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트로서 6월 미국 일정이 모두 끝났다.
중간에 심하게 게을러지던 때도 있었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제외하면 최대한 있었던 일을 고대로 적어 올렸다는 것이 나의 총평.
6월 30일에서 7월 1일로 넘어오던 밤은 술 셔틀의 생일이라 같이 시간을 보내주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7월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시작했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나의 7월은 그렇게 계속 하나씩 하나씩 어긋나갔다.
위안이라면 위안이지만 다행히도 미국의 7월 초 분위기 역시 상당히 여유롭게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ㅡ 이 말인 즉슨, 잘못 끼워진 단추라고 하더라도 대단한 건 없었고 그냥 경악스러울 정도의 여유를 즐겼을 뿐이라는 것.
7월 1일 자체가 일요일이라 시작 자체도 느긋했지만 바로 그 주 수요일에 미국 최대의 공휴일 중 하나인 인디펜던스 데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윌 스미스 주연의 <인디펜던스 데이>와 톰 크루즈 주연의 <7월 4일생>밖에 없는 내게 미국의 독립일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단지 동부에서는 꽤 유명하다는 필라델피아의 불꽃 놀이가 중요했을 뿐이다.
당연히 다음 날이 휴일이었던 7월 3일엔 술을 먹었다.
이리 저리 몸을 추스리고 할 일을 하다가 저녁 즈음해서 밖으로 나갔다.
원래는 저녁 무렵부터 시작한다고 했던 콘서트를 보러 갈까도 생각했었는데 출연진의 이름을 보고 그다지 내 취향과 맞지 않음을 확인한 뒤에 계획을 접었다.
목적지는 여행기에서 두어 번 언급된 적이 있던 필라델피아 미술관.
해가 진 지 한참 지난 것 같았지만 한낮의 해가 얼마나 땅을 달구어 놓았던지 바깥의 공기는 매우 후덥지근한 편이었다.
차분차분히 걸어 강가까지 나갔다.
정말 대충 찍었는데 참 요새 사진기 좋아졌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이 다리에부터 사람들이 상당수 모여 불꽃 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의 목표 지점은 위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대략적인 위치는 좌측에서 30%쯤 떨어진 곳 어딘가였다.
한적할 때는 으슥하지만 사람이 많아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강가를 따라 걷기로 했다.
다리를 건넌 뒤 육교를 이용해 강 옆 길로 내려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 곳을 산책하자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미국을 떠날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왠지 꺼림칙한 느낌을 주었다.
늦게나마 뛰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상당히 촘촘하게 걷고 있어 누군가를 추월한다는 것이 꽤 힘든 상황이었다.
락 페스티벌 분위기.
위 사진처럼 공터가 있는 곳엔 어김 없이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간이용 의자를 들고 나와 애초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잔디 바닥에 편히 널부러져 노가리를 까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와중에 간단하게 먹고 마실 것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 위에 통통 떠 있던 통통배들.
필라델피아의 강에는 여름철만 되면 오징어들이 상당히 몰려온다고 한다.
평소에는 오징어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이 날 같이 바깥에서 시간을 보낼 만한 일이 있을 때는 개인 소유의 배를 몰고 저렇게 집어등을 켜고 낚시를 한다고 하기는 개뿔 당연히 뻥이고 그냥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잔디 바닥에 퍼지는 대신 배 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건너편까지 보기에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물가의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면서 대체 불꽃 놀이는 언제 시작하는 거냐고 불평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평소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배들이 어디서 이렇게들 튀어 나왔는지 역시 알 수 없었다.
부지런히 걸어 슬슬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런 곳에서는 옵저버 기능을 잘 활용해 클로킹한 흑형들을 잘 피하는 것이 관건.
언덕 너머 밝게 보이는 미술관까지 쭉 밝은 길을 따라갈 수도 있었으나 일단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나 빨리 확인해야 했기에 중간의 공터를 뚫고 들어갔다.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많아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의 신체를 밟아버릴 위험도 있었다.
혼잡하기 그지 없는 어둠을 뚫고 위로 딱 올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나마 덜 혼잡할 때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가면 갈수록 인구 밀도가 심해졌다.
미국에서 웬만하면 잘 느낄 수 없었던 서양인 특유의 체취가 이곳 저곳에서 몰려왔다.
이미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사람들, 어디선가 사온 소형 폭죽을 먼저 빵빵 쏘면서 분위기를 잡는 사람들, 그 와중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 앰뷸런스 뭐뭐 해가지고는 정말 개판 5분 전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자리를 잡아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 더운 날씨에 이 사람들 속에 끼어 있을 자신이 없었다.
바로 플랜 비를 가동, 바로 이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는 우리의 술 셔틀에게 연락을 했다.
이미 몇 명의 지인들이 그 집에 간 모양이라 되도록이면 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나오긴 나왔고 여기서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엔 루비콘 강을 건너버린 상태였다.
거절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말릴 생각이었지만 흔쾌히 집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인파를 뚫고 꿋꿋하게 걸었다.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각종 피조물들이 내는 소리에 우리끼리의 의사 소통도 쉽지 않아 어떤 순간에는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두 달 가까이 같이 살고 있던 우리는 냄새로 서로를 파악, 본능적으로 다시 뭉칠 수 있었다.
건물 앞에 도착했는데 경찰 몇이 길을 막고 섰다.
동네 주민 보호 차원에서 내부 사람과 연락이 되는 일행들만 안으로 들여보내주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걸어 픽업을 부탁했고 곧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딘가 실내에 들어가 당장 후덥지근한 공기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쾌적함을 느꼈다.
이미 안면이 있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바로 다음 순서는 맥주였다.
숫자가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적당히 더위를 식힐 정도의 양은 되었다.
맥주 사진까지 찍으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MLB 테마로 나온 캔의 디자인이 맘에 들어 살짝 사진기에 담아두었다.
발코니에서 바로 미술관 앞이 내려다 보였기에 장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여전히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무에 가려 실황을 볼 순 없었지만 두 귀로 똑똑히 라이브 음악을 감상할 수준은 됐다.
더 루츠의 공연을 공짜로 감상하다니!
들락날락하면서 맥주를 먹고 노가리도 까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예정된 시각이었던 10시 30분을 약 20분쯤 넘겼을 때 드디어 첫 폭죽이 터졌다.
모두가 발코니로 몰려 나가 멍하니 불꽃 놀이를 감상했다.
아래로부터 발로 찍은 사진들이 별도의 캡션 없이 이어진다.
펑펑 풍풍 팡.
소리도 리얼했다.
터지는 불꽃의 화려함에 비례해 사람들이 내는 함성의 데시벨도 달라졌다.
한편에서 누군가 라이브로 부르는 미국 국가가 울려퍼졌다.
미국의 생색내기식 자국 사랑을 이길 나라는 아마 전 세계에 몇 나라 없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셔터를 누르다 보니 핀트가 나가버렸다.
역시나 화려한 순간을 딱 포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꽃이 펑펑 터지는 모습을 보며 새삼 인간들의 능력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기도 했다.
대체 이런 것을 만들어서 보며 즐길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터지는 순간엔 눈 앞까지 날아올 것 같지만 어느 새 하늘하늘 사그라드는 불꽃을 바라보며 몽롱함을 느꼈다.
불꽃 놀이는 거의 20분 정도 진행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한 10분이 넘어가자 계속 보기에 좀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으나 좀 참고 끝까지 보기로 했다.
불꽃 놀이를 어떻게 사진으로만 찍냐, 당연히 동영상으로 찍어야 제 맛이지라고 생각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 동영상도 짧게 찍었다.
도입-전개-위기-절정-결말로 나눴을 때 전개 분위기에 촬영한 영상이라 화려한 맛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 날의 감동을 어느 정도는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불꽃 놀이가 끝나자 마치 남자의 자기 위안을 끝냈을 때와 비슷한 허탈감과 무기력감이 몰려 왔다.
당연히 그 빈 자리를 채워줄 녀석으로 술이 떠올랐는데 휴일 밤이라 과연 어느 선택이 옳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69가를 나가려고 했으나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합의가 이루어져 일행 중 한 명의 방에서 맥주나 먹게 되었다.
밤에 장소를 이동하면서는 내가 걸어왔던 것 이상의 거리를 걸어야 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엔 청바지가 죄다 축축할 정도로 날씨가 습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구름 너머로 무섭게 쳐대는 천둥과 번개 ㅡ 참고로 이 날 육안으로 번개가 치는 모습을 여러 번 관측했다 ㅡ 를 봤을 때 습도가 높았음이 분명했다.
가까스로 자리를 옮겨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말 늦게 배달된 피자와 함께 맥주를 먹으면서 즐겁게 7월 4일을 마감했다.
지금 생각나는 대화의 주제로는 닌자 거북이와 철권, 즉석으로 잡힌 농구 시합, 기타 잼 예정 등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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