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6 : 드디어 정착

| 2012. 5. 21. 14:49

가장 큰 난관은 역시나 캐리어의 무게였다.
백팩 때문에 자꾸 등에 땀이 차는 것을 견디지 못해 모든 짐을 캐리어 안에 실었던 것이 화근.
횡단보도를 하나 건널 때마다 캐리어를 힘껏 들어 옮기는 나의 모습은 내가 제3자의 입장에서 봤었더라도 상당히 측은해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숙소에서 다소 급하게 짐을 챙기는 바람에 캐리어 안에 마구 쑤셔 넣은 것이 또 문제가 되었다.
손잡이를 길게 쑥 뺄 수 있는 형태의 캐리어였다면 크게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보스턴백 모양에 바퀴가 아래 여러 개 달린 모양의 캐리어는 어떻게 잡아 끌어도 내용물의 언밸런스함 때문에 자꾸 자기 멋대로 굴러다녔다.
뒤나 앞에서 사람이 오면 잠시 멈춰서거나 캐리어의 방향을 똑바로 잡아줘야 했다.
게다가 고르지 못한 인도 위를 지나가다 보니 바퀴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스레 끌어야 하는 것도 소소하지만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거기에 진행 방향으로 떨어지는 해는 안구를 포함한 나의 전신을 강타하고 있었다.
얼굴은 주름살 생성 +10 저주에 걸렸고, 등은 수분 소모 +20의 저주에 걸렸다.

마지막 크리티컬 히트는 토요일 오후에 거리에 쏟아져 나온 인파.
내 몸 하나 지나가기도 빽빽한 길을 통제 불능의 캐리어와 함께 지나가는 일은 거의 현실판 입구 뚫기의 느낌을 들게 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걸음 걸이가 굉장히 느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고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시계를 보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시작하기까지 약 30분이 남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경기 시작 시간쯤에 바에 들어가 맥주 한 잔으로 숨을 돌리려던 원 계획을 급히 수정하여 좀 눈치가 보이더라도 일단 눈에 보이는 바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 사거리 건너 편에 한적한 바가 하나 보였고, 그 바에서 축구 경기를 틀어주든 말든 뭐 알아볼 새도 없이 곧장 입장했다.

운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바에서 가장 큰 TV로 챔스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맥주 한 잔만 먹고 나갈 사람으로서 빈 테이블에 앉기가 조금 민망했던 나는 바 구석탱이 자리에 짐을 얌전히 놓고 거기에 앉아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밀러 라이트 생맥주를 달라고 했고 내가 앞으로 끼칠 민폐에 대한 반대 급부 차원에서 팁도 얹어 주었다.

확실히 미국에서 축구가 비인기 종목인 것을 실감했다.
바에 앉아 있던 약 20명의 사람들 중에 이 거대한 이벤트를 감상하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네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맥주를 홀짝 홀짝 마셔가면서 첼시의 편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83분에 터진 뮐러의 선제골에 좌절하고, 곧 이어 드록바의 만회골에 환호했다.
물론 좌절과 환호 모두 내 마음 속에서만 일어난 일로 겉으로 나타내는 것은 삼갔다.

경기가 연장전으로 흐르자 바 주인은 구석탱이의 TV로 축구 채널을 옮기고는 내게 경기를 더 보고 싶으면 저쪽에 가서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주류 스포츠가 겪는 비주류의 설움을 통감할 수 있었던 부분.
같은 경기를 보던 세 명의 일행과 나는 쪼르르 구석으로 옮겨 갔고 무언의 동질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첼시와 뮌헨의 건곤일척을 지켜봤다.
눈치를 보건대 아마 원래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아니고, 그냥 중요하고 큰 경기라고 하니 서로 내기를 걸었던 것 같았다.

경기는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아까부터 바에 앉아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제서야 경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월드 클래스에 속하는 두 팀을, 그저 빨간 팀과 파란 팀으로 부르는 것에 나는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절실히 느꼈다.

결과는 첼시의 승.
드록바로 시작해서 드록바로 끝났던 경기의 끝에 나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경기가 예상치 못하게 길어진 까닭에 맥주 한 잔만 시켜두고는 거의 세 시간을 같은 장소에서 머문 셈이 되었다.
민망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아주 잽싸게 짐을 챙겨 다시 길을 걸었다.
지도를 펼쳐 확인하니 최종 목적지까지 딱 절반쯤 걸었다는 절망적인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쯤에서 택시를 잡고 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많았고, 여기까지 걸은 이상 마지막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개똥 근성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경기를 관람했던 바가 번화가의 끝자락에 있어서 최소한 길가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었다는 것이다.

묘하게 아웃포커싱이 된 사진. 필라델피아에는 이렇게 크지 않은 하천이 시내를 약간 벗어나 흐르고 있었다.

티가 온통 땀에 젖어 찝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목표했던 34번가를 두 블럭 남겨 놓은 32번가쯤에 접어들자 거리의 분위기가 확연히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서쪽은 유니버시티 시티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구역으로, 유펜을 주축으로 한 여러 대학 건물들이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다.
딱 봐도 학생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걸어 다니거나 조깅을 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마주쳤다.
토요일 오후라는 시간적인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일까, 여유롭고 한가한 그들의 모습에 비해 나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붕괴 수준에 이르른 것이 스스로도 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랴.
고지가 코 앞이었다.

중간에 휴식 차 잠깐 앉아 있었던 벤치.

쉬엄쉬엄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걸었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34번가, 그리도 꿈에 그리던 34번가가 나타났다.
거의 훈련소에서 30km 행군을 마치고 막사로 다시 돌아왔을 때의 격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약속 장소로 정해 두었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지만, "저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바깥은 밝았다.

간단하게 끈적거리던 손을 씻은 뒤, 바로 와이파이를 잡아서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는 도착했지만 약속 시각까지는 약 두 시간이 넘는 여유가 있었기에 느긋하게, 아주 느긋하게 밀린 포스트를 올렸다.

온 몸과 뇌에 쌓였던 피로를 충분히 해소하니 매장 마감 시각인 밤 10시가 가까워왔다.
어차피 약속 장소를 떠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바깥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약속 상대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분 남짓 했을 때 멀리서 구세주 같은 음성이 들렸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들었던 그 음성도 아마 이보다 반가웠을 리는 없을 것이다.
마음이 은총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이 곳 필라델피아에서 나의 집 주인이자 보호자인 친구를 만나 그의 거처에 짐을 풀었다.
드디어 미국 여행의 1/3인, 정착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원시 인류가 기나긴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농경 사회를 주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진입할 때, 이른바 농업 혁명이라고 불리는 그 사건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건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다른 룸메이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짐을 풀었고, 잽싸게 정리를 마친 뒤에 가볍게 맥주를 먹으러 다시 길을 나섰다.
세 명 모두 방금 막 여행을 마친 몸이라 적지 않은 피로함을 느꼈다.
12시가 조금 넘어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깔끔하게 샤워를 한 뒤 안락하기 그지 없는 침대에 몸을 맡겼다.

달콤한 잠이 금세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