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rtrait Of A Lady

| 2013. 1. 13. 14:46

http://fakepastoral.tumblr.com/post/26065615424/i-dont-want-to-begin-life-by-marrying-isabel

영화 《여인의 초상》의 아쉬운 점을 정리하자면 영화의 포커스가 원작 소설에서 방대하게 서술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각주:1]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삶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뻔한 로맨스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같은 스토리라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이야기를 가지고 드라마 영화를 만드는 것과 멜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 방법론에 있어 사뭇 다른 접근법을 요구하게 된다. 드라마 같은 경우야 그 이야기의 종류에 따라 극도의 커스터마이제이션이 필요한 만큼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멜로 영화는 대충 멜로 공식이라 불리는 전형적인 틀에 이야기를 때려 맞춰 넣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멜로 영화는 대개 진부한 것이며, 진부하지 않다고 평가되는 몇몇 멜로 영화들도 표현 방식 같은 외적인 요소를 제하면 사실 거기서 거기다. 이는 내가 멜로 영화를 썩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멜로 영화로 변질이 되고 만 《여인의 초상》은 결국 절정 ㅡ 대개 영화 후반부에 위치하는 ㅡ 장면의 존재가 나머지 장면들의 끝 없는 희생으로부터 성립된다는 멜로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여인의 초상》은 전형적인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카타르시스의 정도가 다른 멜로 영화와는 분명히 차별되는 수준에 있다는 점에서 "좋은" 멜로 영화의 타이틀을 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이는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헨리 제임스라는 거물의 펜 끝에서 기인한 것이지, 그 주된 공을 영화 제작 관련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어쨌든 대단한 몰입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따로 있지만 ㅡ 그리고 이 장면은 내 멜로 영화 사상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다 ㅡ 도저히 더빙 되지 않은 버전을 찾을 수 없어서 맛보기 클립은 엔딩 장면으로 대체한다.

음악도 훌륭하고, 전성기 시절의 니콜 키드먼의 외모를 감상하기에도 좋고[각주:2], 쉬크남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존 말코비치, 질 좋은 카타르시스의 1등 공신인 마틴 도노반, 조조연에 불과하지만 그 역할을 무시하기 힘든 비고 모텐슨의 연기를 음미하기에도 좋다. 풋내가 진동하는 크리스천 베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덤 정도가 아닐까.

이 정도 영화의 위키피디어 페이지가 굉장히 짧다는 것은 거의 유머.

  1. 원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았으니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본문으로]
  2. 사실 그녀의 연기력이 수준급이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본문으로]