프다
아프면
보고 싶은 거구나
아프면
기대고 싶은 거구나
아프면
외로운 거구나
아프면
슬픈 거구나
아프면
뭐라도 잡고 싶은 거구나
아픈 사람에게는
그런 것을
줘야 하는 거구나
- 총 세 권이다. 아버지의 첫 시집, 두 번째 시집, 그리고 '아무 일 아닌 것 같이'까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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