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10 : 웰스 파고 센터(Wells Fargo center) 방문기 (1)

| 2012. 5. 28. 22:36

어제 밤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저녁 먹고 씻고 노가리를 까다가 글 쓸 시간을 갖지 못했다.
오늘부터라도 부지런하게 글을 써서 다시 시점을 따라 잡아야겠다.

마지막 포스팅을 올린 이후에 가장 처음 있었던 일정은 NBA 플레이오프를 보러 필라델피아의 홈 구장인 웰스 파고 센터(Wells Fargo center)에 가는 것이었다.
가는 길의 시간이 조금 빠듯했기 때문에 일단 갈 때는 택시를, 올 때는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렵지 않게 잡힌 택시는 바로 지방 국도 비슷한 느낌 나는 도로로 빠져 필라델피아 남쪽으로 달렸다.
라디오에서는 여러 스포츠 관련 패널들이 나와 이번 6차전 ㅡ 셀틱스가 3승 2패로 시리즈 스코어에서 앞서 있었고, 세븐티식서스 입장에서 보자면 이 경기에서 지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셈이었다 ㅡ 의 중요성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경기장에 가까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차량을 보면서 후끈거리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막상 경기장 근처까지는 금방 도착했지만 주차장 입구 근처에서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 옆 쪽에 차를 세우고 그냥 걸어서 경기장까지 가게 되었다.
저 멀리에, 웰스 파고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긴 크더라.

여기서 잠시 웰스 파고 센터에 대해 떠들어보자.
웰스 파고 센터는 1996년, 기존에 같은 역할을 하던 스펙트럼(Spectrum)이라는 경기장을 대체하기 위해 세워졌다.
자연스럽게 건설 이전의 이름은 스펙트럼 II가 되었으나 경기장이 세워진 뒤에 코어스테이츠 은행에서 경기장의 이름을 돈을 주고 사면서 스펙트럼 II는 코어스테이츠 센터(CoreStates center)가 되었다.
1998년에 퍼스트 유니언 뱅크가 코어스테이트 은행을 인수하면서 경기장의 이름은 퍼스트 유니언 센터(First Union center)가 되었고, 2003년에는 와코비아의 인수로 와코비아 센터(Wachovia center)가 되었다가, 2010년에 웰스 파고가 와코비아를 인수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름의 변천사에 미국의 재계의 흐름을 담고 있는, 묘한 느낌의 경기장이 아닐 수 없다.
수용 인원은 약 2만명.

주변에는 다른 경기장들도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선 내가 최소한 한 번은 다시 찾아올 시티즌스 뱅크 파크(Citizens Bank park).

오른쪽으로는 NFL 구단인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홈 구장, 링컨 파이낸셜 필드(Lincoln Financial field)가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약 저녁 7시 30분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중에서 상당수가 야구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당일 필리스 경기가 저녁 7시에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해서, 미국 사람들의 시간 관념도 그다지 철저하지는 않다거나 경기장 근처의 교통 체증은 많은 미국인들도 예측하기 힘들 만큼 심한 것이라거나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볼 경기는 일정 상 저녁 8시 시작이었다.

나중에 경기가 끝나고 나올 때의 혼잡을 생각해 미리 지하철 역 근처에서 토큰을 사뒀다.
부지런히 걸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간단한 몸 수색 ㅡ 우리나라에선 월드컵 정도가 아니라면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겠지 ㅡ 을 받았다.
별 문제 없이 통과했다.

그리고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서 본 미국의 흔한 농구장 풍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락앤롤 베이비.

들어가자마자 정신 없이 세븐티식서스 티셔츠와 타월을 안겨 받았다.
무슨 소리가 이렇게 시끄럽게 나나 주위를 둘러보니 이름 모를 밴드가 경기장 로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로비를 벗어나 농구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통로를 좀 걸어다녔다.
기껏해야 KFC 정도나 들어가 있는 잠실 농구장 따위와는 클라스가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부스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대체 뭘 그리 맛있는 곳을 파는 곳이었길래.

뻘쭘하게 서서 내가 평생 동안 입지 않을 거대한 세븐티식서스 티로 갈아 입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몇 방 찍었다.
가만히 앉아서 경기만 보기에는 입이 좀 심심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맥주나 한 잔씩 사가기로 했다.
나는 지난 날에 먹었던 사무엘 아담스 생맥주를 골랐다.

무슨 놈의 맥주가 이렇게 볼품없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한 잔에 만원에 가까운 녀석들이다. 눈물을 흘리듯 찔끔찔끔 먹었다.

맥주가 흘러 넘치지 않게 조심조심 마셔가면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아.

아~!

이런 곳에서 하기엔 정말 재미 없는 생각이지만, 미국 스포츠의 상업주의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애초에 이런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었고, 이 구조가 수십년간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
어째서 미국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스포츠인지, 축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업적 스포츠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궁금하다면 딱 한 번만 미국 프로 스포츠 경기장을 찾아가보면 된다.
그러면 다 알게 된다.

절대적으로 보자면 싸지 않은 좌석이었으나 상대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좌석은, 내가 살면서 본 모든 공연과 경기를 통틀어 가장 좋은 것이었다.
시즌 티켓 홀더나 이용할 수 있는, 코트와 바로 붙어 있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가장 가까이서 경기를 볼 수 있는 자리 중의 하나였다.

아직은 한산한 다른 자리들.

게임에서나 보던 거대한 중앙 전광판이 머리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물론 진짜 떠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떻게든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숨이 막힐 지경.

차분하게 맥주를 홀짝이면서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