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과 월요일, 현재 시점에서 그저께와 어제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하지만 일정이 없다고 해서 집에만 박혀 있기엔 바깥으로 보이는 날씨가 매우 쾌적했다.
주변에서 간단하게 할 만한 일이 없냐고 친구한테 물었고, 그는 캠퍼스나 구경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물론 콜이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이겠지만 바로 코 앞에 있는 곳일수록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저없이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우선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배부터 채워야 했다.
숙소 건물 1층에 딸려 있는 중국집 ㅡ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까먹었다 ㅡ 에 들어가 소위 미국식 중국 요리를 몇 개 시켜 먹었다.
새우 튀김과 깐풍기 비슷한 튀김과 볶음 짜장 비슷한 면 요리를 먹었는데 부대에 있었을 때 먹어본 만추옥 음식과 맛이 비슷했다.
굳이 이 점심 식사에 의미를 붙이자면 내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먹은 음식이었는데 역시나 가격이 만만하지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아무리 비싸봐야 접시 당 만 원쯤 했을 요리들은 세 그릇을 합쳐 약 40불 가까이 되었다.
마음씨 좋은 친구가 계산을 했다.
당연히 매번 얻어 먹을 생각으로 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굳이 거절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잘 먹었다는 말을 건넸다.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곳 주변은 전부 대학가라 내가 이미 유펜 ㅡ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베이니아 ㅡ 캠퍼스 안에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 블럭쯤 걸어가자마자 바로 유펜 교정이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이것은 무슨 건물, 저것은 무슨 건물이다 해가며 사진을 찍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분위기만 기억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몇 장만 담아 왔다.
아무 것도 아닌 건물의 그냥 문.
학기 중에는 굉장히 붐빈다는 유펜 캠퍼스는, 방학 중이라 그런지 매우 고요하고 한산했다.
특히나 내가 처음 캠퍼스를 찾았던 일요일은 계절학기조차 시작하지 않았던 때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만 빼면 흡사 경기도 인근의 휴양림에 온 기분이었다.
유펜의 주 도로라고 한다. 도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온갖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2~3m 간격으로 있다.
햇빛이 쨍쨍하여 차가운 커피를 사서 그늘 밑 벤치에 앉았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들으면서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느끼고 있자니 흔히들 캠퍼스가 예쁘다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바깥을 노닐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다가오는 주의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낼지 이야기했다.
다음 주 초에 있는 메모리얼 데이 휴일에 맞춰 필라델피아 인근의 도시들 ㅡ 구체적으로는 뉴욕과 워싱턴을 다녀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 외에는, 그냥 별 의미 없는 노가리와 드립으로 시간을 보냈다.
해가 살짝 떨어져 갈 무렵쯤에 별 용건 없이 시내로 나갔다가 뜬금 없이 영화를 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캠퍼스 근처의 영화관에서는 보통 시내의 영화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나름 일요일 밤인데 영화라도 보지 않는다면 너무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에 바로 승낙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빨빨 걸어 영화가 시작하기 10분 전쯤에 영화관에 도착했다.
아마 저녁 7시쯤이었을 것이다. 주변이 굉장히 밝은 것이 함정.
개봉하기 전 우리 말 제목으로 <독재자>, 영어로는 <The Dictator>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자리는 자유석이었다.
영화 표를 일단 끊으면 표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 아무 곳이나 빈 자리에 앉으면 됐다.
만석이 되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찼다.
영화는 미국에서나 나올 수 있는 종류의 지독한 블랙 코미디로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한국 영화를 제외하면 아예 자막이 없이 영어 영화를 본 지가 꽤 오래 됐었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 정도 부담이 되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워낙에 내용 없이 헛웃음을 짓게 하는 영화라 이해도 안 되면서 괜히 다른 사람들이 같이 웃으니까 웃은 적은 몇 번 안 되었다.
어쨌든,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으로 미루기로 한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서 이 곳 유펜에서 계절 학기를 들을 계획인 다른 유학생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시간이래봐야 별 건 없었고 그냥 근처 숙소 라운지에서 포커나 치면서 안면을 튼 정도.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자리가 파해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씻고 잠에 들었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첫 주말이 지나갔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동부 12 : 웰스 파고 센터(Wells Fargo center) 방문기 (3) (0) | 2012.05.29 |
---|---|
미국 동부 11 : 웰스 파고 센터(Wells Fargo center) 방문기 (2) (0) | 2012.05.28 |
미국 동부 10 : 웰스 파고 센터(Wells Fargo center) 방문기 (1) (2) | 2012.05.28 |
미국 동부 9 : 남은 5월의 계획들 (0) | 2012.05.24 |
미국 동부 8 :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베이니아 (2) (0) | 2012.05.23 |
미국 동부 6 : 드디어 정착 (0) | 2012.05.21 |
미국 동부 5 : 이튿날 아침, 시내에 나가다 (0) | 2012.05.21 |
미국 동부 4 : 도키도키한 필라델피아에서의 첫.날.밤. (3) | 2012.05.19 |
미국 동부 3 : 바람의 도시에서 (0) | 2012.05.19 |
미국 동부 2 :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0) | 2012.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