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12 : 웰스 파고 센터(Wells Fargo center) 방문기 (3)

| 2012. 5. 29. 10:51

영 인코딩 상태가 좋지를 못해서 화질이 안 좋지만 대충 이 영상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있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몇 번 언급했지만 경기는 필라델피아의 승리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는 82 대 75.
점수 상으로는 여유로운 승리였을지 모르나 내용 면에서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츨 수 없는 경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자 2만여 팬들이 동시에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응원을 하다 보니 친해진 앞 자리의 사람들과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동부 파이널로 진출하기까지 7차전이라는 고비가 남긴 했지만 최소한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 없이 경기를 보기 시작했지만 ㅡ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셀틱스를 응원했던 나였다 ㅡ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두시간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새 필라델피아의 편에서 응원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 못지 않게 나도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승리의 그 순간.

사뭇 감동스러운 순간이었기에 동영상도 찍었다.
화질은 전혀 감동스럽지 않다.

나오는 길에 앨런 아이버슨을 어떻게 실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경기장 내부를 두리번 거리다 이내 포기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볐지만 경기장에 오기 전에 사온 토큰으로 비교적 빠르게 역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토큰을 사왔겠거니 생각했던 나로서는 꽤나 벙찌면서도 기분 좋은 상황.

지하철 내부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대충 파란 색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팬, 빨간 색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팬, 녹색은 보스턴 셀틱스 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었다면 지하철 환승을 생각하지 않고 토큰을 여유 있게 사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시내까지 빠르게 온 셈이라 아쉬울 건 없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로 나갔더니 낯이 익은 건물이 보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첫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기차를 타고 시내에 처음 내렸을 때 봤던 시청이 저 멀리서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타지에서 시간을 보낸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으면서 괜히 원인 모를 감상에 빠질 뻔 했지만 잘 이겨내고 사진이나 한 방 박았다.

밤에 실제로 보면 이보다 훨씬 더 그럴싸하다.

택시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잠에 든 다른 룸메이트를 깨우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내일 있을 뉴욕과 DC행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별로 들고 갈 짐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입을 옷과 속옷, 양말 등이었다.
세탁기는 농구를 보러 가기 전에 돌려놓았지만 건조기는 집으로 돌아 와서야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다리느라 취침 시각이 상당히 늦어졌다.
일단 씻고 다른 짐부터 챙기면서 시간을 벌었다.

사소한 트러블이 발생했다.
애초에 한국에서 수건을 딱 한 장만 챙겨왔던 내겐 건조기에서 열심히 말라가고 있던 수건 외에 물기를 닦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냥 한 번쯤은 친구 것을 빌려 써도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당연히 사람 사는 곳에 같이 쓸 수건이 꽤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남자들이 사는 곳"이었고, 수건과 같은 생필품은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정확히 필요한 양보다 살짝 부족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짧게 고민을 한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당일에 농구장에서 받은 손수건 크기의 타월로 물기를 닦기로 했다.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최대한 손으로 머리와 몸의 물기를 제거한 후 실오라기가 풀풀 묻어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아 나갔다.
당연히 만족할 수 없는 퀄리티였지만 그래도 찝찝하지 않게 잘 정도는 됐다.

건조기가 가동을 멈춘 것은 아마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을 것이다.
잽싸게 빨래를 빼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나의 유일한 호프 수건은 따로 잘 접어서 내일 아침에 잊어먹지 않게 선반에 올려두었다.
아침 9시 버스를 제대로 타려면 최소한 오전 7시 반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했기에 거의 곧바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5월 24일 목요일의 아침이 밝았다.
친구에게 먼저 샤워를 양보하고 ㅡ 여태까지 저녁에는 항상 내가 먼저 샤워를 했는데 보일러 용량이 조금 딸리는 모양인지 나중에 샤워를 하는 사람에겐 따뜻한 물이 적게 떨어지는 것 같아 도의적인 차원에서 양보를 했다 ㅡ 한국에 필요한 연락을 마친 뒤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 처참하게 젖어버린 나의 수건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앗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