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정보를 마구잡이로 쓰기에 조금 거시기한 사람이라 글을 어떤 식으로 써내려가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모하메드는 내가 이곳 미국에서 만난 사람 중 단연 가장 흥미롭고 유쾌한 친구다.
정말 갑작스럽게 ㅡ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서술될 예정이다 ㅡ 뉴욕을 가기 전 수, 목, 금, 날짜로 7월 11일부터 13일까지는 바로 이 모하메드와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낸 날들이었다.
막상 돌이켜보면 이렇게 따로 포스트를 작성할 만큼 대단한 일들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내 개인적인 인생사에서 짧게나마 따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쓱쓱 글을 써보려는 것이다.
이전에도 모하메드를 만난 적은 꽤 있었다.
7월 초까지 그는 내가 머물던 아파트의 7층에 살고 있었는데 ㅡ 나는 4층 ㅡ 사람 자체가 워낙 칠링(chilling)하는 것을 좋아하고, 머물던 아파트에 이리 저리 칠링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길지는 않더라도 자주 시간을 함께 보냈다. 1
가끔은 손수 만든 버거 패티를 그릴에 구워 빵과 함께 대접하기도 했고, 그의 집에서 딥 하우스 음악을 들으며 ㅡ 모하메드는 음악적인 관심과 재능을 고루 갖춘 편이었는데, 딥 하우스 장르를 가장 좋아하며, 직접 곡을 믹싱하는 재주도 있었다 ㅡ 노가리를 까기도 했다.
물론 우리도 매번 대접만 받는 것은 미안했기에 한인 마트에서 LA 갈비와 닭갈비를 사다가 구워준 적도 있고 ㅡ 그의 시식평은 "잇츠 소 뷰티풀!"이었다 ㅡ 집에 초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신라면 블랙이나 오징어 경단 따위를 해주기도 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찌만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존중하며 빠르게 친해진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모하메드는 6월 말인가 7월 초쯤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자연스럽게 연락하는 빈도도 줄어들었고, 무더운 여름에 10분 거리를 걷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지라 그 뒤로는 거의 만나는 일조차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하메드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로 할 일이 없으면 자기 집에나 놀러와서 칠(chill)하자는 것이 주 메시지.
돌아오는 화요일까지 꽤 중요한 글을 써야 하는 친구는 사정이 안 될 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그렇다고 굳이 나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날짜는 11일 수요일로 정했다.
약속 당일에는, 내가 전화기가 없으니 몇 시 몇 분까지 아파트 현관으로 나와 달라고 연락을 하고 길을 나섰다.
왠지 빈 손으로 가기가 좀 미안해서 가는 길에 맥주 12캔 들이 팩을 샀다.
그리고 약속 시각보다 한 2~3분쯤 여유롭게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아는 친구이니 만큼 곧 나오리라 생각하고 그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미학.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케일이다.
근데 어찌된 게 예정보다 5분이나 더 지났는데도 모하메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게 분명했다.
다행히도 이런 때를 대비해 이미 새로 이사온 집에 놀러와 본 적이 있던 친구로부터 새 집 위치를 대충 들어둔 것이 있었다.
4층 오른쪽 복도 맨 끝의 오른쪽 방.
다른 거주인이 현관을 통해 나가는 틈을 타 건물 안으로 진입에 성공,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까지 올라갔다.
친구가 알려준 방문 앞까지 갔다.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나왔는데 모하메드가 아니었다.
모하메드 집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아,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문이 닫혔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이제 뭘 어떻게 하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다시 그 집 문을 두드렸다.
같은 사람이 나왔다.
미안한데 전화 한 통화만 하고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들어오란다.
굉장히 위협적으로 생긴 거대한 흑형 한 명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멋쩍게 인사했다.
근데 나보고 들어오라고 했던 그 친구, 전화기를 안 주는 것이 아닌가.
뻘쭘하게 이게 무슨 상황인가 파악하며 침묵의 10초를 보내다가, 내가 정중하게 다시 부탁을 했는데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한 듯한 그는 자신의 낡은 전화기를 내주었다.
미국에서 아는 번호라고는 친구 번호 하나밖에 없다.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딱 거는 그 순간, 반대편 집 문이 열리면서 모하메드가 나타났다.
상황 정리를 하면 이렇다.
1. 모하메드는 내가 미국 전화기가 있는 줄 알고 자기 집에서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2. 하도 내가 안 오니까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의 딱한 사정을 알자마자 집 밖으로 나서던 길이었다.
3. 친구 놈이 모하메드 집 위치만 제대로 알려줬어도 처음부터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어쨌든 겨우 집에 도착했다.
내가 맥주 사왔는데 냉장고에 두면 되냐고 묻자, 그는 아니 뭘 또 이런 걸 사왔냐며 인사 치레를 했고, 나는 그 진부함을 아니 이거 다 나 먹으려고 사왔다는 웃기지도 않은 개그로 받아쳤다.
확실히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집이라 내부가 상당히 어수선했다.
그나마 TV와 그 근처 공간이 정리되어 있어서 거기서 맥주나 먹기로 했다.
모하메드와 학부 과정을 같이 다녔던 친구 한 명도 와 있었다.
신문에 보낼 글을 쓰고 있던 모하메드는 일단 이 글을 끝날 때까지 둘이서 이야기나 하고 있으라고 했고,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딱히 할 일이 없던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의례적인 대화들을 나누었다.
글이 마무리되는 것이 조금씩 늦어지는 것이 지루했는지, 친구가 영화나 한 편 보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영화 선택권을 그에게 맡겼는데 <에디 머피의 구혼 작전(Coming To America)>라는 이미 제목만 보더라도 조악하기 그지 없을 것 같은 영화를 고르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날 영화를 골랐던 그는 영화 도중에 잠이 들었고, 모하메드는 거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글을 끝내지 못했으며, 실제로 내가 사온 맥주의 절반 이상을 혼자 먹은 나는 새벽 2시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무슨 사내 녀석들끼리 이틀을 연속으로 만나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다음 날 저녁도 모하메드와 함께였다.
수요일 약속이 우발적으로 생긴 반면, 목요일 저녁 약속은 꽤나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이라는 짧은 핑계를 남긴다.
BYO 스시 집을 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던 우리는 우선 시내의 술집 ㅡ 2술을 먹는 집이 아니고 진짜 술을 사는 집 ㅡ 에서 만났다.
소주와 와인, 사케, 위스키를 두루 섭렵하며 바구니를 빵빵하게 채운 뒤 가기로 되어 있던 스시 집을 갔는데 사람이 가득차 있어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플랜 B를 선택해서 시내에 있는 다른 BYO 스시 집으로 갔다.
거대한 롤 & 스시 세트를 시켜두고 이런 저런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술을 섭취했다.
사람은 꽤 많았지만 생각보다 술이 줄지를 않았는데, 뭔가 오늘 같은 날이라면 맘 놓고 술을 먹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 나는 이미 저녁 자리에서 와인 한 병을 혼자서 비우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다.
대충 정리를 하고 ㅡ 계산은 모하메드가 했다 ㅡ 모하메드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를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난 날 모하메드 집에서 머물렀던 학부 시절 친구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금세 집으로 가.. 가버렷!다.
셋이서 남은 술을 쪽쪽 먹다가 재미가 떨어진다는 공론이 생겨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미국에 와서 혼자 술집에 가본 적도 있고 친구들이랑 술집에 가본 적도 있지만 외국인 친구들이랑 술집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름을 잊어버린 첫 술집은 사람들로 굉장히 붐비고 있었다.
나 같은 단신의 한국인은 술을 한 잔 시키는 것도 힘들 정도였는데, 키가 훤칠하게 큰 모하메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술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술집을 생각보다 빨리 나와야 했는데, 술집에서 작지 않은 시비가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에 직접적으로 끼어 있지 않던 나는 뭐라 달래주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훈계를 놓기도 좀 그래서 그냥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졸졸 따라다닐 뿐이었다.
두 번째로 찾은 술집.
그 외에 별로 다른 일은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리라.
세 번째로 들른 술집.
이래저래 술을 먹다가 집에 들어가니 거의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술을 느긋하게 앉아서 먹질 않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먹어서 그런지 취기는 별로 없었고, 단지 늦은 시각에 따른 피로함이 몰려 왔다.
하지만 일단 뚜껑을 까버린 술은 다 먹자는 일념 하에 꾸역꾸역 계속 술을 들이켰다.
집에 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엉덩이가 무거워져버린 나는 4시가 다 되어 혹시 집에서 자고 가도 되겠냐고 모하메드에게 물었다.
당연히 그가 거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새벽의 피로와 취기로 비롯된 모든 귀찮음을 무릅쓰고 전기식 에어 매트와 파자마를 꺼내준 것은 예상밖의 일이었다.
바로 그 날 내가 잤던 매트. 생각보다 굉장히 편했다.
침대에 누우려고 했을 때가 거의 새벽 4시나 5시쯤이었던 것 같다.
전화기의 배터리는 거의 방전 상태에 가까웠고, 내 정신 상태도 여름철 발전소의 예비 전력량만큼이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준 칫솔로 양치를 하고, 파자마 바지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눕자마자 거의 바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엔 거의 낮 1시쯤에 일어났다.
잠에서 깬 것은 그보다 한참 전인 8시 무렵이었지만 ㅡ 신기하게도 다른 녀석들은 이미 그 때쯤 일어나서 복작복작 움직이고 있었다 ㅡ 도저히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 두통이 왔기에 그냥 계속 누워 있었다.
다시 한숨 푹 자고 나서야 컨디션이 돌아온 느낌이 왔다.
일어나서 옷을 갈아 입고 대충 씻은 뒤, 지난 밤에 약속한 대로 한인 마트로 출발했다.
예전부터 모하메드와 같이 한인 마트에 가자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었는데, 지난 밤에 술 기운에 잠에서 깨면 두말 할 것 없이 가자는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몸 상태는 좋지 않았고 날씨는 더웠지만 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는 중고 가구 가게를 잠시 들른 뒤 택시를 타고 69가로 갔다.
녀석들에게 한인 마트는 적잖은 컬쳐 쇼크였던 것 같다.
식재료들은 그냥 저냥 훑고 넘어가는 것 같더니 포장되어 있는 식품들, 예를 들어 라면이나 과자 같은 것에 눈이 회까닥 뒤집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트 하나를 라면과 과자 등으로 가득 채우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중국 음식을 파는 곳과 미용실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나도 사실 2층은 처음으로 가보는 것이었다.
2층에는 한국형 식기, 일상 용품, 가전 제품 등을 팔고 있었는데 녀석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쌀통이었다.
앞면의 버튼을 누르면 그에 해당하는 양의 쌀이 나온다는 것이 포인트였던 것 같다.
제품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것처럼 보였던 한 한국인 아저씨로부터 과도(果刀)를 하나 산 뒤 한 켠에 마련된 푸드 코트로 갔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주고 적당한 메뉴, 아마 기억이 맞다면 불고기 덮밥을 골라주었다.
나는 제대로 된 요리를 먹지 않는 이상 속이 그것을 받아내지 못할 것 같아 일단 굶기로 했다.
바로 그 때 모하메드의 전화기를 통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나와 같이 살고 있던 또 하나의 룸메이트가 바로 그 날 오후에 버스를 타고 뉴욕에 2박 3일을 다녀올 계획인데 혹시 같이 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언젠가 한 번 뉴욕은 다시 들리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이렇게 급하게 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좋은 여행을 만들 것인지 고민을 했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메뉴 선택은 나쁘지 않았는지 친구들은 연신 맛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객관적으로 현재 상황을 따져보기로 했다.
우선 예정된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이미 그 친구는 버스를 끊었고 그 친구와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버스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늦게 출발한다고 치면 약간의 여유는 있으나 당장 마트에서 산 짐들을 계산하고 정리해서 집으로 가는 시간과 내가 집에 돌아가서 씻고 차림새를 정리하는 시간, 짧은 기간이기는 하나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짐들을 챙기는 시간 등을 합치면 시간이 굉장히 빠듯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 그 주말에 제대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친구의 일정과, 다음에 돌아오는 주말이 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주말이야말로 뉴욕에 다녀올 수 있는 최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다면 나도 오늘 뉴욕으로 떠나며 일단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갈테니 자세한 것은 집에서 얘기하자는 말을 전했다.
소고기 덮밥을 냠냠 먹고 있던 녀석들에게도 미안하지만 지금 일이 좀 급하게 돌아가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
애초에 별 계획이 없던 터라 순순히 내 부탁에 응했다.
수북히 쌓인 짐을 모두 계산하고 바로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40가 근처에 사는 모하메드를 먼저 내려주고 34가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내리자마자 현관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만나 집으로 올라가면서 당장 뉴욕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먼저 표를 끊은 친구와는 다른 버스의 표를 알아봐서 만약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을 경우 그 버스를 타고 가거나 또는 같은 버스의 늦은 시간 표를 끊어놓고 무작정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혹시나 자리가 비는 것이 있으면 바로 그 버스를 타는 것이 되었다.
내가 씻는 사이 친구가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메가 버스가 아닌 볼트 버스의 표가 있어서 전자의 시나리오가 가능해졌긴 했지만 두 버스의 뉴욕 도착지가 다르기 때문에 뉴욕에서 둘이 어떻게든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나야 하는 귀찮음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뉴욕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상 이와 같은 작은 모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없는 편보다는 아무래도 나았다.
친구에게 표를 끊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나는 빠르게 짐을 챙겼다.
짐을 거의 다 챙겼을 무렵 예매가 끝났다.
2박 3일 동안 집을 잘 지켜달라는 말을 남기고 ㅡ 대체 이 집은 누구의 집이란 말인가? ㅡ 집을 나섰다.
지난 번 뉴욕을 갈 때 터미널에 가본 기억을 살려 열심히 걸었지만 내가 터미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곳에 터미널은 없었다.
버스 출발 시각은 4시 30분, 시계를 보니 4시 20분이었다.
바로 로컬 필라델피아 사람인 것 같은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알고 보니 바로 옆 블록으로 넘어가면 된단다.
역시나 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골프를 치고 바로 터미널로 오기로 한 친구를 가까스로 만나 뉴욕에서 만날 장소를 정했다.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급하고 갑작스럽게, 미국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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