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여행기를 철저하게 시간 순으로 쓰지 않으면 어디선가 남는 사진들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그 남는 녀석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포스트를 이룰 정도가 되었으니 이 쯤에서 한 번 처리하는 것도 좋은 생각.
그럼 시이작.
나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 "this side"가 나를 "facing"하는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상당히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지난 뉴욕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
영어를 조금 한다면, 또는 그냥 배경을 눈치껏 알아챈다면 이 카드가 지하철을 탈 때 쓰는 카드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 수 있을 테고, 뉴욕 지하철 시스템에 대한 소개라든지 감상 따위의 식상한 이야기는 위 "지난 뉴욕 여행"에 걸린 링크로 들어가보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테니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사실 여행기를 쓰다가 뭔가 남는 사진들은 뭐랄까 스토리 전개상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따로 떼어 다루기엔 할 말이 많지 않은, 사진 계의 사회적 소수자라고 부를 수 있다.
각설하고, 아직 이 카드는 내 머니 클립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지금 계획으로는 이번 주말, 또는 다음 주말로 예정된 뉴욕 여행에 다시 한 번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 절대 돈이 아까워서 계속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음식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은 아니라 그냥 메뉴판 사진으로 대체.
상키(Sangkee)!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 건물과 바로 맞닿아 있는 쉐라톤 호텔 1층 로비에 있는 중국 요리 전문점이다.
사실 이름이 상키고 뭔가 읽기 어려운 한자가 써 있으며, 인테리어를 동양풍으로 하고 포크 대신 젓가락을 주기 때문에 중국 분위기가 나는 것이지 정말 정통 중국 요리를 맛보기엔 힘든 곳이다.
그럼 무슨 음식이 나오냐.
당연히 미국식 입맛에 맞춰 바뀐 중국 요리들로, 예전에 부대에 있었을 때 먹었던 만추 옥(Manchu Wok)을 처음 맛 봤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리들이 많다.
딱히 맛있는 메뉴를 고르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맛이 없는 음식점은 절대 아니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고 양도 넉넉히 나오는 데다가 일단 위치가 집에서 거의 2~3분 거리이기에 여태까지 한 네다섯 번은 찾아가서 먹은 것 같다.
69가의 술집들을 제외하면 내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찾은 음식점인 셈.
상키는 여행기 초반에 짧게 그 얼굴을 내밀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써놓은 말을 보면 가격이 조금 부담된다는 식인데, 확실히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한국과는 다른 물가에 상당 부분 적응한 모양이다.
이 장소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엔 꽤 신비로운 분위기일 수도 있겠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미국에서 가장 불만스럽게 느끼는 것은, 술을 먹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술집 자체가 한국만큼 많지도 않고 영업 시간도 한국에 비해서는 택도 없이 부족한 데다가 맥주 두 잔만 벌컥 먹어도 돈이 적잖이 나간다.
그렇다면 술을 사들고 집에서 먹으면 되지 않겠냐고.
주마다 법이 다르겠지만 이 곳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술을 살 수 있는 곳 자체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동네마다 서너개씩은 꼭 있는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에서 언제라도 소주랑 맥주랑 안주거리를 사들고 오물오물 술을 먹을 수 있는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라는 말이다.
집에서 술을 느긋하게 먹으려면 뭔가 '아, 오늘은 왠지 밤에 술이 먹고 싶어질 것 같다.'라는 촉을 바짝 세워서 오후에 어디 나갔다 오면서 술을 사오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나와 내 친구는 상당히 쓸 만한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69가 술집에서 서빙 하는 알바생에게 퇴근 길에 잠시 들러 술을 갖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부탁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져 이제는 "술 셔틀"이라는 정식 용어로까지 불리고 있는 이 방법을 통해, 우리는 비교적 늦은 시간이라도 우리의 술 셔틀이 알바를 하는 날이라면 부담없이 술을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토마스 쿤이 봤더라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며 대경했을 일이다.
후후후.
자랑스럽게 써놨지만 왜 이렇게 지는 느낌인 건지 알 수가 없다.
후후후.
어쨌든 사진의 장소는 내가 사는 곳 2층에 마련된 수영장 옆 공간이고, 테이블 위 쇼핑백에는 막걸리 세 병이 들어 있었다.
나름 조용조용 먹는다고 했으나 곧 누군가 시끄러우니 다른 곳에 가서 술을 먹으라고 했고, 집에 들어가기 뭐했던 우리는 같은 건물 옥상 주차장으로 가서 남 눈치 안 보고 즐겁게 술을 먹었다.
이번 유로에서 가장 불쌍한 사내가 아니었을까.
호날두가 떡하니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선 아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4강전 경기.
이 날 경기에서 포르투갈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를 하고 말았지.
낮에는 확실히 그 성능이 떨어지지만 밤에 저 프로젝터가 발휘하는 힘은 꽤나 무시무시한 것이다.
빵빵한 베이스를 보장하는 스피커까지 준비되어 있어 무슨 영상물을 보는 것도 좋고 아니면 화면 없이 음악만 들어도 좋다.
좌측 하단에 보이는 전화기는 내가 한국에서 들고 온 인터넷 전화기.
생각보다 저 전화기 하나를 쓰기 위해 챙겨와야 할 짐이 많은 편인데, 그에 비해 사용 시간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정식 발음은 전혀 알 수 없다. 나는 그냥 유엥링이라고 발음한다.
내가 이 곳 필라델피아에 와서 먹은 맥주 중 전반적으로 가장 좋은 퀄리티를 뽐내는 녀석이라 할 수 있다.
캔으로도 먹어 봤고 위 사진처럼 병으로도 먹어 봤고 드래프트로도 먹어 봤는데 셋 중 그 어떤 것도 맛이 빠지지 않는 편이었다.
병 우측 하단에 적혀 있지만, 아마 이 맥주가 꽤나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필라델피아가 속한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만들어지는 맥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을 여행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맥주 맛 같은 것은 잘 모르고 다녔는데 뭔가 나이도 더 먹고 술도 더 먹고 하다 보니 이번 미국 여행에서는 맥주의 맛을 조금씩 생각해 가면서 섭취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먹어 본 맥주 중에 가장 맛있는 맥주라고 하면 당연히 달리 꼽을 만한 녀석이 있지만 사람에 비유하자면 황제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 맥주를 제외하고 나면, 나의 넘버 원은 당연히 유엥링이다.
현지 맥주인 만큼 가격도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느낌.
필라델피아에 와서 영어를 쓸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는 어떻게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나의 오랜 궁금증이 풀린 것과도 관련이 있는데, 당연히 한국 사람들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니 영어를 쓸 일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나마 친한 외국인 친구를 하나 만들었는데 중동 출신의 모하메드가 그 주인공.
자세한 이야기는 사적인 공간으로 미루도록 하고, 위 사진은 언젠가 녀석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친구가 보여 준 옛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진 책자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누구나 거실에 하나쯤 비치해두고 있는 진부한 손님용 책자라며 관심이 있으면 한 번 보라고 건네줬던 것 같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오래된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상당히 오랜 시간 자세히 책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컬쳐 쇼크.
유펜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어떤 형님과 재밌는 하루를 보낸 날이 있었다.
당연히 그 시작은 밥과 술이었다.
다른 술은 팔지만 맥주는 팔지 않는 한 한국 식당에 가기 전, 근처에 있는 마트에 맥주를 사려고 들렀다.
마트 주인은 뭔가 일반인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문을 가리키며 저 안에 들어가면 맥주가 있으니 사고 싶은 만큼 들고 와서 계산을 하면 된다고 했다.
사진은 그 금지된 문 내부의 공간.
아주 추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오래 있기는 힘든 정도로 냉장이 빵빵하게 이루어지는 창고 안에 맥주가 저렇게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한국에서도 맥주를 이렇게 파는 공간이 있다면 상당히 센세이셔널하게 알려지지 않을까 싶었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 밀러 24캔짜리 들이를 샀던 것 같다.
분위기가 한산하다.
그렇게 밥과 술, 술과 밥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간 곳은 시내의 한 볼링장.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깔끔하면서도 넓직넓직한 곳이었다.
그 이름도 진부한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
팀을 나눠서 총 세 게임을 쳤는데 마지막 게임은 시간이 부족해서 하도 빠르게 쳤더니 다음 날에 무려 왼쪽 허벅지와 오른팔 전완근이 당겨 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총 스코어에서 결국 지고 만 형님은 다음 주에 꼭 다시 볼링을 치러 오자고 하셨지만 미국 독립 기념일이 포함된 그 다음 주에 시간을 낼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우리였다.
원래 볼링 치는 것에 큰 호불호가 없는 내가 필라델피아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곳에 오게 될지는 미지수.
솔직한 심정으론 아마 안 가게 되는 쪽으로 기울어진 미지수.
으슥하나 좀?
이제 진짜 의미도 없고 비슷비슷한 사진 세 장을 올리며 포스팅을 마치려고 한다.
어느 날 69가에서 술을 먹다가 뭔가 정확히 집어낼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혼자 집에 가겠다며 무작정 술집을 나와버린 날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택시를 잡으러 가면서 괜히 주변 거리 사진을 찍었다.
초저녁에 가면 그래도 좀 사람 사는 거리 같은데 워낙 시간이 늦었어서 거리가 정말 휑하다.
역시나 휑하다.
이 날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점은, 내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데에 있다.
지난 워싱턴 노숙 때처럼 내가 정말 어떤 멍청한 짓을 했다기보다 그냥 저 시각에 저 근처를 동양인 혼자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썩 안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
하지만 딱히 위협적인 상황을 마주치지 않은 나는 무사히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었다.
신호등 옆으로 희미하게 69라는 숫자가 보이나.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까지다.
에피소드가 생기는 추세와 나의 늘어나는 게으름을 고려하면 아마 45편 언저리에서 미국 동부 여행기가 끝이 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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