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창창하게 떠 있는 낮에는 처음 와 본 것이었다.
밤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벌크감이 예상 외로 나를 압도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색감이 좋은 사진.
우선 분수대에 가까이 가보았다.
조각은 상당히 섬세한 편이었는데 컨셉이 무엇인지 짐작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었다.
글자라도 좀 써 있었으면 뭔가 읽으면서 작품 ㅡ 분수대의 조각도 분명히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ㅡ 을 음미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초보자를 위한 기초적인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말의 섹시한 뒤태.
분수대를 지나온 내가 다음으로 찾았던 것은 말로만 무수하게 들어오던 록키의 동상이었다.
비록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하도 클리셰적로서 많이 사용되던 장면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동상이 당연히 필라델피아 미술관 정문으로 오르는 계단의 최상단부에 위치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의 바로 그 장면에서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록키의 동상이 계단 위 어디에 있을까 둘러 보던 내게 사뭇 실망스러운 광경이 들어왔다.
그래도 귀여운 꼬마 사진을 한 장 건졌다.
록키의 동상은 미술관 계단을 올라가기 전, 따로 마련된 공간 한 켠에 조용히 서서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즐거운 추억거리를 남겨주고 있었다.
리버티 벨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머물러 있진 않았으므로 동상 앞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필라델피아에 오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사진을 찍고 간다는 이 코스에서 그런 "진부한" 사진을 찍는 것이 왠지 쑥쓰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커서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될지 잘 모르겠는 한 흑인 꼬마의 사진을 찍고는 이내 동상 앞 자리를 떴다.
필라델피아 뮤지엄 오브 아트.
적지 않은 거리를 걸어왔던지라 계단을 오르는 숨이 쉽게 가빠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술관 안은 분명히 시원하리라는 매림지갈의 고사를 떠올리면서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 올랐다.
계단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필라델피아 시내의 모습.
비록 계단을 열심히 오르긴 했지만 절대적인 높이로 따졌을 때 그닥 주목할 만한 수준의 높이는 아닌지라 조망이라는 면에서 뭐 크게 볼 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필라델피아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것 정도, 그것도 아주 멀찌감치서 대략적인 느낌만을 얻어가는 수준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반대편의 광경이 더 인상 깊었다.
중앙의 분수대까지 작동을 했더라면 훨씬 더 멋진 볼 거리였겠지만 아쉽게도 분수대에서 물이 멋지게 뿜어나오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지난 번에 한 번 예고했던 대로, 내가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방문하던 당시에 열리던 특별전은 "비젼스 오브 아카디아(Visions of Arcadia)"였고 전시의 메인 아티스트는 누구나 위에서 읽을 수 있듯이 고갱과 세잔, 그리고 마티스였다.
세 명의 화가 모두 내 개인적인 호불호가 존재하진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그래도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닌가.
특히나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라면 단순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물론 과연 이 미술관은 얼마나 시원할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지, 어차피 방관자적인 관점에서 쓱쓱 보고 넘길 거면서 무슨 미술이 어떻네 예술이 어떻네 하는 기대감 때문은 아니었다.
그만큼 내 몸은 거의 묽은 오줌이라 해도 다를 바 없는 땀에 범벅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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