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동성애의 미래

| 2013. 1. 12. 21:25

제목은 심히 거창하지만 내용은 쥐꼬리만큼도 없는 것이 함정.

최근 미국 사회에서 가장 거세게 불고 있는 범국가적인 문제로 동성애, 동성 결혼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성애와 관련된 이런 이슈들은 수 년간의 시간 차를 두고 우리나라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간의 진지한 문제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ㅡ 이 말인 즉슨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나의 관심도는 사회적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뜻 ㅡ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동성애 이슈를 가장 빈번하게 접할 수 있었던 곳은 서울시 교육감과 관련된 뉴스들로부터였다.

역시 문제의 시작은 곽 전 교육감의 학생 인권 조례. 자세한 사항을 찾아보기 귀찮아서 대강의 링크로 갈음하고 넘어가면, 이 때 문제가 되던 사항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내가 가진 포커스는 실제로 학생 인권 조례의 특정 조항이 학생들의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냐 안 하는 것이냐가 아니었다[각주:1]. 학생들의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 더 나아가 미성년뿐만이 아닌 성년들의 동성애까지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더불어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적극적인 동성애 옹호론자는 되지 못한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나의 시각은 중립에 가깝다라거나,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자면 무관심자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동성애"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나와 그 단어 사이의 그 거리감은 거의 무한대로 발산한다. 이 거리감은 여태까지 나의 개인적인 삶과 앞으로의 나의 프라이빗한 라이프를 생각했을 때 거기에 동성애라고 하는 이슈가 끼어들었던, 또는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무지막지한 이성애자인 내 삶에 동성애란 없을 것이다. 아니, 설령 내 주변의 누군가가 동성애자이고 내가 어찌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또는 그러한 사랑관(觀)이 있든지 없든지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어떤 동성애자가 나를 좋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는 있겠으나 ㅡ 이 정도라면 나도 동성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의식하지 않을까 싶다 ㅡ 여태까지 살면서 만난 수많은 이성 중에 내게 먼저 호감을 가졌던 사람이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다. 제로에 가까운 것이 아니고 그냥 무(無)다.

사실 누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어서 동성애에 찬성하는 이유를 대라고 나를 윽박 지른다면, 뭔가 몇 마디 던질 말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뇌하신 동성애자분들의 가지고 있을, 나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숭고한 동성애에의 에토스(ethos)가 있을 것 같고, 내 짧은 지식과 생각으로 그 숭고함을 공격하고 싶지 않기에 여기서는 별 언급 없이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정말 몇 마디 안 될 얘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옹호를 무관심에 근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내가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동성애 반대론자의 역할 때문이었다. 그들은 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일까? 거의 4~5년 전, 지인과 식사를 하던 중에 그 사람이 아주 심각한 동성애 혐오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을 제외하면, 그 뒤로 내 지인 중에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대충 언론에서 접하는 그들의 의견을 두 부류로 정리하면 크게 이렇게 정리가 될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반대,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에서의 반대. 나는 아직까지 이 카테고라이제이션에서 심각하게 벗어나는 부류의 반(反) 동성애론을 접해본 적이 없다[각주:2].

사진의 출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인터넷 서핑 중에 접하게 된 도표다. 사실 나는 이 도표가 처음에 내가 동성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시험하는, 타블로이드 잡지에서나 볼 법한 도표라고 생각해서 저장해놨는데 막상 까놓고 보니 그저 동성애 반대론자들의 논리를 하나 하나 논파하고 있는 다이어그램에 불과했다. 나 같은 경우야 맨 처음의 분기에서 바로 "아니"의 입장을 취하고, 그 분기의 끝이 플로우 차트의 종료점이기 때문에 단순히 끝이 나지만, 이 세상엔 나와 반대의 길을 택할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차트에 따르면 사람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의 상당수가 종교에 관한 것인데 애초에 종교의 존재 당위성을 부정하는 나로선 여기에 대해 더 이상의 할 말이 없다. 맨 오른쪽의 분기점, 즉 그냥 역겨우니까 싫다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이유에서의 반대 정도라면 그래도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반대보다는 훨씬 더 타당해 보이고 나 같은 사람도 뭔가 해줄 말이 생긴다.

생각해 보면 ㅡ 어쩌면 내가 인간의 이성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ㅡ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사람을 제외했을 때 우리가 동성애에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동성애라고 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쉬운 개념으로 환원하면 취향이다. 누구는 개를 좋아하고 누구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누구는 이구아나를 좋아하고 누구는 괄태충을 좋아하고 누구는 절지동물을 좋아하는 것, 이런 류의 건전한 취향과 그 근간에 있어 하등 다른 것이 없다. 애초에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말이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한 개인적 호오(好惡)와 그 취향의 당위성 자체는 100% 독립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면 "반 동성애 반대론"에 대한 주장의 핵심은 얼추 마무리된다. 비록 다리 여럿 달린 지네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런 지네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의 인정. 어떤 철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절대 인간 이성에의 지나친 요구가 될 수는 없는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 대한민국엔, 아니 어쩌면 이 지구 상엔, 나처럼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포스트 초반 부에 서울시 교육감 이야기를 잠깐 꺼낸 적이 있는데, 곽 전 교육감의 뒤를 이어 선출된 문 교육감이야말로 이런 평범한 사고력이 결여된 사람의 아주 대표적인 예다. 대한민국 교육 꼰대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 답답한 할아버지가 민족 정론지 뉴데일리와 인터뷰한 기사에서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유초중고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임신이나 출산을 하는 것, 동성애를 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이런 경우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먼저인가?

당연히 옳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전교조는 거꾸로 차별금지부터 가르치라고 한다.

이것은 학교에서 동성애를 하는 학생을 교사가 보더라도 지도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교육적 발상에선 나올 수 없는 내용이 인권조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사람이 교육 대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 교육감에 뽑혔다. 하긴 거의 미국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치달은 한국 기독교의 원리주의나 면면에서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유교에 수백년을 짓눌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국민들에게 고작 이 정도의 합리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요 허황된 꿈에 불과할 것이다. 나름 기운차게 시작한 글이 실망스럽게 끝나버리는 이유도, 대한민국 동성애의 미래가 적잖이 어두워 보이는 이유도, 내가 동성애에 대해 이 정도라도 옹호하는 글을 쓰는 이유 모두가 다 이 때문일 것이다.

  1. 동성애라는 것이 조장하면 아름아름 퍼져서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처럼 나라 전역에 창궐하고 말리라는 논리의 타당성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본문으로]
  2.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당연히 동성애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는, 종교적 신념에 기반하지는 않지만 별 근거 없는 당위론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판단 되는데 이 경우는 근거 없음의 정도, 또는 당위성의 정도에 따라 양쪽 어디에 포함시키든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